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공사, 토양정화 사업에 ‘이상한’ 입찰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중소기업 불만 고조

2012-01-30     변주리 기자

[매일일보 변주리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발주하는 토양정화 사업의 낙찰자 선정 기준에 대한 중소업체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중소토양정화업체들로 구성된 한국토양정화업협동조합(이하 한토협)은 “토양정화 사업은 그 역사가 길지 않은데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특정 소수 업체만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토협은 또 “최근 ‘상생’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국가 기관인 LH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며 “LH의 까다로운 낙찰자 선정 기준은 ‘전형적인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라고 강조했다.

조그만 사업에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 적용

한토협은 최근 LH가 발주한 ‘남양주별내지구 오염토양정화용역’과 관련, 지난 5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LH측에 공문을 보냈다.

LH가 업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입찰 기준을 계속해서 적용해 특정 컨소시엄에게 유리하므로 이를 시정해 달라는 게 공문의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조합에게 돌아온 LH측의 답변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 기준”으로 “입찰 집행의 이행절차와 기준 및 근거 등에 대한 자료는 관련법에 의거,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조합측은 LH가 지난해 8월 발주한 ‘김포한강신도시 토양오염정화용역’ 사업자 선정 기준과 관련해서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당시 조합측은 그간 토양정화 사업의 발주를 주로 대행해 온 한국환경공단과 한국농어촌공사와의 선정기준을 비교하며, “토양정화에 관해 전문기관이라 할 수 있는 이들 기관보다 무리한 조건을 내세우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등록된 입찰공고에 따르면 LH는 김포 용역 사업자 선정 과정에 PQ심사(Pre-Qualification·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를 적용했다.

PQ심사제는 대형사업(공사예정금액 100억원 이상)의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기술능력, 시공경험, 경영 상태와 신인도 등 수행능력을 사전에 평가하여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는 제도이지만, 42억원 규모의 김포 용역에도 이 제도를 적용한 것이다.

반면, 지난해 12월 100억원 규모의 ‘의정부 저유소 환경오염 정화 사업’을 발주한 환경공단은 기술평가(80%)와 가격평가(20%)를 종합평가 해 고득점자 순으로 가격을 협상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을 사업자 선정 방법으로 택해 입찰 참여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또한 환경공단은 기술평가(80점 만점) 과정 중 사업수행능력(24점) 부분에서 기술능력, 시공경험, 경영 상태와 신인도 등을 평가했지만, 중소기업 참여확대 방안 등이 포함된 기술제안(56점) 부분의 배점에 비해 훨씬 낮은 비중을 부여했다.

조합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규모 건설공사와 같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기술력이 취약한 기업의 무분별한 진입을 막기 위해 PQ심사를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단순 용역에 불과한 반출처리사업에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업계 실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적용”이라고 꼬집었다.

특정업체에 수주 몰리는 이상한(?) 선정기준

LH와 마찬가지로 PQ심사제를 적용한 농어촌공사의 ‘도하단 토양정화사업(2011년 2월 발주·공사예정금액 55억원)’과 비교해 봐도 수행능력 평가기준은 LH의 김포 용역이 훨씬 엄격했다.

참여기술자의 실적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농어촌공사는 용역 금액 5천만원 이상의 실적부터 인정하고 있으나 LH는 1억원 이상의 실적만을 인정했다.

유사용역 수행실적과 관련해선 농어촌공사와 LH 모두 최근 5년간 시행한 사업 중 준공금액 3억원 이상(30건/200억원 만점)을 요구해 평가기준은 같았지만, 이에 대해 각 공사가 부여하는 점수는 큰 차이를 보였다.

농어촌공사는 ‘컨소시엄 구성업체간 업무중첩도’와 ‘반입처리장 유무’ 등 평가 항목을 좀 더 세분화해 중소업체들이 보유하기 힘든 ‘유사용역 수행실적’의 점수를 15점 만점으로 배점한 반면, LH는 2배 높은 30점을 배점한 것이다(표 참조).

조합 관계자는 “우리나라 토양정화 시장은 10여년정도 밖에 되지 않은 미숙한 분야”라며 “최근 5년간 3억원 이상 200억원의 실적을 갖춘 업체는 고작해야 수십 개 업체에 불과한데 이런 기준에 높은 점수를 적용하면 몇 개 업체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비교 우위의 사업실적을 갖고 있는 소수 몇몇 업체끼리 유착과도 같은 동맹을 맺어 매 입찰마다 하나의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수주를 독식하고 있다”며 LH의 입찰 관행에 의혹을 제기했다.

100억원 이상의 대형공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에 사업이 낙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해 실적을 쌓은 중견업체들이 다른 중소업체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영업(로비)을 해 선정기준이 까다로워졌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 LH 등 국가기관이 발주한 토양정화 사업에 낙찰된 컨소시엄의 구성을 보면, 몇 개 업체들이 해당 컨소시엄에 계속해서 참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조합측은 LH측에 김포 용역 사업자 선정 기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공문을 보낼 당시에도 “지금의 방식을 강행할 경우 선정될 사업자는 이미 예정돼 있다”고 주장했으며, 결국 조합이 예측한 컨소시엄이 낙찰됐다.

하지만 LH는 최근에 발주한 남양주 용역 사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선정 기준을 제시했으며, 현재 최종 낙찰자 선정을 위한 적격심사 과정에 들어갔다.

조합 관계자는 “현재 남양주 용역 사업 입찰에 참여한 컨소시엄은 단 2개밖에 되지 않는다”며 “나머지 한 개의 컨소시엄은 유찰(낙찰이 결정되지 아니하고 무효로 돌아가는 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세운 들러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용역’아닌 ‘공사’” 고집하는 LH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토양정화 사업이 오래된 사업이 아닌 만큼 내부 기준이 명쾌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 편의를 제공하려 한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특히 LH측은 “토양정화업을 ‘용역’이 아닌 ‘공사’로 간주한 LH의 입찰조건이 농어촌공사나 환경공사에 비해 관련법에 더 가까운 해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농어촌공사나 환경공사가 참여기술자의 자격을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따라 적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LH는 ‘건설기술관리법’에 따르고 있는데 이는 토양정화업을 규정하고 있는 토양환경보전법에 더 맞는 해석이라는 얘기다.

현행 토양환경보전법은 토양정화를 위해 도급받은 사업을 ‘공사’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용역’은 ‘건설(공사)’에 관한 조사·설계·감리·사업관리·유지관리 등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하지만 조합측은 “일반적으로 ‘건설’은 시설물이나 구조물이 눈에 보이는 것이고, ‘용역’은 토목·건축과 관련한 기술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본다”며 “토양정화업은 건설이 아닌데 남의 업종에 대한 자격을 갖추라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공사’와 ‘용역’이라는 단어를 엄격히 구분해 사용하는 조달청 입찰공고에서 LH 스스로 토양정화 사업을 ‘용역’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은 LH측의 주장에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건설기술관리법 시행령은 건설기술자의 기술등급 및 인정 범위를 국가기술자격을 갖춘 기술자에 한정하고 있으며, 엔지니어링산업 진흥법 시행령은 엔지니어링 기술자를 국가기술자격자뿐만 아니라 학력 및 경력자까지 인정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연합 신영철 국책사업감시단장은 “발주기관이 재량권을 이용해 주로 장난을 치는 것이 실적기준과 기술자 자격을 까다롭게 하는 것”이라며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다른 기관에 비해 선정기준을 까다롭게 하면서)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커넥션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LH측 관계자는 “선정 기준을 세울 때 내부 사례 조사에 의지하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일부 부실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며 “앞으로는 사례전파를 확실히 해 개선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