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의 백수탈출] 일본 '8050' 문제 남의 나라 일 아니다
2020-04-25 송병형 기자
1990년대 초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일본의 취업 적령기 청년들은 이전까지 상상도 못 했던 구직난과 마주해야 했다. 버블경제 붕괴 직전 80%를 웃돌았던 대졸 취업률은 2000년대 들어 50%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실업의 공포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정직원 입사’에 실패한 많은 청년들은 졸업과 함께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실업자로 전락했다. 또한 상당수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라고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가 돼 스스로 세상과 결별했다. 1970년대생인 빙하기 청년들에게는 오랜 기간 재기의 봄날도 오지 않았다.일본 정부는 1993~2004년 사이에 학교를 졸업한 약 1700만명 중 400만명 정도를 지금까지도 비정규직이나 실업 상태에 있는 빙하기의 피해자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우리 돈 몇 십만 원 수준의 국민연금 외에는 노후 대책도 거의 없다.앞으로 3년간의 집중 지원을 통해 빙하기 세대들을 정규직 사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 목표다. 그러나 이미 실패와 좌절의 긴 터널을 지나 50대를 눈앞에 둔 이들을 상대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높지 않다. 먼저 이들을 맞이할 만한 ‘번듯한 직장’이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당사자들이 어지간해서는 일할 의욕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욱 가슴 아픈고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인생이다. 설사 정규직이 돼 출근을 한다 해도 마이너리티로 흘려보낸 20대, 30대는 그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지금 일본은 50대 중년이 된 이들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80세의 노부모가 50대 자식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의미의 ‘8050 문제’다. 경제적 자립이 힘든 히키코모리가 중년이 되면서 연금으로 생활하는 70~80세 노부모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등 가족 단위의 문제로 비화하는 것이다. 특히 고령의 노인이 된 부모들은 체면상 주변에 이런 고민을 말할 수 없어 가족 전체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11월 일본 요코하마 자택에서 76세 여성이 사망했을 때 그의 장남(49)은 집안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히키코모리였다. 부엌에서 쓰러진 어머니를 안방 이불 위로 옮겼지만 사후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가족 이외의 사람과 소통이 무서워 신고하지 못한 것. 결국 그는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됐다. 중년 히키코모리 문제의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우리나라의 청년 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전혀 개선 기미가 없다. 체감(확장)실업률이 25%를 넘어서 역대 최악으로 나왔다. 일할 의욕이 있는 15~29세 인구의 4분의1 이상이 제대로 일자리를 못 찾았다는 거다. 반대로 일본은 전후 가장 긴 경기확장 국면 속에 지난해 대졸자들이 통계 작성 이후 20여년 만에 가장 높은 98.0%의 취업률을 기록했다.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일본처럼 고용 사정이 호전 되는 좋은 때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언제일지 모르는 ‘좋은 때’가 지금 취업을 못 해 고통 받는 청년들의 몫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불행한 세대의 고통은 그 당사자들이 계속 껴안고 갈 수 밖에 없다.지금의 청년들이 시대를 잘못 만난 희생자라고 비관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청년 실업 해결을 위해 우리나라의 정책과 행정적 모든 자원을 투여해 지금 사회에 나서는 청년들의 불행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느 덧 중년으로 접어든 일본의 빙하기 세대와 같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강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간절하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 정책과 행정이 아니라 내 자녀, 내 동생을 생각하는 진정성 있는 자세를 정책 당국자들에게 간절히 호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