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우리 시대의 조광조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문재인 정부가 혼란 속에서 집권 3년차를 맞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랐지만 빗나간 기대가 될 듯해 걱정이다. 1년 반이 이렇다면 남은 3년 반이 어떨지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답답한 마음에 역사로 눈을 돌려본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현대사의 주류세력을 교체하려 한다는 점에서 조선의 사림을 닮았다. 조선 초 사림은 무오·갑자 두 차례의 사화를 겪고도 꺾이지 않고, 조선의 주류를 교체하기 위한 재도전에 나섰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지배층인 훈구세력의 부패와 모순이 여실히 드러났기에 중종반정 직후 재기에 나선 사림세력은 ‘적폐청산’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쥘 수 있었다.
당시 재도전에 나선 사림의 중심에는 조광조가 있었다. 17살 때 김굉필의 문하로 들어가면서 사림의 적통을 잇게 된 조광조는 불과 34살 나이에 사림의 우두머리로 정치 전면에 나섰다. 이후 그가 기묘사화로 죽음을 당하기까지 4년 동안 조선 지배층은 폭풍의 시간을 보냈다. 사림은 현실보다는 성리학이라는 이념에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다.
조광조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이상을 모아 ‘하늘(天)’이라고 이름 붙이고는 인간 세상에 하늘의 이치를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상만사를 이념의 눈으로만 바라봤기에 무리수가 많았다. 미미한 존재였던 소격서조차 적폐 중의 적폐로 몰아 자신을 중용한 왕과 척을 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 민심을 달래는 목적이니 그냥 두자고 해도 성리학적 질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지를 고집했다. 이념의 잣대로 재야할 것과 그렇지 않아야할 것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조광조의 무리수는 특히 사람을 대하는 부분에서 심했다. 그는 세상사 모든 문제를 소인배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에게 세상의 온갖 적폐는 소인배들이 지배층을 이룬 결과였다. 그가 바라는 깨끗한 세상을 위해서는 세상을 순수하고 올바른 사람이 이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인재를 평가할 때 현실적인 능력이 아닌 유교 경전에 능통했는지,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있는지, 의도가 선한지를 따졌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인재들로 조정을 채우기 위해 삼국지에나 나오는 현량과(인재 추천제)를 도입해 고위직에 앉혔다. 명분은 그럴싸했지만 결국 사림들, 특히 조정과 연줄이 있는 이들을 위한 특혜인사였다.
조광조의 여러 무리수는 결국 4년 만에 다시 사화로 돌아왔다. 요컨대 세상만사를 이념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 결과 조선사회 주류를 바꾸려는 도전이 다시 실패로 끝난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어쩌면 똑같은 실책을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이념을 집어넣어 소득주도성장 실험을 단행하는가하면, 문제가 터졌다하면 이전 정부 탓, 불순물 탓을 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개혁을 좌초시키려는 음모로 몰고,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의 입에는 자물쇠를 채운다. 이런 식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주류세력 교체 시도 역시 앞날이 순탄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