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그들만의 민심
2020-04-17 송병형 기자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청와대가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한 16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언제든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는 무자격자의 임명을 강행하면 국민에게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검찰은 한국당의 고발에 따라 이날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에 이 후보자 부부 사건을 배당했다. 같은 날 금융위원회는 바른미래당의 요청에 따라 이 후보자 부부의 주식거래에 대한 정식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의 말이 현실화될 것 같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이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직 헌법재판관이 피의자로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과연 벌어질 수 있겠는가. 게다가 청와대의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나온 상태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하면서 “주식 투자 논란은 이 후보자의 남편인 오충진 변호사가 직접 해명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 거래 과정에서 불법이 없었고, 따라서 결격사유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애초 이 후보자 논란은 법의 문제가 아닌 국민 눈높이의 문제였다. 헌법의 본질은 민의이고, 헌법재판관은 뜬구름 같은 민심을 읽어내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심의 외면을 받는 헌법재판관이 헌정질서를 수호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나 다름없다. 물론 민심이란 게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 마련이니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그칠 수도 있다. 특히나 사람이란 존재가 자신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일이면 기억에 인색하지 않는가. 인사 논란이야 오랫동안 기억할 거리도 아니다.어쩌면 그래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세간의 ‘인사 참사’ 운운에 유독 그렇게 당당하지 모르겠다. 인사 논란 때마다 청와대의 해명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인사검증을 맡은 민정수석실의 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검증 단계에서 모두 체크된 의혹들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으며 인사검증 7대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영선 때도 김의겸 때도 그랬다. 김기식 때는 불법인지 아닌지를 선관위에 물어보면 될 일이라고 했다. 해명 어디에도 ‘민심’이란 단어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민정수석이 학교에만 있었던 고고한 원칙주의자라서? 그런데 민정수석이란 자리가 구중궁궐에 갇힌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라고 만든 자리 아닌가. 공직기강을 잡고 사정기관을 단속하는 일도 민심이 정권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지향점이다. 여권 모두가 촛불정신의 상징이라고 떠받드는 당사자가 그 역할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민정수석이 그토록 민심에 무심한 것은 한 가지 이유뿐일 게다. 우리 사회 1%에 속하는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만 정의를 외쳐왔으니 보통사람들이 무엇에 상처를 받는지, 어느 대목에서 실망감을 느끼는지 모르는 것이다. 불법으로 번 돈이 아닌데 강남 한복판에서 삶을 누리는 게 뭐가 문제인지, 여유 돈으로 몰빵 주식 투자를 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법한 경제활동을 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으니 ‘문제가 된다’는 세간의 비판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장하성 주중대사도 청와대에 있을 때 “모든 국민이 강남 가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나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 술술 나왔지 않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