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별이 된 라거펠트

2020-02-21     송병형 기자
예술계·패션계가 큰 슬픔에 빠진 한 주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인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와 역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예술 전반에 걸쳐 활발한 자취를 남겼던 칼 라거펠트가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침 패션과 아트를 주제로 한 강의를 위해 라거펠트의 자료를 준비하던 터라 그의 사망 소식은 앞선 맨디니의 사망보다 필자에게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라거펠트는 패션계의 거장이다. 많은 패션 브랜드들, 특히 럭셔리를 추구하는 명품 패션 브랜드들이 아트를 접목하여 브랜드에 스토리를 담고 있고, 브랜드의 로열티를 높이고자 아트를 끌어들여 협업하고 있지만 라거펠트는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존재다. 그가 샤넬과 펜디에서 보여준 아트콜라보레이션은 분명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차별화 되어 있다. 이른바 현대미술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아티스트에게 러브콜을 통해 제품과 협업하여 리미티드 에디션을 론칭하는 방식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아닌 아티스트에 영감을 얻거나 혹은 스스로 아트를 발현시켰다.몇 해 전 펜디 창립자의 손녀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펜디는 로마의 창조유산의 일부’라는 취지로, 베르니니가 설계한 로마의 세계적 관광명소 트레비분수를 비롯하여 로마시내 4개 분수의 복원·보존 작업을 지원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복원 프로젝트에 맞추어 트레비분수의 드로잉이 담긴 리미티드 백이 출시 되었고, 이와 함께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거펠트는 로마 시내 곳곳을 돌며 직접 찍은 분수 사진집 ‘글로리 오브 워터’를 발표했다.이보다 앞서 그는 2012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화가 마리 로랑생이 즐겨 썼던 색상인 핑크와 회색을 활용한 ‘오뜨 꾸튀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공식 인터뷰를 통해서 “마리 로랑생의 색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번 컬렉션의 핑크와 그레이가 더해져 더욱 정교한 느낌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2년 전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렸던 샤넬 마드모아젤 프리베전에서도 라거펠트가 샤넬 특유의 아이코닉인 트위드 재킷을 간결하게 해석한 대형 호수의 캔버스 페인팅이 전시되기도 했다. 또 가장 최근 그는 작년에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에서 ‘건축학’이라는 타이틀로 대리석 조각 작품도 선보였다.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인 양식을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