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소리에 놀라 변기의 물 계속 내렸다”
17세 여고생, 공중화장실서 아기 출산…알고 보니 중학교 선배에 집단 성폭행 당해
임신사실, 가족 등 주변에 숨긴 채 8개월간 속앓이만
출산후 의식 잃어 자궁봉합수술, 경찰 “순둥이 같았다”
[매일일보닷컴] 지난 7일 수원시 장안구 수원화성 내 연무대 화장실에서 한 여고생이 남자아이를 출산,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고생 A(17 ・고2)양이 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그러나 <매일일보>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 여고생은 실질적인 피해자였다. 이전까지 성경험이 ‘전무’했던 A양은 지난해 7월, 중학교 선배 2명에 집단 강간을 당했고 그 때의 일로 임신, 출산까지 하게 된 것. 이 사건으로 A양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신분으로 임신을 했다는 오명과 함께 영아살해 혐의로 전과기록까지 짊어지고 살게 됐다.
母와 말다툼 후 집 나선 것이 ‘화근’
“어머니 충격받아 쓰러질까봐…”
그 일이 있은 후 A양은 B군과의 연락을 일체 끊고 지냈다. 일생일대의 기억하기 싫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봉변을 당한만큼 얼굴은 물론이고 목소리조차 듣기 싫었던 것.A양은 당장 다음 달부터 생리가 없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신경이 예민해져 그런 것이겠거니’하고 생각한 것이다. A양이 임신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임신 4달째, 몇 달째 생리가 없던 것을 이상하게 여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국에서 임신테스트기를 구입했던 것.A양은 임신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왔지만 친구들에게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차마 임신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을 성폭행한 선배들에게조차도 이 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A양의 아버지는 5년 전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자살을 택했다. 이후 어머니와 3살 위 언니와 셋이 살고 있던 A양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밝히면 혹시라도 어머니가 쓰러지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화장실에서 출산, 그리고 죽음
그렇게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문제의 날이 다가왔다. 지난 3월 7일 오전, 수업을 받고 있던 A양은 갑자기 배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A양은 양호실로 가서 “생리통이 심하니 약을 달라”고 둘러대고 진통제를 받아 복용했다. 약을 먹어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급기야 양호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양수가 터졌다. 임신 8개월에 접어든 때였다. 그러나 A양은 ‘양수’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소변이 나온 것으로 착각,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교 시간만을 기다렸다.오후 5시경, A양은 학교를 나서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배가 너무 아팠던 A양은 집까지 가지 못하고 학교에서 200여m 떨어진 수원화성 내 연무대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A양은 아기가 나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실제로 A양은 경찰에서 “아기가 나오려고 하는 신호인지 몰랐다. 대변이 나오려고 배가 심하게 아팠던 것인 줄로만 알았다”고 진술했다.A양이 경찰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A양은 대변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 좌변기 칸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힘을 준 순간 나와야할 것(?)은 나오지 않고 피가 나오더라는 게 A양의 얘기다.순간 아이가 나오려는 것을 깨달은 A양은 자신의 신음소리가 조금이라도 외부로 들리지 않도록 하기위해 가지고 있던 MP3의 볼륨을 최대한 키우고 남몰래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 끝에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A양 사건이 단순한 ‘여고생의 출산’ 문제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당황한 A양이 아기가 변기에 그대로 있는 채로 변기의 물을 계속해서 내려 보낸 탓에 아이가 질식사해 영아살해죄가 성립됐기 때문.
특히 A양은 ‘임신을 했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해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아기 울음소리’는 A양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경찰 진술에서 A양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곤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그 소리를 안 들리게 하려고 변기의 물을 계속해서 내린 것 같다”고 진술했다.
충격의 나날, 정신과 치료까지
이 사건은 수원화성 청소원 H씨(49 ・여)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H씨가 경찰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A양이 화장실로 들어간 지 수분 후 화장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H씨는 여자화장실로 다가가 “안에 무슨 일 있냐. 혹시 그 안에서 아기를 낳은 것 아니냐. 문 좀 열어봐라”고 말했고, 화장실안에 있던 A양은 “아무 일도 아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그러나 계속해서 변기의 물을 내리는 A양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긴 H씨는 칸막이 바닥 틈으로 A양이 있는 곳을 들여다봤고 피범벅이 돼 있는 타일바닥을 발견, 곧바로 119구조대와 경찰에 신고전화를 했다. 경찰에 따르면 H씨와 A양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문을 열어라” “신경 쓰지 말라”며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이 도착한 후에야 화장실 문을 연 A양은 당시 옷과 얼굴 여기저기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으며 아기는 이미 변기 안에서 질식, 숨져 있던 상태였다는 게 경찰측 관계자의 말이다.숨진 아기는 키 51cm, 몸무게 4kg의 남자아이였다. 보통 10달을 채워 태어나는 신생아들이 40여cm에 3kg정도인 것을 감안, A양의 아기는 팔삭동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량한 상태였다는 게 경찰측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후 A양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조치를 받고, 출산 당시 자궁이 찢어져 자궁 봉합수술을 받고 퇴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