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3.25% 6개월째 동결
2011-12-08 안경일 기자
김 총재의 발언은 그리스에서 발화된 세계경제의 오늘을 바라보는 중앙은행 수장의 변화를 엿보는 풍향계이다. 대학에서 '위기론'을 가르친 김 총재는 지금까지 "알려진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러한 태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 자신감이 서서히 사라진 자리에 신중함이 깃들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8일 오전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주재로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3.25%로 동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준금리는 지난 6월 0.25% 인상된 이후 이번 달로 여섯 달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기준금리는 작년 11월을 기점으로 격월로 0.25%씩 인상되면서 2008년 12월 이후 2년3개월 만인 올해 3월 연 3.0%로 올라섰으나, 지난 6월부터 연 3.25%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신묘년의 마지달 달에도 또다시 동결한 배경은 차고 넘친다. 올 들어 피로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국경제는 김총재의 금리 정상화 의지의 발목을 잡은 '주인공'이다. 유럽대륙은 여전히 화약고 노릇을 톡톡히 하고있다. 위기의 그림자가 칠흑처럼 짙어지며, 불똥이 우리경제의 실물분야로 튀는 조짐은 뚜렷해지고 있다.
문밖에서 어슬렁거리던 유로존 재정위기의 급습이다. 10월 경상수지는 이러한 위기감의 '바로미터'다. 대(對) 유럽연합 수출은 20%이상 급감했으며, 미국 수출도 소폭 줄어드는 등 수출 전선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경제성장의 삼각축인 민간 소비와 설비투자도 10월들어서는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출과 수입이 동반감소하는데 수입감소폭이 더 큰 '불황형 흑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가운데,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또 다시 3%대에 그쳤다. 2분기 연속 3%대 성장에 그쳤다. 민간소비 둔화와 설비 투자 감소가 찬물을 끼얹었다. 안개 자욱한 세계경제에 가위눌린 가계, 기업이 호주머니를 여는데 점차 인색해진 여파이다.
한국경제가 3%대 저성장의 수렁에 빠져들어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관론도 점차 고개를 든다. 한국은행은 이날 배포한 '통화정책 방향문'에서 "국내 경제는 장기추세 수준의 성장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해외 위험요인의 영향으로 성장의 하방 위험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은의 진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에도 한국경제의 하방위험을 끌어 올린 불안의 진원은 늘 세계의 화약고인 '유럽'이다. 한국은행은 "세계경제의 회복세는 매우 완만할 것으로 예상하며, 유럽지역의 국가 채무위기, 주요국 경제의 부진으로 성장의 하방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은이 올들어 금 40톤을 사들이며 외환보유고에 방화벽을 친것도 이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로존 재정위기 등 대외적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 금리 정상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대외적인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음에도 금리정상화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는 배경은 고공비행중인 소비자 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을 겨냥한 심모원려의 산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물가안정을 향한 김 총재의 '진정성'을 묻는 질문은 앞으로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한은이 중시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이 5개월째 4%대를 넘도록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이 '단골메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소비자 물가(CPI)는 기저효과 탓에 다시 4%를 돌파한데다, 추세적인 물가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근원물가' 의 상승세 또한 여전한 상황이다. 취임후 '물가'보다 '성장'쪽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날선 비판을 받아온 김총재가 금리를 인하하는 순간, 금리정상화 의지를 천명해온 한은의 신뢰성에 멍이 들 것이라는 외국계 은행의 리포트도 등장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