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은 ‘나’…“꿈이 없는 대학을 거부한다”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1일 청계광장서 기자회견

2012-11-01     변주리 기자

[매일일보=변주리 기자] 대한민국의 입시를 앞둔 청소년들에게 이제 대학은 ‘빚을 지게 만드는’ ‘나를 지치게 만드는’ ‘사회에 의해 강요되는’ ‘경쟁을 강요하는’ ‘학문이 설 자리를 잃은’ ‘꿈이 없는’ 곳이 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9일 앞으로 다가온 1일 오전 11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대학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적어 넣은 ‘나는 OO 대학을 거부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대학거부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학거부…“배움 포기한 것은 아냐”
경쟁 강요하는 사회…원죄는 ‘대학’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대학을 그만두거나 가지 않는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라며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학 거부가 우리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비춰지기에,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나 어렵다”며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할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한다”며 “우리는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 ▲학벌·학력에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 ▲다양한 가능성이 꽃 피울 수 있는 교육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 등이 실현돼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금의 사회와 대학,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다”며 “우리의 행동이 지금의 대학과 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호야(닉네임)’는 이날 발언을 통해 “(이 모임에 동참하고 있는 이들은) 각양각색의 이유로 대학을 거부했지만 모두 용감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선택을 하는 것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 앞에 수많은 차별과 편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호야는 “저 역시 가정에서 하루에 한 번씩은 뭐하고 살 것이냐는 말을 듣고 있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학생이냐고 묻는다”며 “이런 대학 중심적 사회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어버린 우리는 온 몸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맞서려한다”고 결의를 다졌다.

대학 자퇴 예정인 휴학생 ‘강현(닉네임)’은 “실력을 기르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고 장학금을 주는 대학교로 진학했지만, 취업에 맞춰진 교육을 하는 대학에 실망했다”며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 매커니즘이 계속 흘러간다는 게 가장 큰 병폐”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그 틀을 깨지 못하면 청소년들은 계속해서 희생당하고, 나아가 우리가 자라나서 자식을 낳았을 때 그 자식 역시 희생될 수 있다”며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함께 거부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입시 거부를 준비하고 있는 19살 ‘둔코(닉네임)’는 “대학을 거부하신 2,30대 분들의 선택을 지지한다”며 “비슷한 선택을 한 사람끼리 같이 걸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섯명의 고3 학생들이 제안해 지난 9월3일 발족된 이 모임은 1일 현재까지 30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 입시를 앞둔 93년생뿐만 아니라 이미 대학 입시를 거부했거나 중도에 자퇴한 20대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앞서 이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부근 ‘걷고 싶은 거리’에서 학력과 교육의 악령을 막겠다는 의미로 ‘입시좀비 스팩 좀비 할로윈 행진’을 벌였으며 ▲줄세우기 무한경쟁교육반대 ▲권위적인 주입식 교육 반대 ▲학생 인권 보장 ▲교육 목표 입시 반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예산 확보 ▲대학에 대한 편견 제거 ▲학벌 차별 반대 ▲안정적인 사회보장 등 8대 요구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들은 1일부터 10일까지 청계광장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며,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날인 10일에는 ‘19살(고3)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12일에는 ‘경쟁과 학벌만을 강요하는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거리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달 12일 서울대생이 트위터를 통해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반대하며 자퇴한 사실을 공개해 화제가 됐던 ‘공현(@gonghyun)’ 역시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