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그룹, ‘편법’ 동원해 수상한 거래
“한라엔컴, 레미콘 사업 확장 위해 차명·위장 회사 차려”
2012-01-10 변주리 기자
[매일일보 변주리 기자] 재계서열 40위권이며, 포브스가 선정하는 2011년 아시아 50대 유망기업에 꼽힌 한라건설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한라그룹이 중소기업 사업 영역인 레미콘 제조 사업 확장을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제2차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을 위한 전체회의를 열고 과당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레미콘 사업과 관련,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하지 말도록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한라그룹은 동반성장위의 권고 결정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사업조정(대기업이 중소기업 상권에 진출, 중소기업의 경영 안정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경우 신청할 수 있는 제도)’을 회피하기 위해 위장·차명 업체를 내세웠다가 법원으로부터 철퇴를 맞았음에도 사업 진출을 포기하지 않고 항소를 통해 사업 확장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조양산업 내세워 여수 일대에 레미콘 제조 공장 건설
광주지방법원 “전남도청의 종결처분 취소하라” 판결
한라그룹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 해놓고 ‘묵묵부답’
레미콘협동조합은 2010년 8월26일 “대기업인 한라건설의 자회사 한라엔컴이 위장·차명회사인 조양산업을 내세워 전남 여수시 월하동 일대에 레미콘 제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며, 전남도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한라엔컴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100% 지분을 소유한 레미콘의 제조 및 판매 회사로, 전남도청은 같은 해 12월 “한라엔컴과 조양산업의 지배 관계에 대한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다”며 사업조정신청을 반려했다.
31억원 이상 금액 한라엔컴에서 차용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은 협동조합 등 중소기업 단체가 대기업 혹은 대기업의 실질적 지배를 받는 중소기업이 사업을 인수·확장해 관련 업종의 중소기업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 사업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기업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이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그 중소기업의 발행주식 총수 또는 출자총액을 초과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자산을 대여하거나 채무를 보증하고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
레미콘협동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 업체인 우리개발은 레미콘 공장을 짓기 위해 2009년 여수시로부터 여수시 원하동 일대 부지를 매입하면서 31억원 이상의 금액을 한라엔컴으로부터 차용했다.
2010년 7월 우리개발로부터 해당 부지를 매입한 조양산업은 계약 당시 매매대금 37억원 중 6억원은 우리개발에 31억원은 한라엔컴에 지급하기로 했다. 한라엔컴이 우리개발의 채권자로서 해당 부지의 매매계약 당사자로 참여한 것이다.
이후 조양산업은 최근까지 한라엔컴에 19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레미콘조합이 사업조정을 신청할 당시 조양산업의 출자총액은 11억원이었다”며 “조양산업이 한라엔컴에 지급하기로 한 31억원 중 이미 지급한 금액을 제외한 12억원은 조양산업의 출자총액인 11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조양산업이 우리개발의 채권자인 한라엔컴에 31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우리개발의 한라엔컴에 대한 ‘대여금 반환 채무’를 조양산업이 인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레미콘협동조합 관계자는 “한라엔컴이 우리개발에 돈을 빌려줬고, 이 돈을 조양산업이 갚기로 했으면 한라엔컴과 조양산업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며 “우리개발과 조양산업은 한라그룹의 위장 자회사”라고 지적했다.
한라엔컴과 조양산업의 이상한(?) 관계
이모씨는 1995년 8월경부터 한라엔컴의 직원으로 근무하다 2009년 12월 부장이사로 퇴직했다. 우리개발이 여수시로부터 해당 부지에 매입한 당시와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이모씨는 이듬해 7월 자본금 4억원을 출자해 레미콘 제조 및 판매 등을 목적으로 하는 조양산업을 설립했다.
또 조양산업은 레미콘 공장을 완공한 후,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한라건설이 시공 중인 여수 웅천지웰 2차 아파트 공사현장에 레미콘 전량을 단독으로 납품하고 있다. 한라엔컴이 조양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일 경우, 여수 지역 중소 레미콘 업체의 경영난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특히 조양산업은 레미콘협동조합이 사업조정신청을 제기한 2010년 8월26일을 전후로 총 4차례에 걸쳐 증자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가장 납입을 하는 무리수까지 둬 더 큰 의혹을 샀다.
레미콘협동조합측으로부터 입수한 광주지방법원 행정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조양산업은 2010년 8월16일에 4억원(자본금 총액 8억원), 8월26일에 3억원(11억원), 11월17일에 5억원(16억원), 12월3일에 2억원(18억원)을 증자했다.
조양산업은 이 과정에서 8월26일 납입한 3억원 중 2억원과 11월17일에 납입한 5억원 중 4억원을 가장 납입했다.
때문에 조양산업이 한라엔컴에 지급해야 할 31억원이 ‘대여금 반환 채무’로 인정될 경우, 갚아야 할 나머지 금액 12억원보다 출자총액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증자를 실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종적으로 실시한 증자금액까지 합하면 현재 조양산업의 출자총액은 18억원으로, 대기업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이 되는 요건(한라엔컴이 조양산업의 출자총액을 초과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자산을 조양산업에 대여해 줬을 경우)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업조정신청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제3자가 그 처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청 이후에 신청요건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부당하게 변경시키는 경우를 고려해, 레미콘협동조합측이 사업조정을 신청한 8월26일 당시의 출자총액(11억원)을 기준으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항소 제기한 조양산업과 전남도청
광주경실련 김기홍 사무처장은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 “대기업이 상생법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한 최초 판정”이라며 “이번 판결로 대기업의 무차별적 중소기업 사업영역 진출로 고통 받았던 많은 중소기업들이 자신의 사업 영역을 지켜나갈 토대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대기업이 계열사 또는 관련회사를 통해 탈법적 사업 진출을 도모했음에도 이를 감독하고 사업조정을 관할해야 할 전남도는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앞장서야 할 자치단체가 제 역할을 포기한 채 대기업의 일방적인 요구에 굴복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관할 지자체인 전남도청은 이번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며 지난 6일 광주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고문 변호사의 자문을 받은 결과, 문제의 12억원은 단순한 매매계약 잔금으로 대여금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사업조정신청을 반려했다”며 “조양산업의 편을 든 것이 아니라 소신 있게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지역 중소업체들이 막대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현재 조양산업이 지역 중소업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며 “또 실제로 조양산업이 한라엔컴의 자회사가 아니라면 더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조양산업”이라고 두둔했다.
이어 “조양산업이 피고보조참가인 자격으로 우리보다 먼저 항소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항소를 하지 않았어도 소송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2심에서도 1심과 같은 판결이 나오면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라그룹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으나 10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