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현 칼럼] 저 고독한 몸짓은 그리움인가
2020-01-06 고산정 시인 배동현
[매일일보] 한해가 저무는 늦가을이 오면 경주시에 있는 무장산에 한번 가보라 권하고 싶다.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절정을 이루는 경주시운곡면 국립공원 무장산 갈대숲은 그동안의 단풍 물결과는 색다른 그윽한 풍경과 느낌을 가져다준다. ‘갈색 추억’으로 불리는 갈대의 향연은 무리지어 가는 바람의 날갯짓과 철새들의 울음소리와 어우러져 사람들의 별난발길로 유혹한다. 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물결치는 갈대는 한낮의 햇빛을 머금을 때가 가장 화려하다. 그 햇빛이 그리움의 절정에 이르면 써로 부등켜 안고 온몸으로 비비며 흐느껴 운다. 저 고독한 몸짓은 그리움일까? 아니면 외로움의 극치일까? 옛 선조들은 갈대의 가치를 크게 사랑했다. 갈대에서 대금의 떨림막을 채취할 수 있었고, 갈대꽃으로는 빗자루로 만들어 애용했다. 또 중간 줄기와 뿌리는 땔감으로 만들어 활용했다. 갈대꽃은 아침나절엔 은빛을 띠지만 해가 절정에 다른 정오가 되면 잿빛 색깔을 뿜어낸다. 해가 질 무렵에는 황갈색을 연출하여 햇빛을 받은 부분은 무장산을 멀리서 바라다보면 반짝임도 유난쓰러워 그 화려함이 극치에 이른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고단한 몸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길에 우연히 올려다 본 겨울하늘은 가히 환상의 달빛축제로 온 세상에 하얗게 부서져 물드리는 무장산의아름다움은 장관을 연출한다. 달은 늘 그곳에 있었으나, 일상에 찌든 우리는 마치 큰 발견이나 한 듯 경외감에 싸로잡혀 발길을 차마 떼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의 저자는 우리가 바쁜 현대생활에 쫓겨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며 산고 있다고 나무란다. 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인지, 잊고살아가는 인간군상은 언젠가 죽는다는 치명적인 사실을 잊고 살아 간다며 안타까워한다. “들판의 백합화를 보라” 그리고 아기 귀에 난 솜털을 한번 만저보라. 뒷마당에 앉아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어라. 인생은 곧 막이 내릴 무대로 여겨라. 그러면 기쁨과 열정을 품고 인생을 살게 될 테니까.”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 애너 퀸들런(AnnaQuindlen)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마흔살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열아홉 살 때까지만 해도 철없는 여대생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메일을 보내세요. 편지를 쓰세요. 어머니를 꼭 껴안아 보세요. 아버지의 손을 꽉 잡아보세요.” 저자는 뉴욕타임스에 연재했던 칼럼 ‘공과 사(public and private)’로 92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현재 뉴스위크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겨울이면 찾아와 우리들을 항상 사색케 해주는 갈대와 무장산 대나무와의 뿌리깊은 향연을 권한다. 그곳에는 사랑이 있고 눈물이 있고 따뜻한 그리움이 있다. 가파른 세상살이 보듬고 씻어주는 갈대의 긴 이야기가 있다. 더군다나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통쾌한 서부영화 OK목장의 추억도 바람소리 따라 성큼 성큼 당신 곁으로 다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