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이마트와의 거래로 20억 손해…분신자살”
이마트 “거래 안한지 벌써 4년째…법적 책임 없어”
[매일일보닷컴] 지난 1월 21일, 이마트와 납품거래 상담을 하던 한 수산물유통 중소기업 사장이 분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신에 2~3도의 화상을 입은 그는 결국 지난 2월 3일에 사망했고,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와 보상문제를 두고 유가족과 이마트측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유가족은 이마트측의 사망책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고인의 장례절차를 미루고 있고, 이마트 측은 “지난 4년간 거래가 없었으니 우리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서로 상반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유가족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계자들은 지난 27일 고인이 분신한 서울 응암동 이마트 은평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마트는 분신사망 사건에 책임 있는 자세로 유족들과의 대화에 임하고, 불공정행위 근절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故) 차병국(밥고래푸드 대표・45)씨의 형인 차병호(47)씨는 “지난 2001년 이마트에 수산물 납품을 시작한 동생은 이마트측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수억을 들여 포장기계, 포장지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마트의 불공정 행위로 20억원이라는 피해가 고스란히 동생에게 돌아왔고 결국 분신자살까지 하게 됐다”며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고인의 형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001년 진공 포장한 일본산 반건 생선을 이마트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마트측은 차씨 제품의 포장으로는 고객의 눈길을 끌 수 없다며 바꿀 것을 요구했고, 안정적인 판로가 필요했던 차씨는 이마트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억대의 돈을 들여 포장기계와 포장지 등을 들여왔다. 그러나 이마트측은 판매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3개월만에 판매중단을 요구했고, 차씨는 앉은자리에서 수억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 이에 차씨는 이마트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마트측은 영남권 매장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제소를 취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재납품 조건으로 차씨는 ‘모든 손실에 대한 책임은 납품업체가 지겠다’는 각서를 써야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안정적인 판로확보와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선 이마트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씨는 2003년 이마트 진주·창원 등 4개 점포에 매장을 개설하게 됐다.차씨의 형에 따르면 차씨가 한 매장에서 하루 벌어들이는 수입은 몇십만원이 고작이었다. 또 각 매장당 3~5명의 판촉 사원을 둬야 했고, 그들에게 인건비를 지불하는 것은 이마트가 아닌 차씨였다. 그러다보니 인건비와 이마트측에 지불하는 판매수수료를 제하고 나면 차씨 손에 돌아오는 건 이익이 아닌 손실뿐이었다. 계속되는 손실로 차씨는 납품 7개월만인 2004년 2월 납품거래를 스스로 취소했다. 차씨의 회사는 결국 2005년 9월, 누적된 적자로 부도가 났고 차씨는 물론 차씨의 여동생과 큰아버지 등도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게다가 생활고를 이유로 부인과도 이혼하게 됐다.고인의 형 차병호씨는 “동생은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종업원 80여명을 거느린 건실한 중소업체 사장이었다”면서 “홈쇼핑에서 고등어를 팔아 많은 이익을 냈고, 일본에도 수출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마트와 거래를 시작하면서 20억 이상의 적자가 나기 시작했고 회사는 부도가 났다”고 주장했다.유가족 “아이템 빼돌리고 오리발?”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기엔 그동안 들인 공이 너무 아까웠다. 차씨는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인 지난 2005년 1월, ‘화산재를 이용한 수산물 가공방법’으로 수산물의 유통기한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3개의 특허를 획득했고 이를 이용해 재기를 노렸다.2007년 6월, 차씨는 이마트와의 접촉을 다시 시도했다. 당시 차씨의 형은 차씨에게 “많은 대형마트 중에서 왜 하필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이마트’와의 거래를 고집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차씨는 “이마트가 우리나라 유통업체 중 가장 많은 점포수를 가지고 있다. 공장을 가동하고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선 무엇보다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안정적인 판로가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직원들도 살 수 있고 나도 살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3년 만에 다시 찾아간 이마트. 유가족에 따르면 이마트는 처음 차씨의 제품을 보고 “획기적인 아이템”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의 반응과 달리 이마트측은은 이후 몇번에 걸쳐 진행된 제품미팅 자리에서 “용기 디자인을 바꿔라” “제품단가를 낮추기 위해선 운송비를 절약할 수 있는 육지에 공장이 있는 것이 좋겠다. 생산공장을 옮겨라” “차씨는 신용불량자 신분이라 거래가 어렵다. 다른 대표를 데려와라” 등을 이유로 거래를 지연시켰다. 차씨는 이마트가 원하는 조건에 맞추려 노력했다. 이마트측이 직접 고른 용기에 제품을 담았고, 생산공장도 이전했다. 영업대표도 차씨 본인자신에서 사업파트너인 박모(남・48)씨로 바꿨다. 지난해 6월 첫미팅 이후 계속해서 납품계약이 미뤄지고 있던 중 차씨는 우연히 같은해 10월 상품을 납품하고 있는 A사가 차씨가 거절당했던 포장용기와 동일한 규격으로 굴비를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만 차씨회사의 제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특허’라는 단어와 ‘화산재’라는 단어가 빠졌다는 것뿐이었다. 유가족측이 이마트와 A사 간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으나 이마트측은 지난 1월 21일 “신용불량자와는 거래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절망감을 느낀 차씨는 같은날 오후 6시 40분경 이마트 은평점 앞에서 분신, 14일간 고통 속에서 살다 지난 2월 3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한편 이날 고인의 두 자녀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북받치는 설움에 미리 준비해온 편지조차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아들 영훈(18)군은 “아버지를 상대로 이마트가 장난을 쳤다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며 “이마트가 지금처럼 ‘나몰라라’하는 자세로 일관되게 나온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아빠와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딸 미진(14)양은 “아빠를 잊어버리고 싶진 않지만 추억이 더욱 힘들게 한다. 아빠가 너무 보고싶다”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대형유통업체 불공정거래 만연
이마트 중소납품업체 사장의 분신사건에 대해 노동계는 “유통기업에 협력업자로 연결돼 있는 수많은 납품업체들이 거래가 끊길 것을 우려해 각 기업의 악질적 횡포에 이의제기조차 못하고 있다”며 “차씨의 죽음은 예견된 사고”였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김형근 위원장은 “이마트와 고인의 사업 거래 내용은 불공정거래 횡포로 얼룩져 있다”면서 “업계 1위 이마트의 성장 뒤에는 중소 납품업체의 말 못하는 한숨과 피눈물이 섞여있다”고 말했다.김 위원장은 이어 “불필요한 판촉사원 고용 강요, 납품 단가 강제조정, 판매 수수료율 인상, 판촉·광고비와 경품 비용 떠넘기기, 일방적 거래 중단, 아이템 빼돌리기 등 이마트의 불법 횡포는 참으로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형유통업체와 거래 중인 중소납품업체 109곳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중 76%가 추가비용 요구, 각종 비용전가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87%는 불만을 제기했다 거래가 끊길까봐 이 같은 불공정 행위를 감내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대∙중소기업 상생협회 조성구 회장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유통망을 독과점하고 있어 중소기업들이 납품할 수 있는 곳은 대형마트 밖에 없다”면서 “대형마트에 입점하더라도 많은 이윤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은 중소기업 업체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와 거래를 하지 않으면 재고는 더욱 쌓여가고, 은행대출이자는 날로 늘어만 가기에 불공정행위를 알고도 참고 견뎌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이마트 “억울하면 4년 전에 얘기했어야”
한편 이마트측은 고 차병국씨의 죽음의 원인이 이마트에 있다는 유가족들의 주장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기색이다. 이마트 홍보팀 한 관계자는 “가족을 잃어 어딘가에 하소연하고 싶은 유가족들의 마음은 인간적으로 이해하지만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납품업체에 대한 부당한 횡포는 전혀 없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첫 번째로 이마트측은 제품아이템을 빼돌렸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냉동굴비를 소량으로 묶어 판매하는 공법은 이미 업계에서 예전부터 사용돼 왔던 방식이다. 이마트뿐 아니라 국내 모든 대형유통업체에서 소량판매방식으로 굴비를 유통해왔고, 다만 차씨의 제품은 ‘화산재를 이용한 가공법’으로 특허를 받았다는 게 차이점이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판촉사원을 의무적으로 두게 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당시 차씨의 회사와 맺은 계약은 판매수수료의 일정부분만을 이마트가 지불받는 수수료매장 방식이었다. 때문에 매장에 필요한 인력은 해당업체에서 고용, 임금을 지불해야한다”면서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서 판촉사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강요하지 않았다. 영업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일을 할 수가 없다. 또 주5일제가 기본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한 매장당 3~5명을 고용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해명했다.세 번째, 이마트가 불공정거래행위를 자행했다는 주장에 대해 이 관계자는 “2004년 1월 이후 차씨의 회사와 거래를 한 적이 없다. 거래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불공정거래를 할 수 있냐”면서 “또 우리에게 피해를 당했다면 2004년 당시에 문제제기를 했어야지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사업실패는 물론, 죽음의 책임까지 모두 떠넘기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2001년 당시 3개월, 2003년 7개월, 총 10개월을 거래했다. 그 당시 거래 액수는 약 10억원 정도”라며 “연간 매출이 200억에 달한다는 업체가 10억을 거래한 우리 이마트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다른 곳에서 피해를 본 게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한편 이마트측은 사고 직후 유족들에게 병원비 일부를 지불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내 번복했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우리회사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러나 이마트로 인해 심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니 도의적인 차원에서 병원비를 지불하려 했었다”며 “그러나 유족들이 아이들 교육비, 10년간 생활비 등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어 병원비 지불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