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천하’로 끝난 한 여중생의 ‘사랑(?)의 불장난’

채팅으로 만난 20대男, “내가 강남에 집이 두 채인데…” 현혹 후 6일간 ‘동침’

2008-04-04     류세나 기자

‘선물’ 받으러 안산에서 안동까지…20대男 “같이 있자”며 붙잡아
 ‘부자’라더니 여관 ∙ PC방 등 배회…철없는 10대, 그래도 ‘희희낙락’

[매일일보닷컴] “우리 딸애가 없어졌어요.”

지난달 23일 오후 2시경 경기도 안산시 한 지구대로 상기된 얼굴의 부부 한 쌍이 뛰어 들어왔다. 전날 집을 나선 중학생 딸이 이날 정오가 지나도록 귀가 하지 않았다는 것. 그 부부에 따르면 자신의 딸은 부모에게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여태까지 사고 한번 친 적이 없는 ‘착한 딸’이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의 실종신고 후 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5일 만에 ‘사라진’ 딸의 행적을 찾아냈고, 경찰조사결과 이들 딸의 ‘행적묘연’은 가출도, 납치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지난 6일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난달 23일 A양(15∙경기도 안산시) 부모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A양의 거주지인 경기도 안산 일대 수색에 들어갔다. 수사 끝에 A양이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북 안동시에 머무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안산단원경찰서 형사들은 A양을 찾기 위해 안동으로 직접 출동했다.

그곳에 정말 A양이 있었다. A양이 발견된 곳은 안동시내의 한 PC방. 경찰에 따르면 발견당시 A양은 PC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경찰에 의해 밝혀진 ‘A양 실종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올 3월초 한 채팅사이트를 통해 B씨(26∙무직)를 알게 된 A양. 이후 A양은 B씨와 휴대폰 번호, 메신저 주소 등을 교환하고 약 한달 간 연락을 주고받았다. A양이 B씨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안동에 살고 있

는 26살의 부잣집 외동아들’이라는 점.
A양이 경찰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B씨는 A양에게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안동이지만 강남에 집 두 채를 가지고 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는 1억원 상당의 승용차”라며 자신이 ‘부자’임을 강조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경찰조사결과 밝혀진 B씨의 실상은 그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1년 365일도 모자라 465일 밤낮을 열심히 벌어도 시원찮을 판”이라는 게 담당형사의 말.경찰에 따르면 B씨의 부모는 10년 전 이혼해 B씨는 친할머니와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현재 B씨의 할머니는 노환으로 몸져누워 있고, 아버지마저도 지병 때문에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상태. 그래도 B씨의 아버지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의 형이 운영하는 포장마차 일을 도와가며 생계를 꾸려왔다.그러나 B씨는 그런 아버지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해 가족들을 돌보려는 노력은커녕 이따금씩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급을 받아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등 가족에게 애착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 같은 ‘진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A양은 B씨의 ‘부자’발언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어린 A양에게는 자신을 ‘강남부자’라고 말하는 B씨가 ‘백마 탄 왕자님’ 쯤으로 보였고, 그렇게 A양은 점점 B씨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부모님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즐거워~’

약 한달 간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두 사람은 A양의 놀토(‘노는 토요일’의 줄인 말) 휴교일을 이용해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날이 바로 A양이 사라졌던 사건발생일.A양은 부모님에게 “친구들과 함께 서울의 만화축제를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오전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곤 B씨가 있는 안동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와 관련 A양은 경찰에서 “오빠가 화이트데이 선물로 휴대폰과 옷을 사주겠다고 했다”면서 “기차를 타고 안동역까지 가면 오빠가 마중 나와 있겠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A양은 당초 안동에 오랫동안 머무를 생각이 아니었다. 집에서 짐을 챙겨 나오거나 하지도 않았다. 단순히 ‘오빠’를 만나고, ‘선물’을 받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것. 22일 오후 3시경, 드디어 안동도착. 꿈에 그리던(?) 오빠가 A양을 마중 나와 있었다. 그러나 ‘부자’ 오빠의 손에는 A양을 위한 선물이 들려 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 선물을 사러갈 형편이 아니었다”고 둘러댄 B씨는 A양과 간단한 식사를 하고, PC방을 가는 등 부자라고 하기엔 조촐한 데이트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고, A양은 어쩔 수 없이(?) B씨와 여관에서 밤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6일.이와 관련 A양은 “오빠가 같이 있자고 해서 있다 보니 며칠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부모님이나 학교 생각은 하지 못했다”면서 “집에 가려고 했으나 오빠가 돌아갈 차비를 주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던 날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미처 휴대폰을 챙겨오지 못해 집에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그러나 경찰조사결과 A양은 24시간 내내 B씨와 함께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씨가 볼일을 보고 오겠다며 떨어져 있는 동안에 A양 혼자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 충분히 집에 연락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 경찰에 발견되기 전까지 A양은 ‘오빠가 부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이 같은 사실은 중요치 않았고 단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는 게 A양의 진술이다. 하지만 A양이 부모에게 연락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매일같이 PC방을 찾았던 A양은 미니홈피, 메신저 등을 통해 친구들에게서 “부모님이 너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A양은 자신이 직접 전화하지 않고 친구를 통해 부모에게 “잘 있다. 곧 돌아가겠다”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A양은 평범하고 착한 학생이었는데, 아직 어린나이라 옳고 그름에 대해 분명한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A양이 조사과정에서 ‘성관계는 갖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나 B씨가 건장한 20대 청년인 점, 남녀가 며칠 동안 여관에 단둘이 있었던 점 등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이어 이 관계자는 “B씨가 이번 사건과 같은 동종 범행의 전과는 없지만 강도∙사기 등의 전과가 있다”며 “어린 A양을 속이는 것쯤은 쉬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A양과 마찬가지로 B씨 역시 뒷일은 생각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 B씨는 경찰에서 “9살이라는 나이차가 있지만 A양이 좋았다. 같이 있고 싶었고, 그래서 함께 있자고 말했다”면서 선처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A양은 170여cm의 키에 15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숙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B씨는 지난달 29일 미성년자 약취?유인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