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첨단기술 유출 4년간 171조원
최근 현대차 수천억짜리 기술 중국으로 넘어가
2008-12-14 권민경 기자
반도체·휴대전화에 이어 조선, 자동차까지 산업계에서 기술 유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대표 차종인 NF쏘나타와 싼타페의 핵심 제조기술을 빼돌려 10억여원에 중국에 팔아넘긴 현대차 직원 2명이 검찰에 붙잡혔다. 국내 자동차 기술의 해외유출은 올 들어 적발된 것만 두 번 째. 다행히 해당 기술이 현지에서 실용화되기 전에 유출 사실을 적발했지만, 중국 업체들이 각종 ‘짝퉁’ 자동차로 한국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으로 한국과 중국 간의 자동차 기술 격차가 급속히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비단 자동차 업계만이 아니다. 첨단 IT 기술에 집중돼있던 기술 유출이 최근 조선, 철강 등 주력 제조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면서 중국 등 후발 개도국으로의 기술 유출보안에 비상등이 켜졌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부장 김동철)는 NF쏘나타의 주요 부품과 싼타페 자동변속기 등의 설계도면을 중국 장화이기차 공사에 빼돌린 혐의(부정경쟁행위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로 현대차 윤모 과장과 중국사업본부 김모 과장을 지난 5일 구속했다. 검찰과 현대차에 따르면 윤씨는 작년 초 싼타페에 장착되는 ‘파워 4단 자동변속기’ 설계도면 270여장을 CD에 담아 김씨를 통해 장화이기차에 넘겼다. 이들이 넘긴 제작기술은 현대차가 3천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해 2년 만에 개발에 성공했던 것으로, 특히 탑재된 자동변속기 기술은 현대가 10년만에 어렵게 국산화에 성공한 핵심 중의 핵심 기술로 알려졌다.윤 과장과 김 과장 등 두 명은 2005년 말에도 구형 싼타페, 투싼, 기아차 스포티지 등 SUV 차량에 장착되는 4단 자동변속기 관련 기술을 장화이기차에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유출 된 지 2년 지나서야 발견…허술한 보안 문제?
현대차는 이 같은 기술 유출 사실을 2년이 지난 후에서야, 그것도 스위스에 있는 현대차 협력업체의 제보를 통해 발견하고 3개월 전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물론 기술 유출 사건의 대부분이 내부 직원을 통해 새어나가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중국 측의 잇따른 기술 유출 의도를 알고서도 번번이 이를 막지 못하고 있는 기업의 허술한 보안관리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기아차에서 4조7천억원 규모의 신차 개발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에도 현대·기아차의 보안의식과 시스템에 대한 허점이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당시 기아차 전, 현직원 9명은 쏘렌토의 차체조립 및 용접기술 등을 중국 자동차 회사에 넘겼다가 구속된 바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5년 동안의 노하우가 축적된 기술 57건을 9차례에 걸쳐 e메일을 통해 유출했는데, 핵심 정보에 접근하기까지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생산현장에 설치된 컴퓨터에 이동식 저장장치를 꽂아 퇴직 동료에게 부탁받은 정보를 고스란히 내려 받은 것이다. 더욱이 현직 직원이 중국 측에 e메일로 정보를 넘겨주면서 해당 파일에 ‘다 빼먹어라’라는 식의 제목을 달았다는 사실까지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기아차는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직원이 현대· 기아차의 차체 조립기술을 중국에 넘기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는 기술 유출 사건이 잇따르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안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유선전화, 휴대전화, 개인 컴퓨터 등에 대한 보안수준을 강화하고 보안시스템의 상시 가동을 통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것.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 5월 기아차 정보 유출 사건 이후 현재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보안등급이 강화됐다”면서 “이번 유출 사건은 시스템이 강화되기 전에 일어난 것으로, 향후에는 이 같은 유출이 재발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잇따른 기술유출, 기업 내부 보안 강화 시급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은 비단 자동차 업계만의, 또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 8월 포스코 기술개발실에서 일했던 연구원들이 중국 철강업체로부터 13억여원을 받고 포스코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철강재 제조 핵심기술을 빼돌린 바 있다. 5년간의 피해액만 2조8천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될 만큼 엄청난 손실이었다. 앞서 7월에는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했던 한 간부가 선박 설계도가 들어있는 컴퓨터를 통째로 가지고 중국 업체로 자리를 옮기면서 조선업계를 발칵 뒤집을만한 기술유출사건이 발생했다. 선박 69척 설계도 관련 파일이 중국으로 넘어가기 직전 검찰에 적발됐지만, 만약 이 기술이 중국 조선업체로 유출됐을 경우 피해액은 수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5월에는 국내 기술로 국제적 표준을 획득한 ‘와이브로’ 기술이 미국으로 유출되기 직전 검찰과 국정원의 공조로 적발됐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0월 센터 설립 이후부터 올해 10월까지 4년간 적발된 기술 유출 시도는 119건에 달했다. 이에 따른 추정 피해액도 2003년 13조9천억원 수준에서 올해 79조 7천억원으로 급증해 4년간 피해금액만 171조원에 달한다. 기술유출 범죄로 입건된 사람 또한 크게 늘어나 지난 99년 39명에 불과하던 것이 2006년에는 237명으로 나타났다. 실형 및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 가운데는 전기전자 분야가 가장 많았고 해외 기술 유출 대상국은 주로 중국이었다.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더욱 강력한 보안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직원들에 대한 보안,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론 기술 유출 문제가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면서 ‘국가 안보’로 간주해 국가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기술유출자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