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소리에 놀라 변기의 물 계속 내렸다”

17세 여고생, 공중화장실서 아기 출산…알고 보니 중학교 선배에 집단 성폭행 당해

2008-03-14     류세나 기자

임신사실, 가족 등 주변에 숨긴 채 8개월간 속앓이만
출산후 의식 잃어 자궁봉합수술, 경찰 “순둥이 같았다”

[매일일보닷컴] 지난 7일 수원시 장안구 수원화성 내 연무대 화장실에서 한 여고생이 남자아이를 출산,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고생 A(17 ・고2)양이 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그러나 <매일일보>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 여고생은 실질적인 피해자였다. 이전까지 성경험이 ‘전무’했던 A양은 지난해 7월, 중학교 선배 2명에 집단 강간을 당했고 그 때의 일로 임신, 출산까지 하게 된 것. 이 사건으로 A양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신분으로 임신을 했다는 오명과 함께 영아살해 혐의로 전과기록까지 짊어지고 살게 됐다.

母와 말다툼 후 집 나선 것이 ‘화근’

경찰에 따르면 A양이 성폭행을 당한 것은 지난해 7월말께, 지금으로부터 약 8개월 전이다. 그날따라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선 A양은 마땅히 갈 곳이 없자 중학교 1년 선배였던 B(18 ・ 자퇴)군에게 연락을 취했다.

A양과 B군, 그리고 B군의 친구 C군 등 3명은 술을 구입해 놀이터에서 마신 후, 취한 A양을 C군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A양은 경찰에서 당시 B군 등을 만나 술을 마신 기억은 있으나 이후 집으로 이동한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다. 말 그대로 ‘만취’ 상태였던 것.A양이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집에 누워 있었고, 희미하게 들리는 B군 등의 대화내용을 통해 C군의 집인 것을 알았을 뿐이다. 그 때였다. A양이 눈 뜬 것을 본 B군은 갑자기 늑대로 돌변해 A양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A양은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다. A양의 발버둥에도 B군은 아랑곳없이 거사(?)를 치렀고, 소리를 내면 옆방에 있는 C군의 부모가 깬다며 조용히 하라고 협박까지 했다. 순진했던 A양은 ‘부모들이 이런 장면을 봐서는 안 된다’ ‘나쁜 짓이다’라는 생각에 더 이상의 저항도 하지 못했다.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모가 깰세라 망을 보며 숨죽이고 있던 C군이 A양의 몸을 ‘취할’ 차례였다. 그렇게 A양은 하룻밤에 두 명의 남자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A양 16세, B군 등은 17세의 나이였다.

“어머니 충격받아 쓰러질까봐…”

그 일이 있은 후 A양은 B군과의 연락을 일체 끊고 지냈다. 일생일대의 기억하기 싫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봉변을 당한만큼 얼굴은 물론이고 목소리조차 듣기 싫었던 것.A양은 당장 다음 달부터 생리가 없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신경이 예민해져 그런 것이겠거니’하고 생각한 것이다. A양이 임신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임신 4달째, 몇 달째 생리가 없던 것을 이상하게 여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국에서 임신테스트기를 구입했던 것.

A양은 임신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왔지만 친구들에게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차마 임신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을 성폭행한 선배들에게조차도 이 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A양의 아버지는 5년 전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자살을 택했다. 이후 어머니와 3살 위 언니와 셋이 살고 있던 A양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밝히면 혹시라도 어머니가 쓰러지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A양의 언니(20)는 계속해서 불러오는 A양의 배를 의심, “임신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A양은 “살이 쪄서 그런 것”이라며 부인했다. 또 A양은 임신한 미혼여성들이 배를 가리기 위해 복대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사례와 달리 복대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원래 작은 덩치가 아니었던 A양은 그저 펑퍼짐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갈 때도 교복치마대신 체육복을 주로 입었을 뿐 특별히 위장(?)을 하진 않았다.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A양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시설 등에 도움을 요청해볼까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생각에 그쳤을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에 산부인과엔 가보지도 못했다. 현행 모자보건법 14조 3항에 따르면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A양은 낙태가 허용된다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 만무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에게 성폭행 사실조차 알리지 못해 성폭행에서 출산에 이르기까지 외롭고 힘든 시간을 혼자 견뎌내야만 했다. 

화장실에서 출산, 그리고 죽음

그렇게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문제의 날이 다가왔다. 지난 3월 7일 오전, 수업을 받고 있던 A양은 갑자기 배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A양은 양호실로 가서 “생리통이 심하니 약을 달라”고 둘러대고 진통제를 받아 복용했다. 약을 먹어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급기야 양호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양수가 터졌다. 임신 8개월에 접어든 때였다. 그러나 A양은 ‘양수’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소변이 나온 것으로 착각,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교 시간만을 기다렸다.오후 5시경, A양은 학교를 나서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배가 너무 아팠던 A양은 집까지 가지 못하고 학교에서 200여m 떨어진 수원화성 내 연무대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A양은 아기가 나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실제로 A양은 경찰에서 “아기가 나오려고 하는 신호인지 몰랐다. 대변이 나오려고 배가 심하게 아팠던 것인 줄로만 알았다”고 진술했다.A양이 경찰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A양은 대변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 좌변기 칸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힘을 준 순간 나와야할 것(?)은 나오지 않고 피가 나오더라는 게 A양의 얘기다.

순간 아이가 나오려는 것을 깨달은 A양은 자신의 신음소리가 조금이라도 외부로 들리지 않도록 하기위해 가지고 있던 MP3의 볼륨을 최대한 키우고 남몰래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 끝에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A양 사건이 단순한 ‘여고생의 출산’ 문제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당황한 A양이 아기가 변기에 그대로 있는 채로 변기의 물을 계속해서 내려 보낸 탓에 아이가 질식사해 영아살해죄가 성립됐기 때문.

시쳇말로 ‘요즘 청소년’들은 확실히 과거의 청소년들보다 성(性)에 일찍 눈을 떴고, 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여고생이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은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 때문에 직접 그 상황에 닥쳤을 경우, 더욱이 A양처럼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해야할 경우엔 상황판단이 잘 서지 않게 마련이다.

특히 A양은 ‘임신을 했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해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아기 울음소리’는 A양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경찰 진술에서 A양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곤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그 소리를 안 들리게 하려고 변기의 물을 계속해서 내린 것 같다”고 진술했다.

사건을 담당한 수원중부경찰서 관계자는 “A양은 요즘 또래답지 않게 성(性)에 대해 잘 모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모르는 ‘순둥이’ 같았다”면서 “이번 일로 A양이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충격의 나날, 정신과 치료까지

이 사건은 수원화성 청소원 H씨(49 ・여)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H씨가 경찰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A양이 화장실로 들어간 지 수분 후 화장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H씨는 여자화장실로 다가가 “안에 무슨 일 있냐. 혹시 그 안에서 아기를 낳은 것 아니냐. 문 좀 열어봐라”고 말했고, 화장실안에 있던 A양은 “아무 일도 아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그러나 계속해서 변기의 물을 내리는 A양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긴 H씨는 칸막이 바닥 틈으로 A양이 있는 곳을 들여다봤고 피범벅이 돼 있는 타일바닥을 발견, 곧바로 119구조대와 경찰에 신고전화를 했다. 경찰에 따르면 H씨와 A양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문을 열어라” “신경 쓰지 말라”며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이 도착한 후에야 화장실 문을 연 A양은 당시 옷과 얼굴 여기저기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으며 아기는 이미 변기 안에서 질식, 숨져 있던 상태였다는 게 경찰측 관계자의 말이다.

숨진 아기는 키 51cm, 몸무게 4kg의 남자아이였다. 보통 10달을 채워 태어나는 신생아들이 40여cm에 3kg정도인 것을 감안, A양의 아기는 팔삭동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량한 상태였다는 게 경찰측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후 A양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조치를 받고, 출산 당시 자궁이 찢어져 자궁 봉합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이와 관련 A양의 가족들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자신들의 마음을 추스르기보다 A양이 받은 가슴 속 상처와 충격을 어떻게 치료해 나갈지에 보다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지난 11일 불구속 입건 된 A양은 경찰조사 후 외삼촌과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수원중부경찰서는 A양을 성폭행한 B군 등 2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강간) 혐의로 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