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도가니법에서 우린 빼줘”

전국의사총연합, 성범죄자 취업제한에 ‘의료인’ 포함 강력 반발

2013-01-11     김경탁·권희진 기자
[매일일보=김경탁·권희진 기자] 영화 <도가니> 열풍의 여파로 강화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성범죄자 취업제한 직종’에 의료인이 포함된 것에 대해 의사들이 집단 반발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30일 국회는 최영희(민주통합당) 여성가족위원장의 대표발의로 제출된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명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성범죄자 취업제한 직종에 학습지 교사와 의료인을 추가했다. 개정 법 조항에 따라 성범죄자로 벌금형 이상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의료인(의사, 간호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은 확정 판결 후 10년간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 법조항의 악용 소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은 “의료인을 성범죄자로 매도하는 악법”이라며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전의총 “의료인을 성범죄자 매도…10년 간 취업제한은 사망선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탄원서 준비…‘진료거부’ 가능성까지 거론

전의총은 법안의 포고를 막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대통령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의사 5천 명을 목표로 서명을 받고 있다. 전의총은 탄원서를 오는 12일 청와대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2009년 법정단체인 대한의사협회에 반기를 들면서 임의단체로 출범한 전의총은 지난해 12월 하순 현재 회원이 6천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전의총의 현 회원수를 감안하면 이들의 서명 목표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해당 단체 회원의 대부분이 30대에서 50대 사이의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의사들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료계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전의총은 탄원서와 성명서 등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의 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의 이 법안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의료인들은 이 법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성범죄 시 10년 취업제한은 사형과도 같은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전의총은 “의료인은 형량의 경중 없이 무조건 성범죄와 관련 벌금형만 받아도 10년간 취업이나 개업이 불가능하다”며 “전문직 의료인이 자신의 면허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경제적 활동을 중지하라는 뜻이며 사망선고와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료거부’ 가능성까지 거론

이들은 특히 “신체적 접촉이 빈번한 진료여건상 이 법안은 타당성과 형평성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의사들에겐 진찰거부 외에는 답이 없다”며 “의사들은 스스로의 면허를 지키기 위해 진찰을 거부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의사들이 총파업이라는 이름으로 의료행위를 거부한 사례는 2002년 당시 의약분업에 대한 반대의 뜻을 밝히면서 진행했던 것이 거의 유일한 사례인만큼 전의총의 이번 위협이 얼마나 파장을 미칠지는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노환규 전의총 대표는 <매일일보> 인터뷰에서 “사람을 대하고 신체적 접촉이 빈번한 의료인들의 직업적 특성상 윤리가 뒤따르는 건 알고 있지만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이는 반대로 의료인들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했다. 노환규 대표는 “예를 들어 환자가 의사의 진찰 시 성적 수치심을 느껴 의료인을 고발했을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향후 의사의 진료 행위를 성추행으로 주장해 협박, 허위 고발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표는 “진료과정에서 환자가 일반적인 성범죄를 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의료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도 CCTV라도 설치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현행법이 규제를 하고 있기에 의료인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어떤 장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의협․치의협 “악용 소지” 공감대

전의총은 해당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 적극 찬성 입장을 밝힌 대한의사협회에 대해서도 나날이 비판의 수위를 높이면서 날을 세우고 있다.

전체 의사의 뜻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찬성입장을 밝혀 전체 의사들의 권익을 해치는 법안통과를 방조했다는 것이 전의총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의사협회 측은 “이번 법안은 일반 시민적 시각과 전문가(의사협회)적 시각 두 시각의 특수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어 입장 전달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은 입장 공개를 고사하겠다”고 밝혔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의료인은 촉진이라는 부분이 있어 더욱 애매하고 특수한 분야라서 무조건 성범죄로 포괄하기엔 범위가 넓다”는 말로 전의총에 일부 동조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분명히 불합리적인 측면이 있어 아직까진 인터뷰를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의료인’의 한 축인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의협) 측은 적극적인 반대의사 표명은 꺼리면서도 법안의 악용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치의협 이강운 법제이사는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 범죄 뿐만 아니라 성인에 대한 성범죄까지 포함하고 있다”며 “정말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이 법안은 분명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강운 법제이사는 “치과의사의 경우도 환자의 입술을 만질 수도 있고 팔꿈치 등으로 신체를 접촉할 수 있다”면서 “선의의 의도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입법 취지는 공감하지만 악용의 소지가 충분한 법안”이라고 덧붙였다.

간호사협 “법, 유쾌하진 않지만 반대 안해”, 한의협 ‘노코멘트’ 

대한간호협회 측은 “아이들과 청소년의 성보호를 위한 법안 자체이므로 정책 자체는 긍정적이다”면서 “윤리를 기반으로 하는 간호사도 명단에 추가된 부분이 썩 유쾌하진 않으나 굳이 반대를 표명하고 싶지도 않다”고 밝혔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사들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직업이 그러하겠지만 의료인으로써 더욱 윤리의식을 갖고 품위유지를 하도록 노력 하겠다”고 전했다. 한의사협회 측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공식․비공식 입장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한 협회 관계자는 <매일일보>의 취재 요청에 “해당 사안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관련 언급을 하기는 좀 꺼려진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한편 ‘성범죄자 취업 제한 직종’에 의료인을 추가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은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보름 내로 공표가 된다. 이와 관련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 강정민 과장은 의사협회 반발에 대해 <매일일보> 인터뷰에서 “법 개정 공표되고 시행되는 시점까지 6개월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정민 과장은 “성범죄자 취업 제한에 의료인을 추가시킨 것은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이라며, “의사협회의 반발이 있어 조만간 이들과 함께 간담회를 갖고 법률자문을 거쳐 의견조율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