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갑’의 횡포 위험 수위
공정위 '솜방망이' 제재, 피해업체에 아무런 도움 안 돼
2011-12-20 변주리 기자
이번에 공정위가 LH에 내린 ‘시공업체에 법위반 사실을 서면으로 통지하라’는 시정 명령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도 일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LH를 고발하거나 과징금을 물게 하더라도 이 역시 손해를 입은 시공업자들에게 실질적 보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위 제재, 피해업체에 아무런 도움 안 돼
공정위가 되레 ‘면죄부’ 주는 꼴…제도 개선 시급
경실련 “검·경도 고발권 가져야” 공정위 고발 독점권 폐지 주장
LH는 지난 2007년 9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전국 89개 아파트 공구에서 시공 중인 51개 시공업체에 아파트 바닥완충재를 ‘경량충격음 바닥완충재(20mm)’에서 ‘중량충격음 바닥완충재(30mm)로 설계 변경토록 지시했다.
하지만 LH는 시공업체들이 설계 변경 지시에 따라 더 고가의 ‘중량충격음 바닥완충재’로 시공을 완료하자, 지시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에 따라 시공업체들은 LH로부터 추가 공사 비용을 지급받지 못했으며, 몇몇 시공업체는 지급 받은 추가 비용을 반환하기도 했다.
이번 LH의 부당행위로 손해를 입은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LH의 감독관이 설계가 잘못됐다며 ‘중량’으로 바꾸라고 해서 바꿨는데, 나중에 LH의 감사실에서 애초 설계는 ‘중량’으로 돼 있었다며 지시를 취소하고 추가 비용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LH의 이 같은 횡포로 51개 시공업체들이 손해를 입은 금액은 평균 10억원~14억원에 이르며, 전체 건설사들의 손해액은 13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에 지난 7일 전원회의를 열어 LH가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제23조를 위반했다며, 거래상대방인 시공업체에게 법위반 사실을 서면으로 통지하는 시정조치를 내기리기로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앞서 공정위 사무처는 이번 사안을 중대한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으로 보고 이지송 LH사장에 대한 검찰 고발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안건을 전원회의에 상정한 바 있으나, 이번 사안이 이 사장 부임 전에 이뤄진 사안임을 감안해 이 사장을 고발하지 않기로 했다.
이와 관련 제재조치 수위가 당초 계획보다 너무 낮춰진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시공업체 관계자는 “LH에 대해 과징금을 물리건, 사장을 고발하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며 “공정위의 결정이 강제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조치라도 받아들일 뿐”이라고 푸념했다.
이어 그는 “설계 변경 지시로 하청업체에게 지급한 9억원의 공사대금을 합해 무려 25억원이나 손해 봤다”며 “우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적으로 공사비를 회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LH에 대해 과징금을 물리거나 사장을 고발하는 등의 조치가 내려지더라도 LH가 추가 공사비에 대한 지급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연합 신영철 국책사업감시단장은 “LH라는 공공기관에 대해 정부기관이 제재를 내렸다는 점에서 이번 공정위 시정조치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만, 공정위는 사법기관이 아니어서 강제할 수단이 없다”며 “이번 사건은 일시적인 문제가 아닌 만큼 특단의 조치와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단장은 특히 LH 사장을 고발하지 않기로 한 이번 결정은 공정위의 결정과 관련 “공정위의 전문성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도 “공정위가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고발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에 검찰과 경찰도 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이번 사건과 같은 공공기관의 횡포는 LH뿐만 아니라 한국도로공사 등 국토해양부 산하의 모든 기관이 관행처럼 자행해 왔다”며 “이런 불공정 행위는 원청업체뿐만 아니라 공사비 전체에서 인건비와 관리비를 제외한 직접공사비를 부담하는 하청업체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