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판사들 비판 잇따라…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조항은 사법 주권의 침해소지가 있다"

2012-12-02     권희진 기자
[매일일보=권희진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일선 판사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재협상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청원안에 100여명이 동조하는 등 사법부의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페이스북에 비판글을 올려 논란을 촉발시킨 인천지법 최은배(45·사법연수원 22기) 부장판사는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조항은 사법 주권의 침해소지가 있다"며 재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부장판사는 "현행법상으로는 (투자 분쟁에 대해) 직접보상의 원칙 안에서 직접 들였던 비용만 보상을 하게 돼 있다"며 "향후 생길 수 있는 수익까지 다 계산을 해서 주지도 않을 뿐더러 문제는 우리 법원이 (관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국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직후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올려 논쟁에 불을 당겼다.

창원지법 이정렬(42·23기) 부장판사도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ISD 조항의 문제점을 강변했다. 그는 최 부장판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할 당시 그를 옹호하는 등 '소신 발언'을 이어오고 있다.

이 부장판사는 "미국 투자자가 협정 위반을 이유로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해서 분쟁을 벌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데, 이때 당연히 우리 법원이 재판권을 가져야 하지만 엉뚱하게 제3의 중재기구에 관할권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이는 대한민국 주권인 사법권을 대한민국 법원이 아닌 외국 중재기관에 넘기는 것은, 주권을 판, 나라를 판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이 문제는 법률가인 판사들에게는 본연의 업무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지법 김하늘(43·22기) 부장판사도 전날 법원 내부게시판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한-미 FTA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FTA 재협상을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 방안을 제안했다. 그의 뜻에 동의하는 판사는 벌써 100명이 넘었다.

그는 '(제안)한-미 에프티에이 재협상을 위한 태스크포스팀 설치를 대법원장님께 청원하기 위해 판사님들의 동의를 구합니다'란 제목의 글에서 "여러가지 점에서 불평등 조약일 가능성이 있고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으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아 이런 조약을 포함한 법률의 최종적 해석 권한을 갖고 있는 법원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이제라도 역할을 해야 한다"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 치의 이의도 없이 승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날 취임 후 처음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법관은 항상 조심하고 진중한 자세로 자신을 도야하고 성찰해야 한다"며 에둘러 자제를 당부했다.

전국 고등법원장과 지방법원장 등 31명은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차한성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열린 전국법원장 회의에서 판사들의 FTA 반대 의견 표명, TF 설치 주장 등에 대한 대응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