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민 인모스트투자자문 대표] 고등학교 시절부터 탈모가 시작된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 집에서 전립선치료제 약을 발견해서 전립선도 안 좋은 거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전립선 치료제의 부작용이 모발촉진이라는 것이다. 탈모인에게는 전립선 약을 먹는 것이 일반이라는 답을 듣고 너무 웃었던 터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흔히들 어떤 일에 부수돼 일어나는 원치 않은 현상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부작용이라고 한다. 역사의 현상과 발견은 이런 부작용 때문에 세상에 빛을 본 경우가 있다. 사막 횡단의 말안장에서 탄생한 치즈, 플레밍의 페니실린, 뤤트겐의 엑스레이 등은 원하던 결과물이 아니었지만, 세상을 이롭게 했다.지난 1월 말에도 부작용의 혜택을 톡톡히 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연금저축 가입자들이다. 정확히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연금저축이 가진 또 다른 혜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르다. 하지만 부작용이라고 말한 이유는 따로 있다.국내 연금저축이 도입된 계기는 나날이 증가하는 노령인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90년대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노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됐다. 전후 단기간 내 고도성장을 이루며 생긴 부작용일 수 있다. 정부는 노령인구의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 여러 제도와 장치를 두기 위한 일환으로 연금저축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노령화라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안감을 체감할 길이 없어 제도의 보급과 확대를 위한 유인책으로 세제혜택을 부여했다. 초기엔 납입금액 일부의 소득공제와 연금연액의 비과세를, 2000년 이후에는 제도 개편을 통해 연 400만원 한도의 소득공제, 2014년 이후에는 세액공제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집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바로 연금저축 본연의 취지다. 연금저축은 노후의 재정 안정을 위해 정부, 금융기관, 개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대표적인 은퇴상품이다. 하지만 매년 금융감독원이 발표하는 연금저축 현황을 살펴보면 제도 본연의 취지와 실효성에 의심이 든다. 지난해 7월 금감원 연금저축 수익률 조사보고서를 보면, 세제혜택을 감안하지 않은 17년간의 연금저축 적립금은, 연금펀드를 제외하고 생명보험, 손해보험, 신탁사의 연금저축 수익률이 저축은행 적금 수익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타 연금저축 상품을 웃도는 수익을 기록한 연금펀드의 가입률은 전체 가입자 중 9.4%로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10명 중 9명은 저축은행 적금보다 낮은 수익의 연금저축에 가입하고 있다는 말이다.포털 사이트에는 적금이자가 높은 은행을 찾는 키워드가 항상 높은 비중으로 검색된다. 필자가 전편에 언급한 해외 채권처럼 목돈을 맡길 상품의 수익 1~2%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우리가 왜 노후라는 중차대한 저축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심할까.필자는 이러한 이유가 바로 연금저축의 세제혜택에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연금저축 가입자는 연금저축을 노후준비의 하나로 생각하고 가입하지 않는다. 연금저축의 가입이유는 연말 소득공제나 세액공제의 혜택을 위해서일 것이다.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연금저축의 가입 한도는 연 1800원까지다. 하지만 실제 평균 가입금액은 세액공제 한도인 연 400만원 미만이 대부분이다. 연금저축 가입 후 연금 수령액도 평균 25만원 내외로 노후 생활을 위한 준비자금으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만약 연금저축에 세제혜택이 없다면 과연 이러한 관리부재와 수익성을 그냥 과시하고 지나칠 수 있을까.정부는 연금저축 수익관리를 위한 다양한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2015년 연금저축을 다루는 금융기관을 손쉽게 변경할 수 있는 연금저축 기관이전 간소화 제도를 통해 연금저축 운영 금융기관의 이전을 손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7년에는 연금저축 내 투자 가능 자산을 펀드에서 ETF로 확대했다.하지만 정작 관심을 보여야 할 가입자들은 세제라는 부수적인 혜택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모 치료를 위해 전립선 약의 부작용에 의존한 웃지 못할 사연은 아직 탈모를 완치할 수 있는 정확한 처방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가 준비하고 관리해야 할 노후의 재정은 그렇게 안일한 처방에 의존해야 할 만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선택의 이유를 바로잡고 진지하고 신중하게 본인의 연금저축을 확인하고 관리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