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정몽구·박용성 회장 ‘레드카드’
"도덕성 결여"...주총서 이사선임 반대
2009-03-14 권민경 기자
<시민단체, 소액주주 이어 기관까지…기업 전전긍긍>
[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주총시즌이 되면 으레 기업과 시민단체 간 신경전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이나 총수들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의 공격이 더욱 거세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시민단체, 소액주주 뿐 아니라 기관 또한 의결권을 통해 실력행사를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해 기업들은 더욱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지난 12일 국민연금기금 주주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 현대차 주총과 두산인프라코어 주총에서 각각 정몽구 회장과 박용성 회장에 대해 주주·기업가치 훼손을 이유로 등기이사 선임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현대차 지분 4.56%를 보유한 6대 주주,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2.92%를 보유한 4대 주주다.
지분율만 놓고 봤을 땐 실제 반대의결권을 행사하더라도 주총안건 통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재벌 총수의 이사 선임을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기관투자가가 더 이상 주총의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재계의 이목이 쏠려있다.
도덕성 흠집 난 총수 물러나야 목소리
국민연금이 현대차 정몽구 회장 이사 선임에 반대한 것은 ‘도덕성 훼손’ 문제 때문이다.
기관투자가들 의결권 통해 권리 찾기 나서
한편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주총에서 감시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국내 증시의 ‘큰손 중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도덕성에 흠집이 있는 재벌 총수의 경영 참여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주주로서 정당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환영하는 시각도 있다. 국민연금의 행동이 다른 펀드의 의결권 행사나 기업 지배구조 관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경영능력은 무시한 채 도덕성만을 잣대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소버린이나 칼 아이칸 같은 외국인 기업사냥꾼도 아닌 정부산하의 국민연금이 오히려 기업 발목잡기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기업 견제가 갈수록 강화될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과거에는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익을 침해한다고 판단되는 안건의 경우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는 최근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오는 21일 예정된 성지건설 주총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비롯한 측근 인사들을 등기이사 및 사외이사로 추천한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하성펀드는 또 28일 에스에프에이 주총을 앞두고 사외이사 2명, 감사 1명을 추가로 선임할 것을 주주제안하기도 했다. 국내 펀드시장이 커지면서 자산운용사도 반대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알리안츠자산운용은 현대차 추종에서 정 회장의 이사 선임안건에 대해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들이 찬성을 표한 것과 달리 ‘중립’의견을 내 눈길을 끌었다. 알리안츠자산운용은 동국제강 주총에서도 새외이사 재선임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였다. 서울음반 지분 2%를 보유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음반 사업이 서울음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주총에서 서울음반이 음반 제조 및 유통 사업을 서울미디어에 양도키로 한 사업 분할에 반대표를 던질 뜻을 밝혔다.
권민경 기자 <kyoung@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