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대통령'과 손잡은 재계 총수들
이 당선자 ‘투자·고용 확대’에 기업인들 ‘규제완화’ 주문
말 아낀 이건희·구본무 회장, 보따리 풀어놓은 정몽구 회장 대조
[매일일보=권민경 기자]
좀처럼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재계 총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 살리기’ 공약의 실천을 위한 행보에 시동을 걸고 경제인 간담회를 주최하자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일제히 화답했다. 이 당선자는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주요 경제단체장 및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갖고 차기 정부의 경제운용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경제단체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 LG 구본무 회장, SK 최태원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참석했다. 특히 지난 11월 ‘삼성 비자금 의혹’ 폭로 이후 칩거에 들어갔던 이 회장의 참석과 8년 만에 전경련을 찾은 구 회장에게 재계의 이목이 쏠렸다. 최초의 ‘CEO대통령’과 재계의 만남이 가져올 앞으로의 경제 효과에 벌써부터 재계 안팎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당선자는 대선 이튿날인 지난 20일 첫 기자회견을 갖고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하는 것 자체로 (기업들의) 투자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인수위원회가 발족하면 많은 경제단체와 직종별 경제인을 직접 만나 새 정부 투자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따로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6일 인수위가 공식 출범하자, 바로 재계와의 회동계획을 발표했고 첫 기자회견 후 8일 만에 총수들과의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 당선자는 내달 중순까지도, 중소기업 관계자들과 만남을 갖고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인 등과도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당선자가 이처럼 ‘경제 살리기’ 공약의 실천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자 재계 안팎에서도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이 당선자가 기업들에 적극적인 투자를 주문하는 만큼, 그동안 투자의 걸림돌이 돼온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당선자 역시 “차기 정부에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eindly 친기업적인) 정부를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일자리는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함으로써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 외에 할 게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새 정부는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기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면서 “일자리 창출에 기업이 적극 협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재계에서는 이 당선자가 간담회를 통해 기업 총수들을 만난 방식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을 내리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전경련을 직접 찾아 기업인들을 만난 것도 처음이고, 과거 1998년 김대중 당선자, 2003년 노무현 당선자는 4대그룹 총수들을 각각 국회와 인수위 사무실로 불러 딱딱한 분위기에서 회동한 바 있다.
때문에 이 당선자가 먼저 만남을 제안하고, 또 기업인들의 모임 장소인 전경련을 직접 방문하는 등 기업 챙기기에 나서자 반색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지난 10년간 정부와의 의견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껴왔는데,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달라진 환경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날 간담회에는 이 당선자의 경제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입증하듯,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기업 총수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수개월 간의 칩거 중에 모습을 드러낸 이건희 회장은 취재진의 엄청난 질문 공세에 시달렸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8년 만에 전경련에 모습을 드러낸 구본무 회장 역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내년 투자계획에 대한 질문에 “제철소 건설에 5조2천억원, 자동차 연구개발에 3조5천억원을 투자할 것”이라며 “나머지 계열사 투자를 합하면 그룹 전체 투자액은 1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또한 “내년에는 연구개발 투자를 작년에 비해 10~20% 정도 늘릴 예정”이라며 이 당선자에게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발전을 위해 힘써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신세계 구학서 부회장은 “백화점과 중국 투자를 대폭 늘릴 계획이며, 그렇게 되면 고용 창출도 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복폭행’ 이후 한동안 일본에서 요양한 뒤 얼마 전 귀국해 대외활동을 재개한 한화 김승연 회장도 간담회에 참석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김 회장은 “감회가 새롭다”면서 “한국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이 논의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밖에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 GS 허창수 회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류진 풍산 회장 등이 간담회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