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 “노사협상 없는 성과급제 인정 못해” 社 “노조가 대화에 응하지 않아”
파업 62일째 갈등 장기화…알리안츠 파업 결국 ‘대량해고’로 마무리되나
[매일일보닷컴] 지난달 24일, 여의도 알리안츠 생명 본사 앞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던 해당 기업 노조 조합원들의 눈에 ‘눈물 고드름’이 맺혔다. 3월이었지만 갑자기 불어 닥친 꽃샘추위는 찬 바닥에 앉아 ‘투쟁’을 외치고 있는 이들을 오들오들 떨게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 것은 추위가 아닌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 간부 4명과 지난 2월 노조활동을 벌이다 해고된 지점장 5명 등 조합원 9명의 ‘삭발식’ 때문이었다. 이들의 삭발과정을 바라보던 1천여명의 조합원들의 눈은 남녀구분 없이모주 토끼눈이 돼 있었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조합원도 보였고, 여성조합원들은 서로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조창립 47년만의 첫 파업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전까지 자신들이 사측을 상대로 투쟁은 물론, 삭발까지 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날 흘린 이들의 눈물은 찬 바닥에 앉아 투쟁가를 부르고, 밤이면 지하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자신에 대한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또 자부심을 갖고 힘써 일해오던 회사에 대한 원망의 눈물이었다. 이날로 알리안츠 생명 노조의 파업투쟁은 62일째였다.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알리안츠 생명은 지난 1999년 업계 4위였던 제일생명을 인수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이후 두 차례의 구조조정과 정규직원 2천7백여명의 40%인 1천여명의 감원, 신인사제도 도입 등으로 노사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나 파업투쟁의 불씨가 된 사건은 지난 1월 21일 회사 측이 갑작스레 모든 사원들에 대해 성과급제를 시행하겠다고 통보, 이에 노조는 이틀 뒤인 23일 파업에 돌입했다.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해당기업 노조 장기파업은 보험업계에서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게다가 일반사원 뿐만아니라 지점장의 60%도 파업에 참여해 회사 측은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지점장들에 대해 최고 해고에 해당하는 중징계결정을 내린 상태라 노사간 대립은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4일 여성조합원으로서 유일하게 삭발에 동참한 김서영 여성부위원장은 긴 생머리를 까까머리로 깎으면서도, 또 떨리는 입술을 이빨로 앙다물면서 “오늘 내가 머리를 깎음으로써 조합원들이 하나로 단결될 수 있다면 머리카락쯤은 얼마든지 잘라낼 수 있다”고 말했다.여자에게 머리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남자 조합원들보다 삭발에 대한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김 부위원장은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며 “노조의 정당한 주장을 관철시키고 승리하는 그 날을 위해 계속해서 싸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어 “남편에게는 오늘 머리를 밀것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했는데 시어머니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에게는 미처 말을 하지 못했다. 내 머리를 보면 충격을 받을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 준다. 내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할 것 같다”며 눈물 맺힌 미소를 지어보였다.◇ 노사 양측 견해차 “달라도 너무 달라”= 알리안츠 생명 노조에 따르면, 노사는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양측이 수용 가능한 성과급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알리안츠 생명 노조 최현우 부위원장은 “노조는 합의서에 따라 성과급제 논의를 위한 태스크포스팀 구성에서 컨설팅 업체 선정 등까지 철저하게 합의 내용을 지키려 했다”면서 “그러나 회사는 노조가 제시한 성과급제 로드맵을 시간과 비용문제로 이유로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또 “2006년 8월 직원들을 상대로 성과급제 설명회를 가졌으나 직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자 지난해 12월 20일에는 노조를 배제한 채 관리자를 대상으로 수정 성과급제를 전 직원에게 공지했다”면서 “이후 철저하게 직원의 수용성과 노조의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지난 1월 21일 일장적인 성과급제를 강제 실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측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사측이 노조와의 협상을 위해 대화를 요청했지만 노조가 번번이 응하지 않았다는 것. 이에 회사 측은 노조가 단체협약상의 합의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판단, 올 1월 성과급제를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리안츠 생명 한 관계자는 “우리회사 노사는 경쟁력 향상을 위해 2005년 9월과 2006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성과급제 도입에 합의했다. 하지만 노조가 대화조차 응하지 않아 지난해 성과급제 도입건은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임금인상 역시 지연됐다”면서 “이에 회사는 직원들로부터 의견수립 및 적법성에 관한 법률자문 절차를 거쳐 지난 1월 전 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고 임금인상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파업은 쟁의행위의 목적과 절차 측면에서 정당성이 결여됐다”면서 “노조는 관련법과 단체협약 상 관리자급에 있어 조합 가입자격이 없는 지점장들을 조합에 가입시킨 후 파업에 참가시키는 등의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파업의 쟁점 ‘성과급제’는 무엇= 그렇다면 알리안츠 노조 파업의 불씨를 당긴 ‘성과급제’는 어떤 내용일까. 회사측이 제시한 성과급제는 전 직원을 실적에 따라 5등급(S ‧ A ‧ B ‧ C ‧ D)으로 평가해 연봉을 차등해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B등급을 중간기준으로 최상위 S등급은 전체 직원의 5%, 상위 A등급은 20%, 하위 C등급은 10%, 최하위 D등급은 5%의 비율이다. 중간 등급인 B등급 직원에게는 노사가 합의한 임금인상률을 그대로 적용하되 하위 등급인 C, D는 이보다 적게 인상해주고 S, A는 더 많이 올려주겠다는 것이다.노조측은 이 같은 성과급제에 대해 “인센티브를 차등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별 등급에 따라 연봉을 차등하는 것은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성과창출보다는 대부분 구조조정용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반대이유를 밝혔다. 노조는 현행 성과급제를 즉각 철회하고 대신 노사 합의를 통해 누구나 임금인상률만큼은 보장받으면서 성과만큼 추가로 받는 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반면 회사측의 입장은 다르다. 회사축 한 관계자는 “최하위 D등급을 받은 사람도 지난해에 비해 4.2% 임금이 인상됐으며 평균인 B등급은 7% 인상됐다”면서 “노조가 겉으로만 성과급제 도입에 찬성할 뿐 속내는 그 반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