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콤∙이랜드∙GM대우 등 해결해야 할 노사갈등 '첩첩산중'
새정부 ‘친재벌 행보’에 노동계 ‘한숨’, 순회투쟁으로 돌파구
[매일일보닷컴] 이명박 정부 출범 약 일주일 전이었던 지난 1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8일간의 집중 순회투쟁을 선언하며 새 정부 정책노선 반대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민주노총은 당시 “이명박 당선인(지난 18일 당시)과 한나라당은 친재벌적인 행보에만 집중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등 각종 노동현안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며 투쟁이유를 밝혔다. 제17대 대통령취임식이 있었던 지난 25일, 새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자리였지만 국회의사당이 자리 잡고 있는 서울 여의도 일대에는 전경들과 대치를 이루며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해줄 것을 요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무슨 이유에서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일까. 민주노총의 가장 큰 요구사항은 ‘장기투쟁사업장 문제 해결’. <매일일보>에서 코스콤, 이랜드 노조 등 장기투쟁사업장의 어제와 오늘을 취재했다.
◇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 이종규 사장 처벌 요구= 정부의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전, 대한민국의 많은 비정규직들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새 시행법에 따라 정규직 전환으로의 부푼 꿈에 들떠 있었다. 코스콤 비정규직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코스콤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두 달 앞둔 지난해 5월,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일말의 언급도 없이 도급업체를 26개에서 5개로 통폐합하고, 비정규직 직원들의 소속을 용역회사로 바꿔 정규직 전환을 무마시켰다. 이 같은 사측의 위장도급으로 노동자들은 코스콤에서 10년을 일했건, 20년을 일했건 소용 없게 됐다. 기존업체에서 신규업체로 소속이 바뀌게 되면서 비정규직법에 명시돼 있는 ‘2년’이라는 기간이 채워지지 않았기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코스콤 비정규직 직원들은 같은 달인 5월, 노조를 결성했다. 지난해 9월 20일부터는 여의도 코스콤 본사 앞에 비닐천막을 치고 지금까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코스콤 노동자 1천여명 중 절반이 도급회사에 소속된 간접 고용노동자다. 이들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받아왔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코스콤의 불법파견과 고용의제(직접 고용된 것과 동일하게 보는 것)를 인정했다.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코스콤측에 비정규직 노조와 교섭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코스콤은 이 같은 결정을 외면하고 용역깡패 등을 동원해 조합원들과 대치시켰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1/3에 해당하는 인원이 파업기간 중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폭력으로 응급실에 이송됐던 이력을 갖게 됐다. 이들의 총 상해 진단일수 합계는 무려 300여일에 달한다. 노조측은 투쟁을 처음 시작했을 때나 10개월여가 지난 지금이나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고, 조합원들의 정규직화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코스콤 이종규 사장을 법으로 엄중히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 사장의 증언을 문제 삼아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국정감사 당시 성실 교섭을 약속했던 코스콤 이종규 사장이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코스콤비정규직노조 정인열 부지부장은 “노조는 악덕기업주의 횡포를 참다 참다 못해 이제야 터뜨린 것인데 정치인, 법조인들은 사건의 본질을 보지 않고 ‘노조가 집회를 연다’는 현상만을 보고 있다”면서 “정치・법조인들이 진심으로 이 사장을 돕고 싶다면 비호하는 게 아니라 법으로 엄중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게 진정으로 이 사장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 뉴코아-이랜드 노조 파업투쟁 8개월째…‘지쳐간다’= 이랜드그룹 역시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뉴코아아울렛과 홈에버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계산원 1천여명에 대해 계약해지와 아웃소싱을 실시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파업은 벌써 8개월째. 그간 뉴코아-이랜드노조는 기존입장보다 물러선 안을 제시하며 사측에 조속한 타결을 요구했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힘없는 약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투쟁은 쉽지 않아 보이고, 실제로도 쉽지 않다. 40대 이랜드 여성노조원은 “투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존권이 걸려있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면서 “주위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그만두라는 말들을 한다. 그래도 계란은 던지면 흔적이 남는다”며 끝까지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랜드 일반노조 홍윤경 사무국장은 “우리는 월 80만원을 받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투쟁을 시작했고, 우리의 요구는 정당했다”며 “적은 금액이지만 우리에겐 ‘생명줄’과도 같았다. 근로계약서를 위・변조 하는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해 일자리를 부당하게 빼앗은 이랜드 그룹 박성수 회장은 우리에게 살인행위를 가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뉴코아-이랜드 노조 조합원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엄마 혼자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한부모 가정도 있고, 몸져 누워있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에 뛰어든 부인도 있다. 그들에게 8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 중 많은 수가 노조를 떠나기도 했다. 지난 6월 파업에 들어갈 때 600여 명이던 파업 참가자는 어느덧 30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오랜 파업으로 인한 생계 문제가 제일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홍 사무국장은 “이랜드 노조 조합원은 현재 약 350여명 정도만이 남은 상태다. 투쟁에 승리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지만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면서 “남아 있는 조합원들도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투쟁으로 얻은 병으로 몸져 누워있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장기투쟁사업장인 뉴코아-이랜드 노조는 활발한 투쟁활동으로 그간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 노조는 지난 20일에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대검찰청을 찾아 박성수 회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이날 자리에 참석한 뉴코아 노조 최호섭 사무국장은 “기업인들은 나라발전에 ‘티 나게’ 공헌해서인지 구속되지 않고, 힘없는 우리 노동자들만 구속되고 있다. ‘이랜드 사태’의 핵심은 비정규직의 목숨을 빼앗는 박 회장에게 있고, 그를 처벌해야 한다”며 박 회장의 구속과 함께 구속노동자 석방을 요구했다. ◇ GM대우 비정규직지회, 고공농성 60여일째= 금속노조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삶도 척박하긴 마찬가지다.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지상 30M상공 CCTV관제탑 위에서 새해를 맞았건만 노사협상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지난 2월 24일 기준, 60일이 지났다. 노조를 설립해 사측을 상대로 투쟁을 시작한 지는 3월 1일로 꼭 6개월째다.
이들 노조는 설립 다음날부터 사측의 탄압을 받았다고 한다. GM대우 및 하청업체 관리자들은 시설물보호라는 명목으로 노조가입 선전활동을 방해했고, 노조와 사측 간에는 유혈 폭력사태까지 빚어졌다. 결국 노조 집행부 간부를 포함한 조합원 35명은 지난해 9월 이후 징계해고, 계약해지 등을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후 노조는 1인 시위, 천막농성, 고공농성 등을 하며 사측에 ‘원직복직’ ‘비정규직 지회인정’ ‘외주화 중단’ 등과 함께 사측과의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되는 투쟁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교섭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원청인 GM대우는 물론 하청업체들 모두는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조는 원청과 하청에 18차례의 교섭을 요청했지만 한 차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GM대우측 관계자는 “해고된 노동자들은 우리회사(GM대우) 직원이 아니다. 도급업체와 도급업체 직원 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회사측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고 뭐라고 할 말도 없다”면서 “직접적인 법적관계가 있는 쪽은 하청회사와 해고노동자다. 우리와 대화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GM대우의 15개 하청업체들은 이에 대해 “우리는 인력을 원청인 GM대우에 소개시켜줬을 뿐, 실질적인 고용과 사용은 GM대우에 있다”고 반박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와 반대로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이대우 지회장은 “원청과 하청업체가 한통속이 돼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GM대우라는 대기업 원청이 든든한 ‘빽’이 돼 준다면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부당해고로 인한 벌금을 물게 되더라도 원청과 계속해서 계약을 체결할 수만 있다면 그게 더 이익이라는 것이다. 노조는 18차례의 교섭요청 공문을 발송한 결과, 10여개가 넘는 하청업체의 교섭거부 공문내용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동일했다는 점을 미루어 이들 간에 담합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들은 상급단체와 지역 및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연대해 대규모집회를 벌이는 등 GM대우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2년7개월째 해법 못 찾는 기륭전자=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위치하고 있는 기륭전자는 위성라디오, 네비게이션, GPS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여성 생산직 노동자의 99%가 인력공급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은 파견노동자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05년 7월에 설립된 기륭전자 노조는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노동자들을 회사의 극심한 노무관리에 시달리던 200여명의 생산라인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뜻을 모아 조직된 단체였다. 노조가 결성되기 전 사측은 ‘잡담을 했다’ ‘관리자에게 말대꾸했다’ ‘잔업을 빠졌다’ ‘무뚝뚝하다’ 등의 이유를 대며 파견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일삼았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심지어는 ‘성의 없는’ 문자메세지로 해고통보를 하는 등 노동자에 대한 배려심 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이에 참다못한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 서울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 분회를 만들어 단체대응에 돌입하기로 한 것. 노조 출범 직후 노동자들은 “이제는 관리자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며 당당한 태도를 취했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노조설립 후 1주일 동안은 마치 노조를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잇따른 해고 및 고용계약 해지, 직장폐쇄, 정문 봉쇄, 농성장 차단, 농성장에 대한 단전단수 등이었다.사측은 조합원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하는 백지 탈퇴서를 돌렸고, 분회장과 부분회장의 사내 부조장직을 박탈하는 등 노조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계약 해지는 계속돼 대량해고 사태로 이어졌고, 조합원들은 사측과 지독하고도 끔찍한 싸움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2005년 8월 24일, 해고중단을 요구하며 공장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 벌써 900여일이 다 돼간다. 기륭전자분회는 그간의 투쟁을 통해 노동부, 검찰, 심지어 사측에게까지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기륭전자는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시정은커녕 오히려 조합원 1인당 18억 원의 손해배상 가압류와 형사고소 등으로 맞대응했다. 불법파견에 대한 검찰기소로 벌금 5백만원을 냈으니 죄 값을 다 치렀다는 게 회사측 입장이다.2년 7개월, 긴 시간이었다. 200여명으로 시작했던 투쟁참가자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합원 수는 40여명에 불과하다. 노조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요구사항은 항상 소박했다고 말한다.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은 “우리의 요구는 기륭전자가 그 동안의 불법행위를 반성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정규직화하라는 것 뿐”이라면서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이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