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박정희 재평가? 박근혜에 ‘불똥’
박정희 유산 10조?…주진우 “박근혜 재산 추적”
2012-11-17 도기천 기자
[매일일보 = 도기천 기자] 지난 14일 박정희기념관과 동상이 완공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평가 논란이 불붙고 있다.
특히 10.26재보선 패배로 내홍에 휩싸인 여권이 친이계와 친박계로 갈려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때라, 박정희 역사 재평가 논란이 ‘박근혜 흔들기’로 번질 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박 전 대표의 재산(유산)에 관한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안철수 효과로 대세론에 브레이크가 걸린 박 전 대표가 이번에는 ‘박정희 재평가’라는 유탄을 어떻게 피할지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동상’ 제막 · ‘기념도서관’ 완공…기념사업 ‘도마 위’
400여 시민단체 “친일·독재자 기념사업 중단하라” 요구
유신때 고초 겪은 이재오․김문수, ‘박근혜 흔들기’ 나서
박정희 남긴 재산 10조?…주진우 “박근혜 유산 추적”
기념관이 들어선 자리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산 한쪽 면을 절개해서 지어졌다. 마치 산 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연면적 5260㎡에 3층 규모. 1층은 전시실, 2층은 전시실과 일반 열람실, 3층은 특별자료 열람실로 꾸며졌다. 박 전 대통령 관련 각종 사료와 전자도서관, 중점 7대 분야 시책, 연도별 공적 등을 전시돼 있다.
기념사업회 측은 “전체공간 중 55%는 도서관으로, 45%는 기념전시관으로 사용되며,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경북 구미의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7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동상은 60~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상징하는 두루마리를 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다.
기념사업회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유지인 근면·자조·협동정신을 다시금 일깨우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동상의 의미를 설명했다. 구미시민 3만2547명이 6억여원을 모금해 동상 제작에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불붙은 역사평가 논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과 동상이 잇따라 건립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역사 평가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박정희기념관과 동상이 완공된 14일, 학술단체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422개 시민사회단체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발족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백선엽,김백일,이승만 동상 건립과 다큐멘터리 방영, 박정희기념도서관 개관, 개발독재와 재벌독점을 미화하는 교과서 개악 등 전방위에 걸쳐 조직적인 역사왜곡이 자행되고 있다”며 “친일·독재 인사에 대한 기념사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에는 함세웅 전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사회 원로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와 관련, 박정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김대중 대통령때부터 추진했던 사업인데 지금에 와서 문제 삼는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며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고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학계에서는 ‘사회 양극화가 박정희의 개발독재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참여연대 소속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 경제학자 8명이 지난 달 펴낸 '박정희의 맨얼굴'이란 책에서의 주장이다.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추진위원회'와 한겨레신문이 지난 2009년 주최한 ‘박정희 시대의 바른 평가를 위한 학술대회’에 발표된 글들을 중심으로 책이 만들어졌다.
한겨레신문․오마이뉴스․나꼼수 등 진보성향 미디어들도 잇따라 박대통령 집권시절의 숨은 비화를 공개하며 포문을 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박정희 권력평가' 시리즈에서 "대통령 비밀 안가(安家)에 다녀간 여자만 200명"이라고 보도했으며, 나꼼수에 출연중인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지난달 19일 열린 '박정희의 맨얼굴' 출판기념회에서 “박정희가 남긴 재산이 10조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 기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사장직을 역임했던 육영재단과 관련, “2009년 1월 재단 분쟁때 내로라 하는 깡패들, HID 재향군인회 다 왔는데 박근혜씨 쪽에서 동원한 사람이 한센병 환자들이다. 이들이 나중에 (재단 분쟁을) 다 정리했다”고 폭로했다.
주 기자는 “향후 박근혜 전 대표 등의 재산에 대해 심층 취재해 기사로 쓰겠다”고 밝혔다.
주 기자의 주장은 ‘박정희 시각교정’이라는 6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있다.
또 전국 15개 민주화운동 단체가 모인 민주평화복지포럼은 지난달 19일 '5ㆍ16 군사반란 50년' 3차 학술대회를 서울 프레스센터 연데 이어, 내년 10월 유신 40주년 때에 맞춰 유신정권에 협조했던 학자와 검사, 수사관 명단을 모은 '유신 반민족 행위자 인명사전'을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복지포럼 상임대표인 이부영 전 의원은 “내년 ‘10.26’(박 전 대통령 서거일)에 즈음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처럼, 유신체제에 부역했던 인사들의 명단을 사전으로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재평가 논란이 불거져 나오는데 대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박정희 재평가’를 반기는(?) 분위기가 조심스레 감지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10.26재보선 패배로 여권은 친이(MB)계와 친박(박근혜)계, 쇄신파 등으로 나눠져 내홍을 겪고 있는데, ‘박근혜 대세론’ 흔들기에 나선 쪽은 친이계와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다. 이들은 ‘박정희 재평가 논란’이 박 전 대표에게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친이계 수장격인 이재오 의원은 지난 9월 당에 복귀하기 전까지 특임장관으로 ‘MB발(發) 개헌론’을 주도하며 박근혜 전 대표 측과 정면 충돌했었는데, 그 뿌리에는 ‘박정희家’와의 오랜 악연이 자리잡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60~70년대에 이 의원은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세 번씩이나 옥살이를 한 전력이 있다. 특히 1979년에 세 번째 구속됐을 때는 안동댐에 들렀다 '박근혜양 방생기념비'를 보고 “유신의 실체”라고 말한 게 문제가 됐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이 의원은 2004년 한 인터뷰에서 당시 당 대표이던 박 전 대표를 향해 “독재자의 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주장에 박 전 대표는 “당의 뿌리가 3, 5공인 줄 모르고 왔느냐”고 맞받아쳤다.
이 의원은 2007년 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의 수장을 맡으면서 박 전 대표 측과의 싸움을 진두지휘했다. 이듬해 18대 국회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가 대거 탈락하자 박 전 대표 측은 ‘친박 학살 공천’ 주역으로 이 의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달 들어 박 전 대표에게 ‘신비주의 정치’라며 연일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유신 때 긴급조치 위반으로 이 의원과 함께 혹독한 고초를 겪은 경험이 있다.
이들이 일련의 박정희 기념사업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박 전 대표와 같은 당 소속이라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박정희 재평가’를 내심 반기고 있다는 게 여의도 주변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