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눈보라에 인적 '뚝' 끊긴 태안

<르포> 2007년 마지막날 태안에서 눈보라와 싸우는 사람들

2008-12-31     매일일보

【매일일보제휴사=뉴시스】2007년의 마지막 날. 기름유출 사고 이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던 충청남도 태안 일대는 폭설과 폭풍 등 기상악화로 방제작업이 전면 중단됐다.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 인적이 뚝 끊기자 태안 사고현장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어제부터 내리던 눈은 어느새 발목까지 쌓였고, 오늘 하루 동안 그만큼의 눈이 더 내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해안가에는 서 있기 조차 힘들만큼 거세바람과 집체만한 파도가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밀려들고 있다. 올 겨울 들어 태안지역에 가장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 예년 같으면 세밑에 내리는 하얀 눈이 반갑게 느껴질 만도 하지만 최악의 한해를 보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지금 내리는 눈은 마냥 야속하기만 하다. 사고 이후 관광객을 대신해 마을마다 북적이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마저 자취를 감춰 더욱 을씨년스럽다. 연말연시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내려 온 자원봉사자들도 기상악화로 방제작업이 전면 중단되자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봉사자들 일부는 아쉬움에 발걸음을 떼지 못 하고 인근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이따금씩 바닷가에 나와 방제작업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지만 좀처럼 날씨가 좋아질 것 같지 않자 실망하는 눈치다. 기름유출 사고 이후 깊은 절망에 빠졌다가 전국 각지에서 전해지는 온정의 손길에 희망을 쫓던 주민들도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도 2만천여명이 자원봉사를 신청했지만 모두 다음을 기약했고, 새해 첫날인 1월1일에도 7천600여명이 기름 제거 작업에 동참하길 원했지만 이들의 활동 허용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태안 재난종합상황실에는 자원봉사 신청자들의 전화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태안군은 앞으로 일주일 이내 신청은 받지 않기로 해 여러모로 태안지역 주민들은 쓸쓸한 연말연시를 보내게 됐다. 남도문씨(49)는 "많은 사람들이 팔 걷어붙이고 도와줘서 감사할 따름이다"면서도 "날씨 탓에 봉사자들도 당분간 찾지 못해 마을 주민들끼리 쓸쓸하게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태안 재난종합상황실은 "기상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도저히 방제작업을 진행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돼 전면 중단 조치를 내렸다"며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자원봉사자들에게 오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우선 풍랑·대설·강풍주의보가 해제되는 시점에서 방제 작업을 재개할지 여부를 검토한 뒤 봉사자들의 방제 활동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정수역을 자랑하던 태안 앞바다를 옛 모습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2007년 마지막 날까지 강풍과 눈보라에도 아랑곳 않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31일 충남 태안에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에 눈보라까지 치면서 기름 방제작업이 이틀째 전면 중단됐다. 앞으로 2~3일은 더 기름제거 작업을 할 수 없을 전망이어서 주민들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고 이후 계속된 방제작업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충남 태안군청에 자리한 재난종합상황실에는 연말연시도 잊은 채 태안군청 직원들과 유관기관 파견근무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전체 650여명의 군청 직원 가운데 100여명이 상황실에서 격일로 근무를 하고 있고 나머지 550여명은 기름때가 묻어있는 현장에 직접 나가 자원봉사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상황실은 자원봉사 신청 및 문의 전화를 받는 직원들의 열기로 갑자기 찾아 온 강추위를 무색케 했다. 잠이 모자라 한켠에서 잠깐 눈을 붙인 사람들이 어우러진 모습도 20여일 동안 상황이 지속되면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24시간씩 교대근무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상황실에서 24시간을 꼬박 근무하고 쉬는 날인 다음날 밀린 행정업무를 처리한다. 그래서 늘 잠이 부족하다. 그래도 많은 국민들의 걱정과 천리길을 멀다 않고 찾아와 격려해준 국민들의 애정을 받았던 만큼 아름다운 태안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며 피곤함도 잊은 채 일을 하고 있다. 태안군청 해양수산과 조규성(48) 수산증식담당자는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태안을 지원하고 있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지금도 눈이 감기고는 있지만 더 열심히 해서 국민들의 애정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가장 힘을 받는 순간은 자원봉사자들의 열정과 애정이 느껴질 때다. 특히 전날부터 기상악화로 방제 작업이 중단된 가운데에도 자원봉사자들의 신청 및 문의 전화가 빗발칠 때 이들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오히려 자원봉사를 오겠다는 사람들에게 악천후로 안전사고가 주의된다며 다음 기회에 따뜻한 온정을 나눠달라고 설득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태안군청 미래전략추진단 명강식(42) 제2팀장은 "태안 일대가 빨리 복원돼 아름다운 옛 모습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며 "국민 모두에게 이번 사고와 같은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새해 소망을 밝혔다. 환경운동연합도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하고 하루 뒤인 8일부터 태안 신두리와 천리포에 자체적으로 상황실을 마련했다. 태안을 비롯한 서해안 지역의 기름 오염실태를 파악하고 일반 봉사자들이 보다 체계적이고 실속 있는 방제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은 날씨가 좋아지면 언제든 방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천리포 상황실에는 줄곳 10여명의 활동가들이 상주하며 24시간 비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날씨가 춥다고, 파도가 높게 인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어 그 동안의 방제활동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방제계획을 세운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해야할 연말연시에 홀로 새해를 맞아야 한다. 함께 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가족들도 이번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심각성을 알고 함께 걱정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단다.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처장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에게 깨끗한 태안을 되돌려주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힘든 기색 없이 방제작업을 벌인 봉사자들의 공이 제일 크다"며 "새해에는 파괴된 생태계를 하루빨리 복원시켜 주민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도록 보다 세분화된 방제작업을 펼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