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2019년 봄,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시작
[매일일보 이근형 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삭풍과 눈보라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돌아왔다. 매화부터 유채, 벚꽃, 개나리, 진달래 같은 온갖 봄꽃이 남녘에서부터 대지를 물들이며 올라오고 있다. 다음 주에는 여의도 윤중로에서 벚꽃축제가 시작된다고 하니, 시간의 흐름은 잡기가 쉽지 않다. 봄 벚꽃의 북상 소식을 전하는 날씨방송을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9년 봄. 예년과 다른 봄이 시작됐다. 적어도 기업들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기업들을 휩싸고 있다. 지난 몇 년을 따스한 봄볕과 함께 했다면 올 봄은 확실히 다르다. 1999년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19년. 10년 주기 데자뷔다.
지난해 4분기 이후 급격히 꼬꾸라진 기업경기가 봄의 문턱인 1분기에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1분기가 V자 반등의 시작이길 바라지만 장담하기 어렵다.
매년 연초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놓기 바쁘던 기업들이 올해에는 일제히 부정적인 실적 전망만 쏟아냈다. 급기야 삼성전자가 1분기를 마무리하지도 않은 시점인 지난 26일 사상 처음으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1분기 실적이 시장전망치보다 더 낮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성전자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업종별로 격차는 있지만 비관적인 평가 일색이다.
최근 3년간 고공행진을 하던 반도체 실적은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작년 4분기 적자로 돌아선 정유화학 업종의 불황은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수주 훈풍에 모처럼 한숨 돌린 조선 업계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이라는 광풍에 휩싸였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시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 업종은 수소차 등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녹록치 않다. 성장한계에 봉착한 통신 업계는 요금 인하 압박과 규제 앞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항공업계 역시 오너 리스크와 불안정한 지배구조 문제로 지속가능 기업으로서 존재를 의심받고 있다.
한국 경제의 주축을 이루던 산업 대부분이 한계에 봉착한 지 오래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반도체 호황에 진실이 감춰져 있었을 뿐이다. 수차례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경고가 이어졌지만 땜질 처방만 해온 기업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를 방치한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어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 경제의 판이 바뀌고 있는 격동기다. 위기인 만큼 기회 요인은 아직 남아 있다. 우리 보다 한발 앞서 4차 산업혁명 체제로 변화하는 기업과 국가들이 있지만, 그리 멀리 앞서진 못했다. 지금이라도 속도를 낸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고 역전도 가능하다.
그래서 기업들의 변신 노력에 희망을 건다.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현대차그룹이 수소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질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통신업계는 5G(5세대 이동통신)라는 새 정보고속도로를 깔아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선점한 동영상 시장에서 승부를 낼 계획이다. 문제는 삼성이다. 뚜렷한 미래 방향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 100조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금고만 두둑하다.
한국 경제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산업화 시대 말미에 고속성장을 하던 최후의 국가가 한국이다. 이젠 새로운 봄을 맞아야 할 때다. 지금 고통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작이다. 봄은 언제나 오지만 모두에게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