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의 백수탈출] 자영업 체험이 슬픈 나라

2019-02-27     송병형 기자

얼마 전 어느 지방자치단체 산하 청소년육성재단에서 진로 특강 건으로 방문 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중고생을 대상으로 진로수련 활동을 실시 할 예정이다. 진로 특강도 하고 직업체험도 한다. 그런데 직업체험의 종류를 보면 슈가크래프트(설탕공예), 파티쉐(제과),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바텐더, 마술사, 승무원, 축구선수 등의 체험 및 직무 강의를 준비 하고 있었다.

문제는 파티쉐, 바리스타 등은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들이 주로 하는 직업이란 점이다. 즉 이곳에서 준비한 진로 프로그램은 자영업자 체험인 것이다. 과연 중고생을 대상으로 자영업자 체험을 한다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자영업과 소상공인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564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가족 노동력까지 포함할 경우 숫자는 더 늘어난다. 월급 없이 일하는 가족 노동자는 110만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모두 합하면 전체 취업자 2682만명 중 25%나 차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여일 전 청와대에서 자영업자들을 초청해 대화를 나눈 자리에서 “이 정도라면 독자적 경제정책의 영역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큰 규모다.

우리나라처럼 자영업 비율이 25%를 넘는 나라는 멕시코, 브라질, 터키, 이탈리아 등에 불과하다. 일본은 이에 비해 2분의 1, 미국의 4분의 1 정도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선진국들에 비해 내수시장마저 훨씬 작아 자영업이 번성하기에 좋은 여건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민간소비가 GDP(국내총생산)의 60%대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50%에도 못 미친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양극화가 극심해 중산층과 부유층의 해외소비가 많다. 우리 국민들이 해외에서 소비하는 돈이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소비하는 금액보다 훨씬 많다. 이러한 자료만 봐도 우리나라 자영업의 현실은 암담하다.

그런데 중고생에게 직업 체험으로 자영업 소개 및 체험을 시키고 있다. 이게 어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이란 말인가?

2019년 우리나라 자영업의 위기는 구조적이다. 미국 다음으로 심한 소득 양극화는 자영업자들에게 큰 타격이다.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국내 민간소비 위축을 가져온다. 게다가 세계 최고 수준의 편의점, 온라인 쇼핑, 해외 직구 등 소비패턴의 급격한 변화도 자영업자들에겐 치명적이다. 동네 식당과 치킨집, 호프집, 카페의 최대 경쟁자는 도시락과 치킨, 맥주, 커피를 파는 대기업 계열의 편의점이다. 또 재래시장 옷가게와 신발가게의 최대 경쟁자는 젊은 층이 대거 몰리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경기확장세가 지속되는 미국에서조차 유통체계가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올 들어 문을 닫은 소매점포의 수가 2000개를 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영업을 하게 된다면 보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영업이라는 혹독한 전투에 참가하기보다 철저히 절약하고 최저생계비만 나오면 직장에 다니는 생존 전략이 훨씬 현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