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뒷짐진 盧…무슨 까닭?
한나라 이명박 후보 강도 높게 비판하며 물의 일으키더니, 대선 앞두고 민감한 시기에 침묵 지키는 이유, 알고 보면 ‘그럼 그렇지~’
#“경제정책은 차별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실물경제를 좀 안다고 경제를 잘한다거나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를 잘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 경제를 살린 대통령은 영화배우 출신도 있다.”(1월 25일 신년 기자회견)
#“대운하도 ‘민자’로 한다고 하는데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를 하겠느냐. (균형발전 사업) 공사가 시작됐을 때 혹시 노임과 자재 파동이 있을까 우려해 건교부가 대책을 잘 세우고 있는데 여기다가 대운하 사업까지 같이 엎어 놓으면 틀림없이 자재파동이 난다”(6월2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참여정부평가포럼 특강)
#“종부세로 인해 지방이 엄청나게 혜택을 받고 있는네 이 정책을 폐기하는 사람도 있고 지방세로 바꿔버리겠다는 사람도 있다. 모르죠. 언론도 모르고 국민도 모르고 그냥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근래 정부에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지적하니까 다시 정책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9월12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해)
이처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통해 2007 대선에 직ㆍ간접적으로 간여, 끊임없는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발언의 횟수를 줄이기 시작하더니 12월엔 그야말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盧 예견된 침묵, ‘보수 정부’ 등장 가능성 예견했기 때문?
노 대통령의 조용한 행보는 지난 11월 말께 이미 예견됐었다. 그는 11월 24일 해인사 대비로전 낙성 대법회에 참석, “지난 5년 임기 동안 시끄럽고 힘들었던 기억밖에 별로 안 남아 있는 것 같다”면서 “몇 가지 일들이 남았지만 대부분 이루고 간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언급, 새로운 형태의 정부가 들어설 것을 암시했고, 같은 달 30일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선 “부끄럽지 않게 제 임기를 마감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은 여러분들의 성공이다. 감사하다”고 밝히는 등 정치적 발언을 자제했다.그러더니 지난 7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을 비롯한 전군 주요지휘관들과 오찬을 마련해 그동안 국방부가 추진해온 국방개혁 노력을 치하하면서 급기야 “오늘은 그냥 작별인사나 하려고 한다. 미리 제대 말년 앞두고 인사하자는 것”이라며 “저 제대합니다”라고 미리 ‘전역신고’까지 했다.노 대통령의 이 같은 행동은 그가 ‘보수 정부’의 등장 가능성을 미리 예견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다시 말해 과거와 사뭇 다른 노 대통령의 최근 일련의 행동은 현 대선구도가 그의 ‘바람’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다.일단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사실상 ‘넘어야 할 산’은 다 넘은 상황에서 ‘경천동지’할만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첫 번째 이유로 보인다. 지난 14일 발표된 각 언론사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44.3%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선두를 달리는 등 사실상 당선 가능성 ‘1위’를 유지했다.여태껏 소원한 관계였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관계 복원을 위한 ‘시동’을 건 상태지만 ‘화해의 악수’를 하기에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을 만큼’ 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도 노 대통령이 조용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두 번째 이유다.이명박 당선 가능성은 높고, 정동영은 반대로 희박하고…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 속에서 정 후보의 ‘게걸음’ 지지율이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사실상 ‘자포자기’하게 만든 것 같다”면서 “대통령이 퇴임 이후를 그리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노무현 “퇴임 후 정치 그만둘 것, 자유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노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정치에서 은퇴할 것이라는 구상을 간접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지난 8일 방영된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대통령을 그만두는 것은 정치도 그만둔다는 얘기다. 내 희망으로는 자유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옛날에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희망했던 것이 자유인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권이 지금까지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관측한 것과는 상반된 발언이다.그러나 정치권 한 켠에서는 노 대통령이 밝힌 ‘자유인’이 차기 정부에서 지속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반응이다. 참여정부는 지난 10년간 민주화 정착과 남북화해를 큰 업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차기 당선자도 이어줄 것을 강조 중이다.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의 정신을 계승한 것처럼, 향후 들어서게 될 차기 정부 또한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쌓아놓은 성과’는 이어가라는 것이다.그러나 차기 정부가 현 노무현 정부의 성과를 부정하거나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이면서 정통성에 전면적으로 도전할 경우 노 대통령의 침묵은 그 순간부터 멈출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당선 유력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북핵 폐기와 실질적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적 ‘대북 개방정책’ 추진하겠다는 입장인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방’이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남북한 간의 협력의 물꼬가 원활히 트여질까 의문”이라는 게 범여권 및 진보개혁 세력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대선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론’이 벌써부터 모락모락 피어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