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와 파스로 ‘죽은 사람’ 살려낸다?

무면허 의료행위로 환자 숨지게 한 ‘황당한’ 무속인

2009-02-01     류세나 기자

“정성 부족해서 병이 안 나아”…10개월간 6천여만원 챙겨
“부활할 테니 기다려보자”…사망 후에도 피해자 남편 현혹

[매일일보닷컴] 실제로 신을 모시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 무속인이 철창신세를 지게 된 황당한 사연이 있다. ‘신이 내린 침’이라며 무면허로 한방 의료시술을 하다 환자가 숨진 것. 게다가 숨진 후에도 “이 사람은 부활할 것”이라며 시신을 방치해 두기까지 했다. 그 현장을 <매일일보>에서 밀착취재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심한 병을 앓고 난 뒤 신내림을 받아 ‘양왕보살’을 모시게 됐다는 임씨(49?여). 임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조그마한 슈퍼를 운영하며 남편과 또 1남2녀의 자녀와 함께 단란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였다. 그러나 신내림을 받은 후 임씨의 집안환경은 달라졌다. 남편이 무속인의 길을 걷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던 것이다. 결국 남편과 이혼한 임씨는 경기도 수원에 무당집을 차리고 그 곳에서 세 명의 자녀들과 함께 살았다.

사건의 발단이 된 지난해 3월, 임씨의 집으로 한 중년부부가 찾아왔다. 그 부부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안양에서 수원까지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찾아온 이유인즉슨 구씨(54)의 아내인 곽씨(50)가 벌써 여러 달 째 몸 여기저기가 아파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 크고 유명하다는 병원을 모두 찾아가봤지만 뚜렷한 병명을 알 수 없다는 말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이 곳 무당집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왔다는 얘기를 꺼냈다. 임씨가 그에 대한 점괘를 내놨다. 아내 곽씨가 ‘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임씨의 말에 동조라도 하듯 곽씨 역시 무당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아프던 머리가 맑아졌다고 말했다. 현대의학으로 치료는커녕 설명조차 못한다던 곽씨 병의 원인(?)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그러나 자신에게 신병이 걸렸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던 곽씨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임씨의 말이 사실인양 집에 도착한 곽씨는 또 다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결국 곽씨는 임씨의 집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기로 결심한다.

“정성이 부족하잖아!!”

그렇게 임씨와 곽씨의 동거는 3월부터 시작됐다. 물론 임씨의 자녀들도 함께였다. 임씨가 곽씨에게 특별한 치료를 해준 것은 아니었다. 양왕보살에게 기도를 하고, 부황을 떠주고, 기(氣)치료를 해준 정도다. 임씨의 정성이 약발(?)을 보였는지 곽씨의 병은 차도를 보이는 듯했다. 건강했던 때처럼은 아니지만 혼자 거동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씻은 듯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임씨는 그 이유에 대해 “곽씨부부의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후손은 물론이고 죽은 조상들까지 저승에서 편하게 지낼 수 없다”고 말했다. 임씨의 말은 자신이 모시는 신(伸)인 ‘양왕보살에게 너희들의 정성을 보이라’는 것. 즉 ‘돈을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남편 구씨는 임씨에게 100만원이고, 200만원이고 가져다줬다. 그런데도 곽씨 병의 차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때 내놓은 임씨의 비법!! 양왕보살이 곽씨에게 침을 놓으라고 전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임씨는 의료상에서 침을 구입했고, 우선 침을 어떻게 놓는 것인지 자신의 몸에 시험 삼아 놓았다. 그렇게 지난해 9월부터 임씨는 곽씨에게 침을 놓기 시작했다. 물론 임씨에겐 의사면허가 없었다. 그러나 양왕보살이 내린 치료법인 ‘침’도 소용없었다. 이에 임씨는 “곽씨부부 집안에 부정한 돈이 있다”며 “그 돈이 처분돼야 곽씨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돈을 가져오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편은 아내를 임씨에게 맡기고 있고, 또 임씨의 집에 있을 때가 그나마 덜 아프다는 아내를 보면 임씨를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임씨의 손에 들어간 돈은 6천여만원.

“살아 날 거야, 기다려!!”

기도도, 기(氣)치료도, 6천만원도 모두 소용이 없었다. 곽씨는 점점 앓아갔지만 곽씨의 남편은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했기에 부인에게 자주 찾아갈 수 없었다. 2명의 자녀들 또한 장성해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에 가족들이 곽씨를 찾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어갔다.지난 1월 22일 아침, 곽씨는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일어났는지 확인하러 곽씨에게 다가간 순간, 임씨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곽씨의 주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임씨는 놀랐다. 그러나 곽씨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임씨에 따르면 “신내림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때마침 22일은 곽씨의 생일이었다. 남편 구씨는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임씨는 “곽씨는 현재 기도중”이라며 나중에 다시 전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1월 25일 곽씨의 남편 구씨에게서 또 다시 전화가 왔다. 임씨는 “치료중”이라고 둘러대다 구씨가 계속 아내와 통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다그치자 그제야 할 말이 있다며 집으로 와줄 것을 부탁했다. 임씨에 집에 도착한 남편 구씨. 온몸에 각종 한약재와 파스를 붙인 채 부패돼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했다. 구씨는 오열했다. 그러나 “신 내림을 받았으니 다시 살아날지 모른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는 임씨의 말에 응했다.구씨가 순진했던 것일까.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임씨의 말을 믿었던 것인지 진짜로 하루를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살아나지 않는 아내를 보고 경찰서에 “무속인이 자신의 아내를 죽였다”며 신고를 했다.

피해자 죽은 후에야 “선처 바란다”

이 사건을 조사한 수원서부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이 도착했을 당시 시체의 부패정도는 상당히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 곳곳에 비치돼 있는 각종 한약들로 섞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임씨의 자녀들 역시 곽씨가 죽었다고 생각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임씨는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도 “곽씨가 살아날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처벌은 무서웠는지 임씨는 조사 내내 ‘아이고, 아이고’를 연신 내뱉으며 “죄송하다. 사죄한다. 선처바란다”고 반복해 말했다.경찰서에서 만난 임씨는 맨발에 분홍색 운동화를 꺾어 신고 있었다. 짧은 커트머리는 헝클어져서 지저분했고, 걸치고 있는 옷 또한 남루했다. 임씨는 기자가 다가가자 소스라치게 놀랬다. 기자의 질문에 두려움이 가득차서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말은 “몰라요” 뿐, 연신 깊은 한숨만을 쉬어댔다.

이와 관련 경찰측 한 관계자는 “피의자 임씨는 환자를 치료한 게 처음이었는데 한 번의 실수가 가져온 결과가 엄청나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임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보건범죄 혐의로 지난 27일 구속영장이 청구 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