口業과 公業
2004-11-01 파이낸셜투데이
경제가 어려워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지혜를 모아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나라에 바람 잘 날이 없으니 국민들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정말 답답해하고 있다. 특히 여야간의 극심한 대립이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여야간 대립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해찬 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답변이 기폭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이미 이 총리는 유럽순방 중 베를린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조선 동아와 한나라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역사의 반역이니 하는 듣기에 따라선 극언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내 놓았다. 이 발언은 즉각 논란을 불러왔다. 노무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부 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른바 4대 개혁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어떻게든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었기에 이 발언은 파란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사태는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 총리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와 관련한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에 강력히 맞섰다. 차떼기당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사과요구를 거부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정국이 소용돌이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물론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수백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차떼기한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런 표현을 써가면서까지 제1야당과 대립의 각을 세워야 했는지 대다수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이 총리는 총리 인준을 받으려고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자신의 표현대로 '차떼기당' 의원들에게 협조를 부탁했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것은 한나라당을 제1야당으로,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한 행위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렇듯 적대적 표현으로 대립을 부추기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과 무엇이 다른가.정치는 각 정파의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국민을 위한 한가지 정책으로 실현시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자신의 입장과 주장만을 내세워 전부를 얻어내려 한다면 파행이 불가피하고 이는 자신에게도 결과적으로 손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서로 밀고 당기다 보면 서로의 주장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다.공직자의 말 한마디는 개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품격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2人后 萬人下)이라는 총리의 발언은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업(業) 가운데 구업(口業)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를 욕하거나 헐뜯는 말,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내뱉는 신중치 못한 말로 인해 짓는 업보를 의미한다.개인의 구업은 자신의 업보로 그치지만 고위공직자의 신중치 못한 발언은 공업(公業)으로 전환된다. 사회 전체가 그 업보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지금 이 총리의 발언이 초래한 우리 국정의 비효율만 보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총리의 신중치 못한 언어선택으로 벌어진 작금의 사태가 엄청난 국력의 낭비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생이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법안이나 내년도 예산을 다룰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는 것 아닌가.물론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고위공직자, 특히 총리의 발언은 시정잡배의 말과는 달라야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발언 수위도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은유적 표현은 얼마든지 있다. 이해찬 총리는 특정 정당만의 총리는 아니지 않는가. 이것이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시정잡배와 같은 막말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하는 총리를 둔 나라의 격(格)이 어떠할지는 총리 자신이 더 잘 알지 않을까.대다수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품격있는 정치인이 국정을 펼치는 나라로 평가받기를 바라고 있다.
慧 鍾 스님/심복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