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첫 백혈병 산재 후 15년 동안 아무 일도 안했다”
[이슈초점] 타이어업계 ‘백혈병 산재’ 논란 재점화
2012-01-18 권희진 기자
금호타이어 “개선 중…업계 특성상 ‘유해물질’ 사용 어쩔 수 없어”
노동계 “산업현장 발암물질 심각…산재 신청 대부분 불승인 처분”
노조 “암 발병, 알려진 것보다 많다”
관련 보도에서는 최근 산재 승인을 받은 정씨 외에도 금호타이어에서 암 발병으로 산재승인 신청을 기다리는 노동자 수가 2명으로 전해졌지만 금호타이어노동조합 곡성지부(이하 노조) 관계자는 “암에 걸린 노동자 수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다”고 밝혔다.
금호타이어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것은 정씨가 두 번째로, 최초 산재인정 사례는 1997년 산재 인정을 받고 그해 사망한 오모씨이다.오씨가 산재 인정을 받은 이후 금호타이어 측은 “작업 과정에서 사용되는 벤젠 등 발암성 물질이 함유된 유해물질을 무해물질로 교체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는데 15년 만에 다시 백혈병 산재 인정사례가 나오면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이번 산재 인정과 관련해 금호타이어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안전한 작업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대체 물질 개발 등 계속적인 노력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에 따르면 금호타이어는 오모씨 사망 이후 15년 동안 발암물질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실시한 적이 없다. 금속노조 문길주 노동안전보건실장은 17일 “금호타이어는 발암물질 실태조사 한번 실시한 적이 없다”며, “금호타이어 측은 오씨 사망 후 유해물질을 무해물질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달라진 태도를 볼 수 없었다”고 성토했다. 금호타이어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15년 전 공언했던 ‘유해물질의 무해물질 대체’ 약속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매일일보>의 집요한 답변 요구에도 불구하고 빙빙 말을 돌리면서 끝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그 대신에 “타이어 업계 특성상 제조과정에서 업계 전체가 벤젠과 같은 동일 상품을 사용한다”면서 “특정 업계만 유해물질이 사용된다는 건 잘못된 편견”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타이어업계 전체가 유해물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금호타이어 노조 관계자도 언급한 내용. 하지만 산업일반의 특징이 그렇다고 해서 개별 업체 차원에서 산재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을 변명하기에 15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어 보인다.
“근로복지공단, 직업성 암 인정 너무 인색”
한편 금속노조 문길주 실장은 “개별 사업장에서 발암성 물질을 피부에 묻히게 되는 일은 흔한데 막상 암 진단을 받고 산재신청을 하려면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며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직업성 암 인정율이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밝혔다. 문길주 실장에 따르면 금속노조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근로자 50여명이 암 진단을 받은 사실을 입수하고 2010년~2011년 발암물질 현장 실태 조사를 벌인 적이 있는데, 조사에서 작업 현장 50%에 달하는 발암물질이 검출됐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암환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지난해 4월과 8월, 12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소속 노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암 발병 실태를 조사한 결과 암 때문에 산재 신청을 한 사람이 80명에 달했고, 이중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승인된 사람은 8명이고 9명은 불승인, 나머지 인원들은 아직 심사중이다.이와 관련 금속노조 경남지부 회원 100여명은 17일 오후 근로복지공단 창원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단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산업재해 불승인을 남발하고 있다”고 규탄하기도 했다.이들은 질병 산재 불승인율이 2006년 33.6%에서 2010년 48.5%로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며 공단 측이 산재 조사를 더 객관적이고 현장친화적으로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공단 측이 반복적인 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병을 단순히 퇴행성 질병으로 처리하는데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