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7개월째 기준금리 동결...베이비 스텝은 언제쯤?

2012-01-13     안경일 기자
[매일일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임진년 첫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7개월째 연 3.25%로 '제자리걸음'이다. 물가 상승의 우려가 여전하지만 유럽발 재정위기 우려를 비롯한 글로벌 경기 부진 우려가 김중수 한은 총재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는 2010년 11월을 기점으로 격월 0.25%씩 인상되면서 2년3개월 만인 지난해 3월 연 3.0%로 올라섰다. 그러나 지난해 6월부터는 연 3.25%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경기 상황을 보면서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한다는 김 총재의 '베이비스텝(아기 걸음)' 기조는 당분간 서랍으로 들어갔다.

4%대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물가'와 '경기 하강 리스크' 가운데 후자가 관건이다. 지난해 8월 이후 불거지기 시작한 유로존 문제는 올해 2~3월 이탈리아의 대규모 국채 만기 도래를 앞두고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 건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장기 침체에 접어들 수 있다. 신흥시장의 성장세는 약화됐고, 미국의 경제 지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속단하기에 이르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금리 정상화가 멈출 때부터 한은은 올해 1분기에 닥칠 대외 불안 요인을 이야기했다"며 "이탈리아 국채 만기 돌아오는 등 유럽 쪽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 못하는 등 한은이 경기 하방 리스크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 역시 "대외 불안 요인도 지속되고 있고, 경기 상황도 회복세를 안보이고 있다"며 "금리를 올려서 물가를 잡으면 좋지만 대외 불안 요인이 지난해 말보다 악화되는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금리를 올릴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 역시 장기적인 성장세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해외 위험 요인의 영향으로 성장의 하방 위험이 높은 상황이다. 문제는 물가 안정을 최대 정책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한은이 물가 안정을 위해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한은에서 지급준비율에 손 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비 4.2%로 여전히 4%대의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소비자물가 예상치를 3.2%로 제시하면서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서 소비자 물가를 3%대 초반에서 잡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는 연 3.0%±1%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6개월째 4%에 머물고 있다. 이는 향후 1년간 물가 상승률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인데 그만큼 물가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다는 의미다.

임 연구원은 "유동성 과잉 상태에서 한은이 지준율 인상을 준비하는 것은 물가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라며 "금리 인상은 가계 부채를 줄이기도 하지만 가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높이는 역효과가 있는 반면 지준율은 금리보다 부담이 적어서 향후 문제가 있을 때 지준율 카드를 쓰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로존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HSBC는 "경기하강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한국의 정책 당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선제 조치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1분기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대열에 나설 지는 의문이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최근 신흥경제국의 통화정책 여건 변화 및 전망'을 통해 신흥경제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이 차별화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즉 실질 금리가 플러스로 금리 인하 여력이 큰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중국 등은 통화 완화 가능성이 높은 반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상태인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은 향후 기준금리 정상화를 지속할 유인이 크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원은 "대외적인 여건이 추가적으로 악화되거나 국내 경기 둔화폭이 커지는 등 충격 요인들이 나타나면 금리 인하가 가능하지만 지금은 고물가와 가계 부채 부담이 있으므로 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며 "올해는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유럽이나 미국의 경기 상황이 나아지면 내년 1분기 정도에 금리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