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횡포냐, 우발적 자살시도냐”

청구성심병원 간호사, 피 흘리며 두 번 자살 시도한 까닭은…

2009-02-01     류세나 기자

약물 주사하고 유리조각으로 손목을 긋고…“내가 죽어야 노조탄압 해결”
노조가입 간호사에 대한 의사의 폭언 ∙ 폭행 비일비재, 이중삼중 스트레스
병원측 “의사와 간호사간 문제, 확대해석 말아 달라” 노조탄압 사실무근

[매일일보닷컴] 서울 은평구 청구성심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한 간호사가 지난 한달 새 두 번에 걸쳐 자살을 기도 했다. 응급실에서 수년간 일했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자살시도였다는 점에서 이는 충격적이었다. 평소 아이들을 무척이도 좋아했던 그녀는 지난해 10월, 둘째아이를 출산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몸에 약물을 주사하고 유리조각으로 손목을 그었다. 무엇이 그토록 힘들게 했기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죽음의 길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녀는 두 차례에 걸친 자살시도 당시 “내가 죽어야 (노조탄압)문제가 해결된다”며 병원의 노무 관리에 강한 원한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역시 해당 간호사의 자살시도 배경엔 병원의 가혹한 노조탄압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병원측은 “사실관계가 와전됐다”며 노조측 주장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매일일보>이 한 간호사를 자살로 내몰았던 해당 병원의 노사관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심층 취재했다.

사건의 주인공인 이모(37∙ 여) 간호사는 지난 1월 16일 밤 11시 30분께 자신의 집에서 KCL이라는 심장을 멎게 하는 약물을 주사기를 이용, 혈관에 투여했다. 그녀의 첫 번째 자살시도였다. 태어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갓난아이를 둔 이 간호사에게 ‘자살’은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다행히 이 간호사는 눈앞에 있던 자녀들 사진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옆방에서 자고 있던 남편을 소리쳐 불렀고, 곧바로 인근병원으로 이송돼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이 간호사는 다음날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또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측은 이 간호사가 점차 차도를 보이는 것 같다며 1월 20일, 보호자에게 주말을 이용해 집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21일 오전 11시께 병원을 다시 찾은 남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실에 있어야 할 부인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녀를 찾기 위해 병원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 화장실 한쪽에서 유리병을 깨뜨려 자신의 손목에 상처를 낸 부인을 발견했다. 닷새 만에 이뤄진 이 간호사의 두 번째 자살기도였다. 본지 취재결과 이 간호사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민주노총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 지부장, 청구성심병원 노조 사무국장을 지냈다. 병원동료들은 그에 대해 ‘책임감이 강했던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간호사 중에서도 연차가 제일 오래돼 각종 위급사항 노하우를 꿰뚫고 있는 베테랑이었다. 그런 이 간호사의 두 번에 걸친 자살시도는 극도의 불안상태에서 이뤄진 결정이었다. 한 마디로 정신적 불안증세를 갖고 있었던 셈.이 간호사는 자신이 죽어서라도 청구성심병원의 노조탄압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고 한다. 이씨는 “내가 죽어야 모든 노조탄압 문제가 해결된다”고 외쳤다고 노조 관계자는 전했다. 그렇다면 이씨가 갖고 있던 병원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간호사 ‘의사 섭외해야’ 이중삼중 스트레스= 현행법상 병원 응급실은 당직의사를 고정직으로 둬야하는데 청구성심병원은 레지던트와 인턴이 없어 외부에서 당직의를 일일직으로 고용했다. 이러한 병원측의 운영방식은 지난해 말 근로복지공단 조사에서 드러나 시정요구를 받은 바 있다.

응급실의 경우 간호사의 손은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총직원 수가 2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인 성심병원은 응급실 간호사 수가 2명에 불과하다(노조측 주장). 게다가 환자를 타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시, 응급실 간호사 중 한명이 따라 가야하기 때문에 남은 한명은 더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일일당직 의사를 섭외하는 것 또한 응급실 간호사들 몫이다. 문제는 일일당직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잦은 마찰. 이 병원 일일당직의는 낮에는 타 병원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병원측 요구에 따라 아르바이트식으로 응급실 당직의를 맡는다. 이에 따라 병원 운영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당직의와 간호사간의 마찰이 잦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당직의와 근무를 할 경우, 간호사들에 대한 의사의 일방적인 폭언과 폭행이 비일비재해 간호사들은 이중삼중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이 모 간호사의 자살시도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건 역시 응급실에서 발생했다.

자살기도의 발단이 된 사건이 벌어진 날은 지난해 12월 13일 밤. 이 날 응급실 당직을 맡은 유 모 의사(여)는 이 간호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 응급실 근무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아 “다음부터 부르지 말자”는 말이 오갈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일 시간이 맞는 의사는 유 의사 뿐 이었고, 어쩔 수 없이 당직의를 부탁했다는 게 노조측 이야기다.

당시 이 모 간호사는 환자에게 항생제 투여횟수를 두고 당직의의 지시를 재차 확인했다. 청구성심병원은 항생제 처방의 경우 8시간마다 투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알 리 없는 외부 당직의의 지시에 이 간호사는 투여횟수를 재차 물었고, 당직의는 “월권행위를 했다”며 환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진료차트로 이 간호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심지어는 “너 XX 년은 일할 자격이 없어. 무릎 꿇고 빌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 병원측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간호사가 자신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생각해 기분이 나빴던 해당 당직의가 감정조절을 못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는 병원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의사와 간호사의 문제”라면서 확대해석하지 말 것을 기자에게 요청했다. 취재결과 사건직후 병원측은 이 간호사에게 모든 일을 벌였다는 의미의 ‘사건경위서’를 쓸 것을 요구했고, 이 간호사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사건경위서’가 아닌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사건은 여기서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게 끝은 아니었다.

◇ 병원측의 잇따른 압박…‘노조탄압 신호탄(?)’= 응급실사건 발생 한 달여 뒤인 시간이 지난달 15일, 병원측은 이 모 간호사에게 한 통의 ‘경고장’을 보냈다. 내용인 즉 “의사의 처방지시 항명과 불손한 태도 및 말투로 진료과정에서 당직의사와 다툼의 발단을 제공했다”며 “차후 이 같은 일이 재발할 경우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는 것.

한 달이 지난 뒤 조합원에게 경고장을 발송한 것은 “노조탄압의 시작을 알린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병원측은 “사건의 정확한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시일이 늦어진 것 뿐”이라며 “노조에 가입한 간호사에게 경고장을 보냈다고 해서 ‘노조탄압’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조측 주장은 다르다. 노조측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책임간호사제’를 도입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던 사측으로선 후보대상에 있는 조합원인 이 모 간호사가 탐탁지 않았을 것”이라며 “역시나 병원측은 응급실 사건 이후 노조측에 이 간호사의 자질에 대한 얘기를 꺼냈었다”고 말했다.    이 간호사 역시 경고장 이면에 숨겨져 있는 ‘노조탄압’이라는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무리한 업무와 노조탄압에 따른 스트레스와 분노가 이 간호사를 극단의 선택으로 내몬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다. 노조측은 현재도 “청구성심병원의 노조죽이기가 다시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측 한 관계자는 “과거 우리병원의 노무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 노조 “식칼테러 주동자가 병원장”= 이 병원은 지난 98년 ‘똥물투척’, ‘식칼테러’, 일상적 집단 따돌림, 집단폭행 등으로 이미 노동계에 ‘악랄한 노조탄압 사업장’으로 정평이 나있다(박스기사 참조). 실제 지난 2003년에는 이곳에서 근무하던 조합원 20명 중 8명이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적응장애’로 집단 산재를 인정받기도 했다. 이후 8명의 조합원들은 약 8개월간 치료를 받은 뒤 병원으로 복귀했다. 이 모 간호사 역시 당시 산재처리를 받았던 조합원 중 한명이었다.
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돌아온 조합원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첫째를 임신한 몸으로 응급실에 복귀한 이 모 간호사에게 돌아온 말은 “배XX를 쑤셔 버리겠다”는 병원장의 폭언이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병원측은 “병원장이 평소 욱하는 성격을 갖고 있긴 하다”면서도 “그렇지만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관계가 와전된 것 같다”고 반박했다.

노조측은 모든 사태의 원인이 병원장에게 있다는 견해다. 노조에 따르면 98년 식칼테러에 앞장섰던 사람이 지금의 병원장인 A씨라는 것. 노조측 한 관계자는 “이것이 10년이 지나도 노사관계가 바뀌지 않는 이유”라며 “집단산재 인정 후 한동안 잠잠했던 노조탄압이 지난해 수간호사들이 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재개됐다”고 말했다. 조합원 수가 늘어나자 병원측은 비조합원들이 저지른 실수의 경우 ‘나몰라라’하는 것과 달리 조합원들에게는 경위서를 쓰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조합원들에는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 맡게 해 업무상 괜한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한편 노조는 노조간부에 대한 병원측의 직접적인 탄압이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어 갈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지난 1월 17일 분회장으로 선출된 권기한 분회장은 다음날인 18일,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지난 해 9월 총무과 직원을 폭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권 분회장은 “오히려 내가 폭행을 당했다”며 “노조탄압 공작작업이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병원측은 “노조 임원 선출 공고를 보지 못했다”면서 “징계위원회 회부를 알린 시점이 시기적으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애초에 예정돼 있던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징계위원회 회부날짜는 지난달 25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날 병원 앞에서는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울본부의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고, 병원측은 권 분회장의 징계위원회 회부날짜 연기를 알려왔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뭔가 필연적인 부분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