재계 총수들의 2007년 기상도 ‘대체로 흐림’

2007-12-09     권민경 기자

삼성 이건희 ‘마른하늘 날벼락’, 한화 김승연 ‘수해복구 여전’
현대차 정몽구 ‘비 온 뒤 갬’, SK 최태원 회장 ‘구름 없는 맑은 날’

[매일일보=권민경 기자]

숨가쁘게 달려왔던 2007년도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 재계에서는 유난히 총수들과 관련한 사건, 사고가 많았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지나친 아들사랑(?)에서 비롯된 ‘보복폭행’ 사건이 상반기 내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하반기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시작된 삼성그룹 문제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건희 회장 부자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불법 의혹과 비자금 조성 등으로 현재 삼성은 검찰 특별본부의 강도 높은 수사에 들어가 경영이 거의 마비된 상태. 현대차 정몽구 회장 또한 누구보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낸 총수 중 한명이다. 지난해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되는 악재를 겪고, 지난9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에도 조심스런 행보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최근 여수엑스포 유치 성공의 일등공신으로 주목받으며 단숨에 이미지를 역전시키기도 했다. 반면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우 글로벌경영을 진두지휘하며 바쁜 한해를 보내는 가운데, 격식을 벗어던진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훈남총수’로 거듭나기도 했다. 재계 총수들은 12월 남은 기간 동안 다음 해를 준비하면서 각자 사업 구상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는 대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총수들이 예년과 달리 국내에 머물며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이건희 회장- 김용철發 태풍으로 최대 위기

재계 총수들 가운데 가장 착잡한 연말을 맞고 있는 사람은 올해로 취임 20주년을 맞은 삼성그룹 이건회 회장.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악화로 인한 찬바람이 가라앉기도 전에 전(前)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인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 특별본부가 차명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간 데 이어 청와대에서도 삼성특별검사제 도입을 수용함에 따라 삼성은 내년 4월 이후까지 검찰과 특검의 이중 수사망에 옴짝 달짝할 수 없는 상황.

특히 검찰이 이 회장과 그룹 수뇌부 8∼9명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단행하면서 경영관련 업무도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됐다.

연말 예정돼 있던 사장단 정기 인사와 1월 중순의 연초 인사도 변경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연구개발 등을 포함해 총 20조 9천억원을 투자했지만, 내년도 투자계획 또한 확정짓지 못하는 등 2008년 경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이 회장이 출국금지 대상에 오르고 재계 안팎에서 소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이 회장의 칩거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연말이면 해외에서 경영구상을 해왔고, 특히 대선이 있던 해에는 장기 출장길에 오르곤 했지만 이번에는 검찰 수사에 발목이 잡혀 있는 만큼 두문불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9일 치러졌던 부친 고 이병철 명예회장의 추모식에 불참한데 이어 5일 예정돼 있던 자신의 취임 20주년 기념식 또한 취소시키고 운신의 폭을 최대한 낮추고 있다.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 내내 ‘망신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올해 각종 신문의 ‘사회면’을 도배하는 사건으로 ‘망신살’이 톡톡히 뻗친 한 해를 보냈다.

둘째 아들과 관련한 ‘보복폭행’에 직접 나섰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구속, 기소되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시한 직장인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신정아 게이트’, ‘아프간 피랍 사태’ 에 이어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올해의 부끄러운 뉴스’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지난 9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고 석방된 뒤 현재 요양을 위해 일본에 장기체류하고 있다.

그룹 총수의 공석이 길어짐에 따라 한화그룹도 임원 인사가 미뤄지고, 내년도 경영구상이 늦춰지는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보복폭행 사건으로 인한 김 회장의 정신적인 충격이 큰 것 같다”면서 “해외체류가 길어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 악재 끝에 ‘함박웃음’

언론에 누구보다 자주 등장했던 현대차 정몽구 회장에게 올 한해는 ‘울다 웃은’ 해로 기억될 듯하다.

지난해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되고, ‘재벌 비리’의 대표적 케이스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정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에도 내내 몸을 낮추며 조심스런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그룹 경영보다는 국가적 행사 중 하나였던 2012년 여수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며 이미지 쇄신에 힘써왔다.

정 회장은 엑스포 개최지 최종결정 직전까지 슬로바키아, 체코, 터키, 미국 등 세계 각국을 돌며 고위 인사들과 만나 여수를 알리고 지원을 호소해 왔다.

여수 엑스포 유치를 위해 지난 4월부터 반 년 간 지구를 무려 세 바퀴나 순회한 것. 총리급 이상의 인사를 만난 것만 5차례에 달했고 장·차관급 인사는 90여 명이었다. 40여 개국의 대사급 인사와도 접촉했다.

이렇듯 심혈을 기울인 끝에 여수엑스포 유치가 성공하자, 정 회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단번에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자연히 현대차 그룹 내 분위기도 달라지며 정 회장이 내년에는 모든 부담을 털어내고 경영에 전념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SK 최태원 회장- 글로벌경영 지휘 ‘훈남총수’ 거듭나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우 2007년을 가장 바쁘고, 뿌듯하게 보낸 총수 중 한명이다.

SK의 글로벌경영이 올 들어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데, SK에너지를 비롯한 그룹의 제조업 수출비중이 5분기 연속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했고 베트남에 진출한 이동통신사업도 가입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올해 들어서만 10여 차례에 걸쳐 중동, 미국, 유럽, 중국, 페루 등 해외 각지를 직접 발로 뛰며 글로벌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

최 회장의 적극적인 글로벌경영은 그룹 안팎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최 회장은 최근 들어 ‘훈남총수’로 거듭나고 있기도 한데, 이유인즉 재벌 회장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들이 언론에 비춰지면서 호응을 얻고 있는 것.

지난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손목에 젤리시계를 차고, 디지털카메라로 쟁쟁한 기업 총수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더니, 한국시리즈 때는 SK야구단 점퍼를 입은 채 김성근 감독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사진이 한 스포츠신문에 보도되면서 또 한번 격식과 형식을 벗어던진 최 회장의 모습이 화제가 됐다.

한편 최 회장은 12월에는 특별한 대외일정을 잡지 않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도 사업구상에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 조양호, GS 허창수 회장 사업구상 하며 연말 보내

이밖에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도 이달에는 별다른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국내에서 조용히 경영구상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조 회장은 글로벌 항공시장의 리더로 떠오르며 항공업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보잉 B787기의 도입으로 2009년부터 차세대 항공기 운항을 시작하고 2010년부터는 에어버스의 A380기도 들여와 장거리 해외노선에서 운항할 계획이다.

또 지난달 중국 최대항공사인 남방항공을 대한항공이 주축이 된 스카이팀 회원사로 영입해 스카이팀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한진은 또 중국시장의 경우 톈진을 거점으로 한 항공화물합작사 그랜드스타와 톈진빈해국제공항에 화물터미널 건설도 확정지으며 올해 중국 내 항공화물 수송, 조업 등 물류수송 사업을 위한 거점을 확보했다.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사업 확장을 강조해온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연말에도 M&A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허 회장은 해외 엔지니어링 회사를 포함해 GS칼텍스·GS건설·GS홀딩스 등 각 계열사별로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히며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허 회장은 지난 2005년 GS그룹 공식 출범 이후 M&A를 통한 사업확장에 관심을 기울여왔지만 딱히 성공사례가 없어왔다. 특별히 관심을 보였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또한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포기한 바 있다.

때문에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허 회장의 M&A 강조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한편 허 회장은 이달 중순 경 카타르 등 중동 지역을 돌아본 뒤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인 18일 귀국한 뒤 내년도 사업구상에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권민경 기자 <kyoung@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