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 프로필

2012-01-15     김민지 기자
[매일일보] 문성근(59)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연기파 배우에서 쇼셜테이너의 길을 걷다 15일 전당대회를 통해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1953년 5월28일 일본 도쿄에서 재야 ‘통일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문익환 목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문 최고위원은 서울 보성고교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1985년 황석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한씨 연대기’로 첫무대를 시작했다.

연극 ‘칠수와 만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리포트’, ‘경마장 가는 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꽃잎’, ‘초록물고기’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 그는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90년대에는 당시만 해도 연예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SBS 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맡아 날카로운 분석력과 차분한 언변을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겼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선배 영화인 명계남과 함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모임’(노사모)의 주축을 이루며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유명한 아버지 문 목사는 투쟁 중 6차례에 걸쳐 투옥되는 등 10여 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1989년에는 실정법을 어기고 방북, 김일성 주석과 면담한 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문 목사는 출감 이후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1993년 별세했다.

문 목사는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분을 쌓게 됐다. 동생인 문동환 목사는 형보다 일찍부터 사회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하던 중 평화민주당 부총재로 김 전 대통령을 돕기도 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문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은 물론,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교분을 쌓게 됐다는 분석이다.

직접적인 정치참여의 계기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표적수사’ 논란 끝에 2008년 봄, 봉화마을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후 그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참여정부 당시 수차례 정치참여를 권유받았지만 대중예술인으로 남길 고집했던 그는 지난해 스스로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만든다.

2010년 그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5당의 통합을 목적으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정치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민통합당을 거쳐 민주당과의 합당을 이끌어낸 그는 민주통합당 지도부 1차 예비경선을 통과한데 이어 본선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끝에 최고위원에 오르는 성과를 일구러냈다.

▲1953년 ▲일본 도쿄 ▲서울 보성고 ▲서강대 무역학과 ▲영화배우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노무현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고문 ▲백만송이 국민의명령 대표 ▲혁신과통합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