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사립대 체대교수, 제자 성폭행 논란

검찰 수사결과, 학위 미끼로 여제자 5차례 성폭행 충격…사제 간 진실공방으로 이어져

2008-12-28     류세나 기자

몸 더듬는 교수 VS 싫어도 아무 말 못하는 ‘학점의 노예’ 대학생
성폭행 사건에 손발 놓은 A대학 “입시철이라 바빠서…” 변명
총학생회 “수업거부 ∙ 서명운동 통해 사제 간 성폭행 근절할 것”

학문을 연구하고 지성인으로서의 인격을 닦는다는 ‘상아탑’의 위상에 금이 가고 있다. ‘지옥같다’는 입시를 치러낸 뒤 부푼 꿈을 안고 입학한 대학. 대학만 가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던 새내기들과 학부모들. 그러나 이들은 잊혀질만하면 보도되는 ‘캠퍼스 내 사제간 성폭행’ 파문으로 조금씩 대학에 대한 신뢰감을 저버리고 있다.

물론 대학교수와 제자간의 ‘성폭행’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 두 달 새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대학 내 사제 간 성폭행’ 의혹 사건만 벌써 2건. 한달에 1번꼴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일회성에 그친 우발적인 성폭행이 아니라는 점과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유명 사립대학교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최근 서울 강북소재 A대학교에서 이 같은 사건이 또 불거져 <매일일보>에서 그 현장을 단독취재 했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A대학교 체육대학장인 K교수의 연구실 안. K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B양에 의하면 K교수는 B양에게 최근 1년여 동안 5차례에 걸친 성폭행을 가했고, 성추행은 수시로 이뤄져왔다.

K교수가 B양을 쉽게 추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B양이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으로, K교수의 개인조교였기 때문이다. B양은 학위 등을 미끼로 다가오는 교수를 쉽사리 뿌리치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은 1년여 동안 반복돼왔다는 게 B양의 주장이다. 지난 1년간 말 못할 고민을 안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내오던 B양은 결국 지난 12월말께 서울 성북경찰서에 K교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K교수가 혐의사실에 대해 전면부인하고 있고, 범죄 입증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같은 달 24일 K교수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학점 앞에 ‘순한 양’되는 대학생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일단 A대학교 체육대학 학생들에 의하면 K교수가 성폭행 혐의를 받을 만한 처신을 한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학생은 자신이 새내기였던 200X년을 떠올리며 당시 상황을 기자에게 이같이 전했다. “K교수님과 함께한 회식자리에서 교수님이 옆 자리에 앉은 동기 여학생의 어깨며 무릎을 자꾸 더듬는 것을 봤어요. 그냥 딸 같으니까 예뻐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이후에도 교수님은 술을 마실 때면 그런 모습을 자주 보이셨어요.”또 다른 학생 역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 학생은 “K교수는 어깨를 잡는다던가 하는 가벼운 터치를 자주한다”고 말하며 “어느 한 술자리에서는 K교수가 한 여학생에게 어깨동무를 하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여학생이 싫은 티를 냈지만 K교수의 행동은 막무가내였다. 학생들 모두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지만 ‘교수님’이었기 때문에 누구하나 나서지 못했다”고 불쾌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K씨가 자신의 학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교수’라는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K교수 손길이 거북함에도 불구하고 ‘순한 양’처럼 온순(?)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K교수가 학생들에게 교수답지 않은 불순(?)한 모습만을 보여 온 것은 아니었다. 한 학생(99학번)은 “내가 갖고 있는 K교수의 이미지는 ‘교수다운 교수’다. 캠프 등을 가도 학생들과 함께 야외에서 자는 등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면서 “K교수가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학번을 밝히기 꺼려한 한 학생도 “평소 K교수의 모습에서는 도저히 ‘성폭행’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가 없다. 잘 알지 못하는 학생이 인사해도 꼬박꼬박 받아주던 인자한 분”이라고 평했다. 학생들에게 야누스처럼 ‘교수’의 모습과 ‘흑심을 품고 있는 남자’라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보여 온 K교수. <매일일보>에서는 K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그와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휴대폰에 저장돼있지 않은 번호여서인지 K교수는 전화를 아예 받지 않거나 받아도 바로 끊기를 반복했다. 수십여번 만에 가까스로 성공한 K교수와의 통화.전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온 “여보세요”라고 말하는 K교수의 목소리에는 긴장한 듯한 기운이 잔뜩 서려있었다. 간신히 성공한 전화통화의 기쁨에 기자는 밝은 톤의 목소리로 “ㅇㅇㅇ교수님 휴대폰이 맞냐”고 물었고, 자신의 제자가 건 전화로 착각, 안심한 듯한 K교수는 이내 “어, 그래”라며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기자가 이내 신분을 밝히고 말을 이어가자 K교수의 목소리는 바로 돌변했다. 기자는 “교수님 의중을 듣고 싶어 전화했다”며 말을 건넸지만 K교수는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데…”라는 기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K교수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더 이상의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법원 대질신문과 영장심사 등에서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맞고소까지 신청한 K교수, 그는 언론에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것조차 힘들만큼 심신이 지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하고 싶은 말이 없었던 것일까. 이후 기자는 여러 차례 K교수와의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체대 위계질서잡기’가 가장 먼저?

“K교수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B양은 경찰에 고소할 당시, K교수가 성폭행 뿐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에게까지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B양 어머니가 K교수의 연구실로 직접 찾아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교수가 B양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혔다는 것. B양은 경찰에 진단서를 제출하며 “교수와 어머니와의 대면과정에서 입은 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현장을 목격한 A대학 체대 학생들은 B양과 반대의견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 한 중년여성과 교수님이 싸우고 있었다”면서 “교수님은 중년여성에게 멱살을 잡힌 상태였고 옷도 찢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생 역시 “연구실 앞을 지나갈 때 한 여성에게 맞고 있는 교수님을 봤다”면서 “학과 교수님과 관계된 일이다 보니 자리를 지키고 ‘구경’할 처지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지난 95년부터 A대학교 체육대학 교수로 재직해온 K교수는 본지 취재결과 A대학교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A대학에 체대가 막 생겼을 무렵, 이 학교에 학생으로 입학한 K교수는 설립당시부터 지금까지 A대학 체대의 속사정을 모두 꿰뚫고 있는 그야말로 ‘원년멤버’인 셈이다. 이와 관련 이 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C씨는 “몇 달 전부터 체대교수 여학생 성폭행 얘기가 흘러나와 체육대학은 물론이고 학교 내부적으로 시끄러운 상태”라며 “개인적으로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예민한 사안이겠지만 선후배 위계질서가 유독 강한 체대의 특성 또한 ‘K교수 사건’이 좀 더 늦게 세상에 공표되게 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K교수 성폭행 사건의 진실여부를 떠나 총학생회 차원에서 강경대응해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사제간 성폭행’에서 학생들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C씨는 “학생들이 교수를 쫓아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없는 소문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되어지지 않는다”면서 “K교수의 혐의가 경찰 수사 결과에서 밝혀진다면 자동적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수업거부나 서명운동 등을 진행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만 중요하고 성폭행 사건은 강 건너 불구경

K교수 성폭행 파문이 불거진 시기가 대학원서 접수철인 만큼 해당 학교측은 더욱 조심스러운 표정이다. 학교측 관계자는 “로스쿨에 사활을 걸었다”고 밝히며 “오는 1월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 발표를 앞두고 있기에 민감한 내용의 보도를 자제 해달라”고 요청했다. 민감사항의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구와 달리 정작 학교 측은 ‘K교수 사건’ 대응에 대해 무관심한 듯 보였다. 그 이유는 K교수의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정시 ∙ 편입원서 접수 등 바쁜 학사일정이 겹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A대학교 홍보팀 과장은 “대학 정시, 로스쿨 발표 등을 앞두고 있어 한 해 일정 중 가장 바쁘고 민감한 시기기 때문에 아직 K교수 사건에 관한 자료수집을 끝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이어 “현재 K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태고, 잘못 내뱉은 말 한마디로 K교수가 교육계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K교수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조치도 취할 수 없다”며 “만약 K교수의 혐의가 인정돼 금고(1개월 이상 복역) 이상의 형이 확정된다면 교원규정에 따라 퇴직처리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이미지 실추에 대한 심리적 압박은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이 과장은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이름 등이 공개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면서 “혐의사실이 인정되면 그 때 다시 만나면 안 되겠냐”고 덧붙였다.교원팀 한 관계자는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는 했지만 현재도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혐의가 완전히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K교수에 관한 모든 정보는 기본적인 것조차 공개할 수 없다. 좋은 일도 아니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K교수의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됐지만 현재 K교수의 성폭행 혐의에 대한 보완수사는 성북경찰서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당시 구속영장 발부여부 대질 신문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 최창석 검사는 “피해자와 피의자가 주장하는 바가 너무나 다르고 K교수의 범죄 입증사실이 부족했다”고 기각사유를 밝히면서 “양측 간의 다툼의 소지가 많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문제이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고 세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기자에게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