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C-PLAYER’ 인사관리, 한해 직원 5명 자살한 '내막'

전면 나선 3세들 권위적 태도에 사내 불만 ‘팽배’

2012-01-17     도기천 기자

[매일일보 = 도기천 기자] 대한항공이 1969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가파르게 치솟는 국제유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고가 항공기 A380을 도입하면서 부채비율이 600%를 훌쩍 넘겼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나면서 경영상황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채권발행 등으로 조달한 자금이 무려 2조6천억대에 이른다.

조양호 회장이 위기돌파를 선언, 조직쇄신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자살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에만 총 5명의 직원들이 우울증, 스트레스 등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의 혹독한 인사관리 프로그램인 ‘C-플레이어(PLAYER)’가 한 원인이라고 전한다. 항공사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오너일가 경영 체제가 불러온 비극”라고 단언했다.

도대체 국내 최대의 항공사인 대한항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대한항공의 ‘불편한 진실’ 속으로 들어가 봤다.  

 무리한 ‘A380기’ 수입, 부채비율 600%로 치솟아
화물량 감소·유류비 상승…빚더미 경영 ‘악화일로’

오너일가 ‘혹독한 경영’, 직원 스트레스 ‘위험수위’

“위기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안정화가 필수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위기대응을 위한 조직안정화를 새해 화두로 내걸었다. 지난해 6월 A380기를 도입해 직접 독도 시범 비행에 나섰을 때는 “강력한 오너십이 대한항공의 강점”이라며 “항공 경기가 안좋을 때 A380을 대거 주문해 명품항공사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강력한 오너십’, ‘조직의 안정화’ 등의 화두가 직원들의 잇단 자살과 경영악화로 연결되면서 조 회장의 리더십에 비상이 걸렸다.

우선 지난해 6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 도입한 A380기가 결국 부채만 늘린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치솟는 유가와 A380기를 도입하면서 진 빚(채권)으로 매출액은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마이너스 상태로 돌아선지 오래다.

지난해 6월부터 총 10대의 A380을 도입하면서 대한항공 부채비율은 2010년 200~300%에서 지난해 중순 493.7%, 9월말엔 622.3%까지 치솟았다. A380 한 대당 가격은 3억7500만달러(약 4400억원)에 이른다. 대한항공은 자금조달을 위해 지난해 2월 3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것을 시작으로 4월에는 300억엔의 ABS를, 5월에는 2억달러 규모의 김치본드(원화 자금을 싼값으로 조달할 목적으로 발행하는 외화표시 채권)를 유통시켰다. 지난해 조달한 자금은 2조6000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영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매출액은 3조3,191만5,700만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392억6,800만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6.5% 감소했다. 당기 순이익은 -5,444억600만원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은 주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불과 1년전(지난해 1월)만해도 7만원을 웃돌았던 주가가 4만5000원대(16일 종가기준)까지 폭락했다.

조 회장 가족 경영, 직원 스트레스 ‘위험수위’

조 회장은 ‘조직 쇄신’을 강조하며 위기극복에 나섰지만 오히려 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0월 2006년 이후 처음으로 만 40세 이상, 근속 15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제도를 시행, 직원 감축에 나섰다. 당시 대한항공 측은 “구조조정이 아니다. 희망자가 없으면 퇴직자가 한 명도 안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조만간 퇴직금 중간 정산이 경영 악화로 중단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명예퇴직을 신청자가 늘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관측이다.

지난 연말부터 임원수를 대폭 줄일 것이란 얘기도 나돌았는데, 지난 6일 단행된 대한항공 2012년 정기 인사에서는 임원수의 감축은 없었지만, 조양호 회장 가족들이 모두 승진에서 누락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동안 승진설이 돌던 조 회장의 장녀 조현아 객실승무본부장 전무와 장남 조원태 경영전략본부장 전무, 막내 조현민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광고 담당 겸 IMC팀장 상무보 등 오너 일가 3세들이 전부 승진에서 제외돼, 최근의 위기설을 실감케 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항공 사내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드는 건 직원들의 잇단 자살이다. 조양호 회장이 최근 위기 정면 돌파를 선언, 혹독한 성과급 프로그램 ‘C-플레이어(PLAYER)’를 가동하면서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2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정비사, 승무원 등 모두 5명이 우울증, 스트레스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며, 이중 한명은 퇴직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항공의 ‘릴레이식 자살’의 시작은 지난해 2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새벽 이 회사 직원 A씨(남, 41)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동의 대한항공 신갈 연수원 옥상에서 떨어졌다. A씨는 객실 승무원 징계를 정당화하는 과정의 변호사 업무 보조를 수행하던 중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동료의 징계를 정당화해야 하는 자신의 업무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고 전한다.

3월 6일에는 대한항공 기체 정비팀 B씨(남, 39)가 자신의 부산시내 자택 아파트서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업무상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으로 5년 전부터 정신과치료를 받아왔지만 사건 직전 적절한 상담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다음 날인 3월 7일에는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C(남, 52)씨가 숙소인 R호텔 베란다에서 투신자살 했다. 당시 동료들은 C씨의 자살과 관련, 직원들끼리 서로 감시 감독해 고발케 하고, 점수를 매기는 이른바 ‘X맨 제도’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C씨는 2009년까지 국제선 팀장으로 기내 서비스를 이끌었으나 직원을 대상으로 한 근무평가제(C-PLAYER)에 따라 지난 해 8월 하위 5%에 드는 점수를 받아 하루 아침에 국내선 일개 승무원으로 좌천됐다. C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나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달 뒤인 4월에는 대한항공 국제선 승무원으로 입사해 인턴교육을 받다 그만둔 D씨(여, 21)가 자신의집에서 목을 매 숨졌다. D씨는 대한항공 국제선 승무원으로 입사해 인턴 교육을 받다 그만두고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D씨가 자살을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대한항공 노민추(노동조합민주화 추진위원회) 홈페이지에 이 소식을 처음 올린 아이디 '친구'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회사에서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가장 최근의 안타까운 소식은 지난달 1일에 있었다. 김포공항 대한항공 본사 내 건물 옥상에서 대한항공 직원 E(남, 47)씨가 투신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E씨는 정비 계통 업무에 종사하는 과장급 직원으로, 이날 본사에서 교육을 받다가 휴식시간에 투신했다. 해당 건물 옥상에서는 E씨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과 함께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E씨는 최근 회사측과 마찰을 빚어오다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군대문화 팽배, 직원들간 서로 ‘감시’

직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대한항공의 핵심 인사제도인 ‘C-플레이어(PLAYER)’는 2005년부터 객실 승무원을 대상으로 성과 및 역량 등에서 회사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직원을 선정해 집중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에 따라 비공개로 선정된 직원은 소속 부서장과 성과 개선 자료를 가지고 면담하거나 리포트를 제출하는 등 특별 관리를 받게 한다. 특히 ‘타팀평가제’는 한 조로 일하는 승무원팀에 다른 팀을 투입시켜 업무성과·근무태도 등을 평가하게 하는 비인권적인 처사로 알려진 제도다.

실제 ‘C-player’에 선정된 경험이 있는 직원들은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대한항공 사정에 밝은 익명의 제보자는  “C-PLAYER 제도의 이면에는 조양호 회장의 아들, 딸들을 전면에 내세운 오너일가 경영체제와 고질적인 군대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대한항공 직원들 중 상당수가 공군출신으로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한데다, 조 회장이 부하직원에 대한 태도가 엄격해 부하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혼자서 참고 삭여야 하는 구조”라고 전했다.

또다른 한 소식통은 “경영전면에 나선 조 회장 자녀들이 임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권위적인 것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며 “대한항공 안팎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지만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며, 항공업계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파다하게 퍼져있다”고 귀뜸했다.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C-PLAYER에 선정된 직원이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좌천될 경우 군대 후배(하급자) 밑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 군 문화를 고려하면 치욕적인 일로, 사실상 회사를 그만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C-Player’ ‘타팀 평가제’ 등이 직원들의 불만 원인으로 어느 기업에서든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C-Player 제도는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보통 사기업에서 적용하고 있는 제도로 표준화된 시스템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C-Player’를 시행하고 있는 일부 기업들은 노조의 반발 등에 부딪혀 제도시행에 신중을 기하고 있으며, 제도 자체가 중단된 경우도 있다. 또 아시아나항공 등 경쟁사들은 아예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실례로 KT에서는 ‘C-PLAYER(인력퇴출프로그램)’이 대한항공과 마찬가지로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최근 노조와 사측이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제도 보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C-PLAYER’를 통한 과도한 실적 요구 등의 과정에서 한 해 10여명 이상의 노동자가 자살, 과로사, 돌연사 등으로 사망하자 시민단체와 노조 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에 직면해 최근들어 사실상 ‘C-PLAYER’를 중단한 상태다.

또 금융권에서 최초로 인사성과급제를 도입했던 SC제일은행도 지난 1년새 두 차례의 총파업으로 노사가 최근까지도 갈등을 빚고 있다.

‘C-Player’ 왜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이처럼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C-PLAYER’를 대한항공이 고집하는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경영악화가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해 A380 항공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부채 비율이 600%를 웃돌면서 재무구조약정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세계경제가 침체일로를 달리고 있어 국제화물 물동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갈수록 재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EU에서 부과키로 한 탄소세로 인해 비용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난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 증권사는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700%대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경복궁 인근에 한옥 7성급 호텔을 지으려는 계획도 ‘헛발질’로 끝날 위기에 처했다. 대한항공이 교육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에 이어 올해 초 고법에서도 패소했다. 대한항공이 호텔을 지으려는 위치는 풍문여고, 덕성여중고와 불과 7m, 4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학교보건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이런 잇단 악재들이 조 회장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으며, 부작용 많은 ‘C-PLAYER’ 프로그램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심지어 대한항공측은 최근  ‘C-PLAYER’와 직원자살 사건 등을 보도한 모 일간지 기사를  삭제 조치해 한 인터넷신문이 의문을 제기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은 최근 신년사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조직역량이 필요하다”며 여전히 직원들에게 강도 높은 역량강화를 주문했다. 

한편 대한항공 측에 ‘C-PLAYER’ 도입 배경, 대한항공의 인사문화, A380 항공기 도입 과정 등에 관해 수차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지만 대한항공 측은 취재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