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손배소 청구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

[인터뷰] 가격 담합 삼성·LG 소비자 배상 나선 ‘녹소연’ 이덕승 상임대표

2012-01-27     변주리 기자

[매일일보 변주리 기자] 한 시민단체가 제품가격 담합 사실이 적발되고도 과징금의 대부분을 면제받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이하 녹소연)는 지난 16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전제품 가격담합으로 소비자들에게 입힌 실질적인 손해에 대해 집단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과는 별도로 피해의 직접 당사자인 소비자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25일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녹소연 사무실에서 만난 이덕승 녹소연 상임대표는 이번 집단소송의 의미를 “권리 위에 낮잠 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률 격언으로 대신했다. 

- 소비자들이 기업의 가격 담합에 대해 피해 보상을 요구한 사례는 지난 2010년 LPG 담합 소송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 그동안 대기업의 횡포로 소비자가 피해를 본 사례가 비일비재하지만 문제는 일일이 소송을 제기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정보는 기업이 갖고 있는데 기업은 꼼짝도 안하고 방어만 한다. 일사분란하게 조직된 기업을 상대로 몇 푼 받자고 소송을 제기할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나.

여러 번 시도도 했으나 소송 진행이 잘 안됐다. 기업들이 담합을 했다고 자진 신고를 하고 공정위 조사로 담합을 밝혀내 소비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것이 확실한데도 피해를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담합사실이 적발된 기업들은 과징금을 물지만 정작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다 익은 감도 못 따먹는 게 현실이다.

- 녹소연은 이번 집단소송에서 승소를 하면 받은 배상액의 10%를 모아 소비자 공익소송기금으로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비용으로 인해 소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 민사 배상은 피해를 본 사람이 구체적으로 얼마를 피해 봤는지 증거를 대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10년 밝혀진 LPG 담합 건으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할 경우 기업들이 담합을 했던 기간 동안 소비자가 얼마나 LPG를 샀는지 개별적으로 피해의 몫을 다 따져야 한다. 손해를 입힌 사실이 명백해도 그 피해액이 50원인지 100원인지 입증하지 못하면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해액 산정과 같은 절차는 전문가를 고용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그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어 사실상 민사 배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기금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 ‘집단소송제(class action)’를 도입해야 한다. 담합으로 인한 피해와 같이 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경우, 몇몇 사람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를 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보상받게 되는 제도다. 소비자 피해는 불특정 다수에게 돌아가지만 이들이 전부 참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집단소송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손해 배상과 관련해 피해를 줬느냐 안줬느냐에 따라 그 여부를 판단한다. 몇 개를 생산해 얼마나 팔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기업에게 전부 다 있다. 이 정보에 따라 법원은 일정 금액의 징벌적 배상을 기업에 요구, 피해를 본 소비자들에게 나누어준다.

- 이번에 처음으로 공정위가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을 지원하기로 했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을 어떻게 보고 있나.

▲ 그간 사회적으로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한 많은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몇 해 전 정부는 소비자원에 집단분쟁조정제도를 뒀다. ‘꿩 대신 닭’이라고 소송이 어려우니 대신 정부가 조정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끌어오다 올해 초 소비자들이 소송을 하면 최소의 비용을 지원해주겠다며 소송 지원금 1억원을 예산으로 확보했다. 정부가 ‘소비자들을 외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미로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1년 예산을 1억원으로 책정한 것은 아쉽다. 피해액을 산정하는 데에만 몇 천만원 들어가는 등 소송 한 번 하는데 1억원이라는 돈은 돈도 아니다. 녹소연이 추진하고 있는 집단소송에 공정위가 몇 백만원이나 지원해 줄지 모르겠다.

- 정부가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정부도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엄청나게 반발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또 우리나라 사법체계에 맞지 않아 도입되기 어렵다고도 말한다. 판례나 관습을 선호하는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 법체계는 성문법을 위주로 하고 있다. 무수한 경우의 수가 있는 소비자 분쟁 같은 복잡한 사건을 법으로 일일이 규정하기 어렵다는 의미인 것 같다.

- 공정위가 기업들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개혁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는가.

▲ 다른 정부부처와 비교해봤을 때 과거에 비해 공정위의 힘이 많이 세졌다. 최근 들어 독과점에 의한 시장의 불공정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시장이 워낙 크고 기업이 세기 때문에 정부가 모든 것을 다하기는 어렵다.

소비자와 기업 간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소비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외국에 비해 권리의식이 많이 약하다. 총체적으로 시장의 규모에 비하면 소비자의 힘이 엄청 약하다.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 리니언시 제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 정부로서는 행정적 효율성 측면에서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과징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니언시 제도를 없애 과징금을 부담하더라도 담합으로 이익을 얻는 측면이 더 커 기업들은 담합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비자 배상이 이루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배상금을 물어줘야 해 하나의 기업이 쓰러질 정도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제도가 있어도 현실적으로 배상이 불가능 해 기업들이 소비자 배상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담합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 담합을 주도해 국내에서 비싼 값에 제품을 판매한 대기업들이 미국 등 해외에서는 싸게 판매하는 행위도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다.

▲ 경제개발 시대 때 생긴 관행들이다. 예전에는 기업들을 키우기 위해 국내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봤다. 정부는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 분배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양극화만 심화됐다. 이제는 기업의 경쟁력보다 소비자의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 삼성이 25일 담합과의 결별선언을 하며 내달 말까지 종합적인 근절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 당연한 얘기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제 글로벌 기업이 됐다. 그동안 수많은 담합을 해온 삼성이 그 관행을 외국에 나가서 그대로 저질러 얼마나 두들겨 맞았나. 세계는 불공정한 거래를 용납하지 않는다.

야단맞았을 때 잘못했다 고치겠다고 하지만 견제의 힘이 있지 않는 한 시간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결국엔 소비자의 힘이 커져야 하는 수밖에 없다.

- 집단소송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나.

▲ 불매운동으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는 있지만, 기업이 무너진 적은 없다.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는 엄밀히 말하면 적대 관계가 아닌 카운터파트너의 관계다. 시장경제이론을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면 승수효과가 나타난다.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정과 타협을 위한 법제도가 잘 정비돼 있어야 한다.

- 이번 집단소송도 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녹소연의 각오는.

▲ ‘각오’라기보다 ‘존심’이다. 우리는 일종의 소비자 단체로서 최소한 소비자의 자존심을 찾자 의미로 집단소송을 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자진신고를 하고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만큼 피해가 명백하게 드러났는데, 소비자가 가만히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권리 위에 낮잠 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률 격언이 있듯 승패의 차원을 떠나 소비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