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현장은 '전쟁터'

작업참가 하청업체 직원 명단파악 들쑥날쑥...유독가스로 구조작업 어려움

2009-01-07     매일일보

[3신] 7일 오전 10시50분께 경기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769-5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발생한 화재사고의 사망자가 35명으로 늘어났다.

경기소방재난본부는 이날 오후 10시께 지휘부를 제외한 소방대원 200여 명을 18개조로 나눠 10명의 실종자를 찾기 위한 정밀수색에 나서 오후 10시 25분께 냉동창고 지하1층에서 시신 4구를 잇따라 수습했다. 이에 따라 화재현장에는 5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이천 화재 시신 훼손 심각...신원확인 상당 기간 소요 예상   

이런 가운데 경기 이천 호법면 냉동창고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신원확인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유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건물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시신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까지 발견된 희생자들은 훼손정도가 너무 심해 성별 정도만 구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뒷받침하듯 오후 10시 현재까지 발견된 사망자 30명 중 신원이 밝혀진 사망자는 전기설비 업체인 한우기업 소속 김준수씨(32) 1명뿐. 김씨 역시 화염에 시신의 훼손이 심각했으나 상의에서 신분증이 발견돼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신분증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사망자들은 유전자 감식과 치아 의료기록 대조 등을 통해 신원을 파악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감식은 삼풍백화점 붕괴과 화성 씨랜드 화재, 대구 지하철 참사 등 대형 사고에서 피해자 신원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에서는 희생자 192명 중 상당수가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을 찾아 유족들에게 인도됐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발굴된 시신의 유전자를 일일이 감식할 수 없어 현장 정리가 어느정도 마무리 된 뒤 유전자 감식 등으로 신원파악을 할 예정"이라며 "유전자 감식을 하더라도 결과가 나오려면 20일정도 걸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근무했던 실종자들의 상당수가 인력시장을 통해 파견된 중국 동포 및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름 외에 얼굴 등 다른 신상정보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어 유전자 감식을 하더라도 신원확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서로 얼굴을 봐도 누구인지 확인해줄만한 동료가 없는 경우가 많고 확인된 유전자를 비교할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 인력시장의 경우 통상 인부가 파견업소에 신분증을 맡겨 놓는 경우가 많아 신분증 등 신원을 확인해줄 만한 단서도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던 한 경찰관은 "유전자 감식과 치아 의료기록 대조 등을 통해 신원확인을 벌이겠지만 고온에 노출된 시신은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외국인들의 경우 신원을 확인할 만한 자료를 찾기 힘들어 신원을 파악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천 화재참사 현장 건물 뼈대만 앙상…유가족 신원확인 안돼 발만 동동   

경기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지상 1층 건물에서 100m 떨어진 목조건물 구내식당에 마련된 유가족 대기실에는 50여명에 이르는 유가족들이 모여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시신이 불에 그을린데다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자 유가족들은 유독가스 때문에 구조되지 못한 작업자들 대다수가 사망했을 것이라는 하청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지상 1층 건물 옆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마련된 소방본부 상황실에는 소방대원들과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들어 구조상황을 파악하고 있고 이천의용소방대, 이천여성단체협의회, 이천자원봉사센터 등 관계자 500여명이 자원봉사를 나와 있다. 소방본부 상황실에서는 스프링쿨러가 화재 당시 폭발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이천시 관계자는 건축물 대장 등에는 스프링쿨러나 이를 작동할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밝혀 엇갈리는 입장을 드러나기도 했다.

"호사다마" 70대 노부 비통의 눈물    

"좋은 일이 있은 다음에 나쁜 일이 찾아온다는 호사다마란 말이 이처럼 들어 맞을 수가... "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위치한 코리아 2000 냉동창고 사고현장 한켠에 마련된 유가족대기실로 밤 9시50분께 고희의 노인이 허둥지둥 들어왔다.

수원에 거주하고 있는 황모(75) 노인은 청천벽력같은 아들의 사고 소식이 믿기지 않는 다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 유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황노인은 "어제 내 생일이어서 5남매가 모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서로 덕담을 나누며 새해 좋은 일만 생기기를 서로 빌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를 당한 황 노인의 장남 황을준씨(50)는 6~7명의 직원들을 거느린 냉동설비 책임자로 일해왔다.

황노인은 "소방본부 등 사고수습 관계자들에게 생존 가능성을 물었는 데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었고 계속에서 시신이 발굴되고 있는데 희망이 없는 것 같다"며 절망했다.

이에 앞서 사망자 김모씨의 가족이라고 자신을 밝힌 40대 중반의 여성은 "전화를 받고 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유가족대기실을 지키는 회사 관계자들에게 연신 대답없는 물음을 던졌다.

또 실종자 최모씨(49)의 친구인 김모씨 등 4명은 "사고소식을 듣고 오후 내내 최씨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받지 않아 퇴근 후 곧바로 사고현장을 찾았다"며 최씨의 생사여부를 묻기도 했다.

김씨 등은 소방통제소를 찾아 "우리 친구가 어느 병원에 있는지 알아야 생사를 확인할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했다.

언론 등 유가족 이외에 출입을 통제하는 유가족대기실 문틈 사이로 간간히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비통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2신] 7일 오전 10시50분께 경기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769-5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발생한 화재사고의 사망자가 27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8시 현재 13명이 창고에 갇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소방대원들이 유독가스로 인해 실종자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구조대는 이날 오후 3시11분부터 5시40분까지 8명의 시신을 발견한데 이어 오후 6시30부터 8시까지 냉동창고 지하 1층에서 인부 19명의 시신을 잇따라 수습했다. 이에 따라 화재현장에는 모두 13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경찰은 프레온가스 시설 등의 안전관리 소홀로 화재가 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으며 화재 당시 폭발 과정에서 소방시설이 완전히 파괴된 탓으로 소화설비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화재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40명의 인부 중에는 중국 교포 13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2000의 하청을 받아 냉동창고 공사를 벌이던 유성측의 한 관계자는 "중국 교포 13명이 작업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안다"며 "인솔자도 함께 공사현장에 들어가 있어 이들이 어떻게 공사 현장에 투입됐는지 등 자세한 것은 알수 없다"고 밝혔다. 중국 교포 13명은 모두 냉동창고 공사를 위해 지하 1층에서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 또는 실종된 중국 교포 13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박영호 ▲박경애 ▲조동명 ▲김용해 ▲엄중명 ▲손동학 ▲김진봉 ▲정상란 ▲이정복 ▲박용식 ▲이명학 ▲김군 ▲신원미상

경기도 이천 화재 대응…긴급재난상황실 가동    
 
한편 경기도는 이날 냉동물류창고 코리아 2000의 화재 수습을 위해 긴급재난상황실을 가동했다. 도는 같은 날 오후 3시부터 서동기 건설국장을 실장으로 상황관리반(재난총괄과)과 행정지원반(자치행정과), 의료반(보건위생과), 보도반(대변인실), 구조구급반(소방재난본부) 등 5개 반으로 구성된 상황실을 구성하고 사고현황 파악과 수습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특히 영상통화회의를 통해 이천시가 요청한 사고현장 인근의 의료기관과 장례식장 확보 등 사고처리 업무를 지원했다. 앞서 김문수 이날 오후 1시20분께 화재현장을 찾아 신속한 화재진압을 지시했다. 김 지사는 "화재가 난 지하창고에서 탈출하지 못한 30여 명의 정확한 인적상황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도록 게시하라"면서 "소방관들도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또 "중앙과 서울시, 강원도까지 모든 고성능 장비를 총동원하라"며 박명재 행자부장관에게 현장에서 전화를 걸어 지원을 요청했다. 도 관계자는 "30여명의 생사가 걸린 대형사고로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며 "사고 수습대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1신] 7일 오후 5시 현재 경기 이천 호법면 유산리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현장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경기소방본부가 차려지고 소방헬기가 공중을 날고 구급차량과 소방차량 214대, 소방대원 1025명이 긴급 출동해 구조작업과 화재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293명이 현장에서 교통을 통제하고 있고 이천시청 공무원들과 관계자 100여명이 현장에서 구조상황을 돕고 있다. 현장에서 최종 사망자와 생사 미확인자 집계는 전체 57명 가운데 구조 14명(부상 병원이송 9명), 사망 6명, 생사미확인자 37명 등이다. 작업에 참가한 하청업체 직원들의 명단파악도 들쑥날쑥이어서 경찰과 소방본부는 정확한 피해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49분께 발생한 화재가 폭발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냉동창고 지하 1층 바닥과 천장에 우레탄을 뿌리는 작업 도중 유증기가 남은 상태에서 불꽃이 발화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화재로 인해 발생한 유독가스 때문에 소방대원들의 구조작업이 뒤늦게 오후 2시30분부터 진행되면서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방대원들은 현재 지하 1층에서 유독가스가 계속 나오자 구조작업은 잠시 중단했고 화재 진화작업만 진행하고 있다. 1차 구조작업 과정에서 지하 1층 작업실과 기계실 등에서 사망자들을 발견해 시신을 밖으로 옮겨 인근 이천의료원 영안실로 후송한 상태다. 이날 오후 1시30분께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현장에 다녀간 뒤 김상환 경기경찰청장도 현장에서 사고상황을 보고받았다.

'코리아2000'은 어떤 업체?...사업변경 과정 등 의혹  
 

화재가 발생한 경기 이천시 호법면 냉동창고를 운영하고 있는 '코리아2000'은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에 이천호법 물류창고 8개동을 소유하고 있으며 마장면 장암리에 서이천 물류창고 3개동 등 모두 11개동의 물류창고를 소유하고 있다.

이천시 유산리에 본사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주 사무실을 둔 '코리아2000'은 인터넷을 통한 부동산컨설팅을 하는 업체로 주된 업무는 농지, 임야 등 토지를 택지나 공장부지로 형질변경하는 절차를 알려주거나 대행하고 있다.

불이 난 냉동창고는 이천호법 물류창고 8개동 중 5호동으로 지하1층(2만3338㎡), 지상2층(1층 5700㎡, 2층 1545㎡)에 연면적 2만9136㎡ 규모의 철골조 샌드위치패널로 지난해 7월 착공해 11월5일 준공, 내부 마무리 공사 중이었다.

지상 1층과 2층은 택배회사에 임대돼 각각 물류센터와 사무실로, 지하층은 코리아2000 측이 냉장.냉동창고로 각각 사용할 계획으로 내부설비 공사를 진행하면서 시험가동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2000' 측은 사용승인 당시 소방시설 완비를 증명하는 소방준공검사필증 등을 첨부했다.

하지만 '코리아2000' 측은 물류창고 개발 당시 화재가 발생한 이천호법 5호 창고 부지를 단독주택 40세대 신축을 위한 대지조성사업지로 계획, 토목공사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코리아2000'측은 이후 갑자기 대지조성사업을 포기하고 해당 부지에 화재가 발생한 물류창고를 신축했다.

이번 화재에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소방준공검사와 건축물 사용승인 과정의 문제점 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사업변경 과정 또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천시 건축과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한 냉동창고는 건축허가 당시 소방서의 소방시설 완비를 증명하는 소방준공검사필증을 받고 건축사와 감리자의 확인을 거쳐 정상적으로 준공허가가 나갔다"며 "당초 대지조성사업지가 물류창고로 변경된 과정은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이 없어 정확한 경위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