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기금 등 민간자본을 유치해 사회간접자본(SOC)이나 공공시설을 짓는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이에 대한 효율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 나라살림이 빠듯하기 때문에 일단 민간 돈이라도 끌어들여 경기부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데다가 궁극적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민간투자사업은 수익성이 높지 않아 정부가 재정으로 수익을 메워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연·기금 유치 방안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는 만큼 결국 국민 부담만 높아지는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정부의 내년도 경제성장률 목표는 5%선. 그러나 현재로서는 4% 안팎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목표달성을 위해선 7~8조원의 돈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하지만 이미 내년에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6조8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키로 한 것이 발목을 잡고 있어 더 이상 정부 재정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이에 정부는 연·기금 등 여유자금이 많은 민간부문으로부터 돈을 끌어들여 도로 철도 항만 등 SOC와 양로원 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짓는 방안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건설경기를 살리면서 동시에 내수 진작으로 경기를 부양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수 있기 때문이다.정부는 이러한 사업이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민자유치의 대부분은 연·기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정부는 민자 7~8조원에다 각종 건설 관련 사업 예산 3조원을 더해 10조원 안팎의 규모로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이와 관련해 정부는 SOC사업부문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민자고속도로 건설 및 확·포장 계획 조기시행 등 도로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릴 것으로 보인다.건교부에 따르면 민간업체들이 제안해 놓은 민자고속도로 14개 사업중 내년에 당초 2~3개 사업만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5~6개로 늘릴 방침이다.14개 사업에는 제2경인연결고속도로(사업비 1조1천750억원), 화도~양평고속도로(7천238억원), 서울북부고속도로(1조8천350억원), 수도권서부고속도로(1조1천319억원), 제2경부고속도로(1조6천207억원), 영천~상주고속도로(2조3천366억원) 등이 포함돼 있다.건교부는 사업타당성과 조건 등을 심사해 대상사업을 내년 초에 선정할 예정인데 사업규모는 약 6~7조원에서 최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건교부는 이와 함께 정부가 한국도로공사 등을 통해 추진중인 대형 고속도로 건설에도 연·기금 등 민간자본을 대거 투입할 계획이다. 대신 여기에 잡혀 있던 예산은 다른 쪽으로 돌린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2006년 이후로 잡혀있던 도로 확·포장공사 등 중·소규모 사업들이 내년에 대거 앞당겨 시행될 전망이다.
전문가, 정부 빚 늘려 경기부양하는 셈
정책적 효과 극대화 무리수는 ‘재정부담’
건교부는 이와 함께 중형 장기임대주택 건설에도 연·기금이나 부동산투자회사(리츠)를 적극 끌어들이기로 했다.건교부는 현재 임대기간이 10년 이상인 중형 장기임대주택(85~149㎡)의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85㎡ 초과 분양주택용지의 30% 이상을 중형 장기임대주택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업체에 청약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있지만 민간업체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건교부는 중형 장기임대주택 건설에 연·기금과 리츠를 활용키로 하고 관련 대책을 검토중이다. 이 가운데는 연·기금과 리츠가 건설업체와 공동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사업을 추진하거나, 연·기금이나 리츠가 단독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건설업체는 시공만 맡는 등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기금과 리츠를 중형 장기임대주택 사업에 끌어들일 경우 각종 세금감면 혜택을 줘야 하는 등의 난제가 있기 때문에 간단치는 않을 전망이다.어쨌든 민자 유치를 위한 정부의 방침은 지금까지의 민자 사업과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등 관련 법령은 정부가 민자사업에 대해 예상 수입의 최고 90%까지 수익을 보장해주도록 하고 있다. 도로나 터널 등을 운영하는 민간사업자의 수입이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정부가 국민 세금을 거둬 메워 주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의 경우만 보더라도 실제 교통량이 예상치의 41%에 불과해 작년 한해에만 정부가 1천50억원이나 보전해줬다.
문제는 민간사업자들이 예상 교통량 등을 부풀리는 경우가 많지만 정부가 타당성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보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감사원이 올해 1월 현재 추진 중인 142개 민간투자사업의 운용 전반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서수원 오산 평택 고속도로의 경우 민간사업자는 하루 교통량을 4만2348대(2007년 기준)로 전망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그 절반 수준인 2만3346대(2008년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했다.정부가 현재와 유사한 형태로 ‘한국판 뉴딜 정책’을 시행할 경우 이 같은 적정 수익률 보장 문제는 더욱 큰 논란거리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정부가 정책적 효과 극대화를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벌일 경우 수익성이 낮은 사업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재정 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전문가들은 연·기금을 내수 진작 수단으로 쓰는 것이 자칫 비효율적인 투자로 연결될 경우 정부가 직접 돈을 쓰는 것보다 중장기적으로 재정 부담이 더 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정부 빚 늘려 경기 부양하는 셈이라는 지적이다.국회 예산정책처도 정부 여당의 정책방향과는 달리 갈수록 약화되는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려면 재정확대보다 감세정책이 유리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를 통해 재정확대가 감세보다 소득을 늘리고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크지만 실업률을 줄이고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높이는데는 감세가 유리하다고 밝혔다.보고서에 따르면 1982년부터 올 2/4분기까지 통계청의 도시근로자 가계수지 자료를 토대로 정부지출 승수(정부지출이 1단위 증가할 때 소득증가분)와 조세승수를 계산한 결과 각각 3.75와 -2.75로 집계됐다.이는 정부지출을 1조원 늘릴 경우 국민소득이 3조7천500억원 증가하고, 조세를 1조원 감면할 경우 소득이 2조7천500억원 늘어나므로 재정확대가 감세보다 국민소득을 늘리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또 산업연관표의 부가가칟취업 유발계수를 이용해 정책효과를 분석한 결과 성장률을 높이는데는 재정확대가 감세보다 효과가 컸다.재정지출을 1조원 확대하면 성장률은 0.15%포인트 상승했으나 소득세를 1조원 내리면 성장률은 0.08%포인트, 법인세를 1조원 내리면 0.013%포인트 오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반면 실업률 감소효과는 재정확대보다 소득세 인하가 유리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재정지출을 1조원 늘릴 경우 실업률은 0.06%포인트 감소하고 1만3천28명의 일자리를 만들지만 소득세를 1조원 내리면 실업률이 0.08%포인트 내려가고 1만7천751명의 고용이 창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성장잠재력 측면에서도 법인세를 1조원 인하할 때 실업률이 0.01%포인트 하락하고 고용이 2천322명 늘어나는데 그치지만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해 재정확대보다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을 높이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보고서는 또 재정확대는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면 그 효과가 감소한다고 지적했다.보고서는 특히 최근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외부자본의 차입보다는 자기자본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는 경향을 감안할 때 향후 법인세 인하가 설비투자를 촉진하는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며 이는 경제 전반의 성장잠재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따라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는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확충이라는 목표보다는 단기적인 경기부양 목표에 보다 적합한 만큼 장기적인 경제안정화를 위해서는 재정지출 확대보다는 감세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국회예산처 “성장잠재력 높이려면 감세해야”
재정지출은 단기부양 해법…적절한 조합 필요
보고서는 이어 현재 경제상태를 경기순환상 수축기이면서 잠재성장률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경기부양과 함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수단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러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정부는 연·기금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 주면 연·기금으로서는 수익률이 높아지고 정부는 꼭 해야 할 사업을 민간자본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안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민간투자 사업에 대해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점 때문에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자칫 비생산적인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을 압박해 국민 부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최근 SOC민간투자제도 운용 실태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이러한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정부가 민자 도로에 대해 지난 한 해 동안 지원한 금액은 천안~논산고속도로 494억원,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1050억원, 광주 제2순환로 68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개통된 서울 우면산터널에 대해서는 올해 251억원 정도 지원이 필요하다. 1월 현재 추진 중인 17개 민자 도로터널사업의 경우는 정부가 2001년부터 2038년까지 ‘최소 운영수입 보장금’으로 모두 12조5970억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감사원은 예상했다.SOC운영에 따른 손해를 정부가 재정에서 지원하도록 돼 있는 계약에 따라 거액의 국민 세금이 지원되고 있는 것이다.더욱이 정부 방침은 민간투자 대상에 SOC뿐만 아니라 노인요양시설, 보건의료시설, 학교시설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까지 포함하고 있어 재정 압박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가 추진 중인 연·기금을 통한 SOC 투자는 언뜻 보면 정부와 연·기금에 모두 좋은 방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급증하고 있는 국가부채 문제를 감추기 위해 재원조달 방식만 바꾼 것이라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정부가 정 민자유치를 추진하겠다면 수익률이 높은 ‘투자성 정부지출’에 국한해서 제한적으로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사업의 타당성과 경제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