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의사에 의한 성추행 빈번…입증 어려워 피해 계속”

성추행 의사들 “의료행위 중 하나로 치료목적이었다” 발뺌

2013-01-11     김경탁·권희진 기자

[매일일보=김경탁·권희진 기자] 성폭력 범죄로 입건되는 의사의 수는 2006년 35명, 2007년 40명, 2008년 48명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의료법상 성범죄는 의사면허 취소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1년 이하의 면허정지 기간이 지나면 다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8월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는 성범죄 의사의 면허를 영구 취소해야하느냐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방송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3.1%는 “성범죄로 법적 처벌받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답했고, “이미 법적 처벌로 죗값을 치렀으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응답은 13.9%에 그쳤다. 성폭력 피해문제를 최일선에서 다루는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전의총으로 대변되는 일부 의사들의 조직적 반발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의사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는 사례가 빈번한 현실에서 실제 법적 처벌로 이어지기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는 만큼 의사들의 반발은 엄살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반응이다.

여성계 “성범죄자로 처벌 받은 의사가 멀쩡히 의료 행위를
계속 한다면 그거야말로 말이 되는 상황인지 되묻고 싶다”

‘한국여성의 전화연합’ 대외협력부장 등을 지내고 현재 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경남씨는 “의료법상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진료 상 옷을 벗거나 신체를 만질 수도 있지만 문제는 진료에 필요치 않는 상황에서도 신체를 접촉하는 등 성추행이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씨는 “얼마 전에도 한 피해 여성이 의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면서 최근 사례를 한 가지 제시했다. 서씨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의사가 진료실에 간호사를 동반해 진료해야 하는데 간호사가 나간 뒤 내 가슴을 만졌다”며 “가슴 쪽 진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체 접촉을 일삼았다”고 피해사실을 호소했다. 피해 여성은 간호사와 의사에게 의사의 행동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의사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고발할 테면 해라. 자신은 치료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했을 뿐”이라며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고 결국 피해 여성은 소송 등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경남씨는 “상당수 성추행, 성폭행 피해 여성이 복잡한 소송에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많은데, 더더군다나 의료기관을 상대로 싸우는 소송은 특히나 더 힘든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서씨는 “의사들이 환자로부터 성추행을 의심받으면 흔히 ‘의료행위 중 하나였다. 치료목적이었다’는 이유로 쉽게 발뺌하는 식이 대부분이기에 ‘성범죄 의료인 취업제한법’을 반긴다”고 말했다. 서씨는 “전문성을 기하는 의료인들에겐 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과 신체 존중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엄격한 처벌과 규정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장명숙 상임대표는 의사들의 집단반발에 대해 “적어도 의료인이라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기본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장명숙 대표는 “예를 들어 의사가 성범죄자로 처벌을 받은 뒤에도 멀쩡히 의료 행위를 한다면 그거야 말로 말이 되는 상황인지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장 대표는 “성범죄자 취업제한에 의료인 추가 법안을 두고 의료협회에서 반발이 있다면 내 입장은 ‘공인으로써의 위치를 지닌 만큼 스스로 떳떳하게 도덕적 행동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이선미 활동가 역시 “얼마 전 있었던 ‘고대생 성범죄’ 사건과 관련 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의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 법안이 결코 무리하다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끼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선미 활동가는 다만 “취업제한 직군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인지가 고민”이라며, “성범죄자도 어쩔 수 없는 사회의 일원인데 사회에서 마냥 분리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성범죄자의 직군을 제안하는 것이 성범죄를 막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고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