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우조선 매각과 말뫼의 눈물
[매일일보 이근형 기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살아있다는 의미다. 주검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은 98% 이상의 물과 염분, 소량의 단백질 등으로 구성돼 있다. 눈을 가진 생명체는 매일 눈물을 배출한다. 눈물은 감정의 표현 형태다. 아픔과 슬픔, 기쁨 등을 느낄 때 눈물을 분비한다. 외부 위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 양수에서 10개월 동안 생존하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다. 눈물과 양수의 성분은 큰 차이가 없다.
한국 조선업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해상왕’ 장보고의 후예를 자랑하며 오대양을 누비던 조선강국의 위용은 사라졌다. 지난해 늘어난 LNG선 발주로 중국에 빼앗긴 선박 수주 1위 자리를 7년 만에 되찾아 오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새해 첫 달부터 중국에 다시 1위 자리를 내줬다.
한국 조선소들은 구조조정 중이다. 경쟁이 안돼 생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지난 몇 해 인적, 물적 감축으로 겨우 버텼다. 하지만 이대론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2의 ‘말뫼의 눈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복지국가 스웨덴에는 조선업과 관련한 아픈 과거가 있다. 스웨덴은 바이킹의 후예답게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이었다. 중심은 스웨덴 남부의 해안도시 말뫼였다. 한국의 울산이나 거제 같은 도시였다.
말뫼에는 세계 최고의 조선소 코쿰스가 있었다. 이 조선소는 100년 동안 영광을 누렸지만 조선업의 중심이 일본과 한국으로 이동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급기야 1986년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 조선소의 마지막 상징인 세계 최대의 골리앗 크레인이 2002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 이 크레인은 해체돼 운송선에 실려 한국으로 왔다. 이 크레인을 도입한 후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 조선소가 됐다. 당시 스웨덴 방송은 이 크레인이 발트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장면을 장송곡을 내보내면서 중계했다. 여기서 ‘말뫼의 눈물’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 조선업은 30여 년 전 말뫼와 같은 상황에 몰렸다. 조선업의 중심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잃은 조선소들이 대부분 적자의 늪에 빠졌다.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이 2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는 것도 이런 과정 중 하나다. 비슷한 회사끼리 출혈경쟁만 하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위기 때마다 공적자금으로 살아난 대우조선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 들어간 국민의 세금만 10조 원이 넘는다. 몇 번이나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대우조선 매각을 두고 직원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공멸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말뫼의 눈물이 ‘울산의 눈물’, ‘거제의 눈물’이 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 조선업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시도는 다해봐야 한다.
스웨덴 조선업의 상징인 말뫼는 새롭게 태어났다. 조선업 대신 IT와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을 유치해 변신에 성공했다. 지금은 U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됐다.
지금 한국 조선소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