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반도체, 신치킨게임 바람 불까
[매일일보 황병준 기자] ‘신치킨게임’ 바람이 불고 있다. 10여년 전 반도체 시장을 휘몰아쳤던 치킨게임의 기운이 또다시 몰려오고 있다.
끝없는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제 살 깍기’ 경쟁이 펼쳐지는 치킨게임. 하지만 자본과 기술력이 약한 후발주자들은 파국을 맞을 수 있어 시장 지배 사업자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반도체 시장이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움직임에서는 다소 의외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의 만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말 한마디는 반도체 업계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다.
반도체 경기에 대한 문 대통령의 물음에 이 부회장은 “이제 진짜 신력을 보여주겠다”고 답했다. 여기에 투자계획 역시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설명하면서 일각에서 제기됐던 투자 감축 분위기 등을 한 번에 일축했다.
반도체 업체들은 이 부회장의 말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신치킨게임의 우려가 현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향후 3년간 180조원, 4만명의 일자리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반도체 신규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투자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정부와 함께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해 오는 2028년까지 10년간 12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6일 윤종원 경제수석에게 ‘반도체 투자를 직접 챙겨라’라고 지시한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신규 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적지 않은 분위기다.
2010년 반도체 치킨게임 당시 독일의 키몬다와 일본의 엘피다 등 업체들이 파산됐다.
치킨게임의 패자는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지만 승자는 향후 시장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거나 폭발적인 성장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반도체 시장의 치킨게임을 바탕으로 시장 지배력이라는 자리를 얻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치킨게임을 벌일 가능성에도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가장 큰 무기는 ‘기술력’이다. 최근 중국업체들의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격차 전략을 통해 추격을 따돌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당시 상황과 같지는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투자를 바탕으로 치킨게임에 나설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당시 삼성은 반도체 이외의 스마트폰 등 다른 부분에서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이를 뒷받쳐줬지만 현재 삼성에서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기대하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 없다.
삼성 등 국내 기업들에게 치킨게임은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