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개발부지에 2개 도로 편입…텍사스촌 “진입로 막혀 생계 곤란”
지역주민 “공사장 높은 가림막 때문에 강도 날뛰어 무서워서 못살겠다”
텍사스촌 ∙ 지역주민 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살 ‘길’을 달라” 가두시위
[매일일보닷컴] 한 곳에 어울려 있지만 남과 북이 그렇듯 서로 왕래가 없던 두 무리였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만 모른 척 눈감고 살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 두 무리가 한 데 어울려 같은 소리를 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속칭 미아리텍사스촌 성매매 여성들과 업주, 또 인근 주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하월곡동 88번지 집창촌 인근에 D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높은 가림막이 설치돼 그 가림막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31일부터 건설현장 앞에서 성북구청과 D아파트 건설사를 상대로 보상과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근지역 주민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성매매 여성들과 업주들이 큰 소리를 내며 거리로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음지에 숨어 지내던 이들이 벌건 대낮에 얼굴을 드러내며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이유를 <매일일보>이 집중추적 해봤다.
시위 2일차였던 지난 1일 오전 11시경,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D아파트 건설현장 앞 편도 2차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200여명의 미아리 집창촌 여성들과 인근 주민들이 점거한 상태였다. 한눈에도 빨간색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성들이 미아리 텍사스촌 성매매여성들임을 짐작케 했다.
이들이 이날 자리에 모인 이유는 동네의 자그마한(?) 변화 때문이었다. 지난 1월, 집창촌 입구에 뉴타운 개발공사가 시작되면서 큰길에서 집창촌까지 이르는 진입도로 2개가 아파트 부지로 편입돼 사라졌다. 또 도로 주위의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에 분진과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8m 높이의 가림막도 세워졌다. 이 때문이었다.그렇다면 이 같은 변화가 집창촌 여성들과 인근주민에게 끼친 피해는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피해를 받았기에 이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일까. 우선 미아리 텍사스촌의 입장을 들어보자. 성매매 집결지 자율정화위원회 유태봉 위원장은 “손님이 가장 많이 이용하던 종암로쪽 진입로가 막히고 보통 6m로 돼 있는 가림막을 8m 높이까지 올려 손님들이 재개발로 인해 텍사스촌이 아예 사라진 것으로 인식하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 위원장은 이어 “우리가 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면서 “가림막이 쳐진 후로 손님이 1/3로 줄어 월세를 지불하지 못하는 업소들이 허다하다. 심지어 전기가 끊긴 집도 있다. 도로 재건설이나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유 위원장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집회 현장에서는 “성노동도 엄연한 직업이다. 우리의 존재를 감추려하지 말라”는 구호가 연신 들려왔다. 이곳에서 6년간 일해 왔다는 공주(32·예명)씨는 “자랑할 만한 직업은 아니지만 이곳은 우리 생계를 책임져주는 직장”이라며 “아파트 공사 때문에 손님이 끊겨 굶어죽게 생겼다”고 말했다.“성(性)노동자, 우린 아직 살아있다”
물론 이들의 ‘영업’은 엄연히 불법이다. 특히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포주와 성매매여성은 물론 성매수자인 남성들까지 처벌을 받게 됐다. 이에 대한 여파로 우리나라에서 ‘물 좋기로 소문난’ 성매매집결지 중 하나였던 미아리 텍사스촌의 400여개에 달했던 성매매업소는 지금 140여 곳으로 줄었다. 이 곳 성매매여성들의 숫자도 2천여명에서 반수에도 훨씬 못 미치는 4~500명으로 줄어든 상태.실제로 텍사스촌 곳곳에는 오랫동안 영업을 하지 않은 듯한 업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집기가 아무렇게나 부셔져 있는 곳, 출입구가 합판으로 막혀 있는 곳 등 빈 업소들이 많았다. 각종 스티커들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는 것은 골목의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업소나 입구쪽에 위치한 업소나 매한가지였지만 그나마 중앙통로 쯤으로 보이는 듯한 곳과 출입구가 나 있는 입구쪽 상황은 그나마 나았다. 가지런하게 커텐으로 가려져 있는 출입문의 풍경은 “이 업소는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구석진 곳과 달리 비교적 출입구 쪽은 어느 정도의 손님유치에 용이했기에 생존(?)이 가능했던 것. 그러나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진 줄만 알았던’ 미아리 텍사스촌은 현재도 여전히 ‘영업중’이고, 아직도 2~30대의 아가씨들이 ‘항시 대기중’이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오후 4시경에도 몇몇의 성인남성들이 마담을 따라 업소로 들어가는 광경이 보였고, 성매수자를 기다리는 성매매 여성들이 거울 앞에 앉아 단장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텍사스촌 일대를 운행하는 한 택시기사는 “예전보다 텍사스촌을 찾는 남성들이 줄었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겠다”면서 “요즘에도 3~4명의 남성들이 삼삼오오 택시를 타고 텍사스촌으로 가달라고 말한다. 밤이면 텍사스촌 앞에 거사(?)를 치르고 나온 손님을 태우고 가려는 택시들이 바글바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뉴타운 재개발공사로 인해 포주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자신을 이곳의 포주라고 밝힌 한 여성은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후로도 이렇게 손님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면서 “정말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 공사장 가림막이 쳐진 이후부터 수입이 전혀 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의 양미간은 이내 곧 주름이 잡혔다. 1979년 텍사스촌에 발을 담그게 됐다는 다른 또 포주 최모(46 ∙ 남)씨는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갈 곳이 없는 사람들뿐이다.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전에 다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고, 대부분의 포주들은 월세로 업소를 얻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이 재개발되더라도 보상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이들의 집회에는 소식을 듣고 참석한 성매매업소의 건물주도 있었다. 멀리서 집회를 바라보던 70대(남) 건물주는 “지난 몇 달치 월세가 밀린 것은 물론이고 이미 2~3천만원에 달하는 보증금까지 월세로 까먹은 상태”라며 “몇 차례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했지만 장사가 안돼서 그런다며 조금만 봐달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월곡동 88번지 일대 주민들 “아직도 70년대? 인권 유린당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들 텍사스촌의 성매매여성, 포주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 있는 현장에는 동네 주민들도 가세하고 있다는 것. 주민들은 왜 성매매여성들과 함께 집회에 나서게 된 것일까. 설마, 성매매집결지를 보호해 달라고 나온 것일까. 물론 아니다. 주민들의 목적은 다른데 있다. 앞서 언급한 D아파트 시공사의 가림막에 설치로 인해 사라진 도로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것. 가림막이 설치된 이후, 버스가 다니던 차로 2개가 폐쇄돼 화재가 났을 경우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고, 우회로는 너무 멀어 아이들이 등 ∙ 하교길에 텍사스촌 옆을 지나 다녀야하며, 현관에서 불과 1m 떨어진 곳에 8m높이의 가림막이 설치돼 강도가 출현이 잦다는 게 이날 집회에 참가한 주민들의 의견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주민들은 2011년 D아파트 신축 후 생길 15m 넓이의 도로를 미리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 주민들의 치안 ∙ 편리를 위한 ‘도로확보’ 요구와 텍사스촌 사람들의 집창촌 입구로 연결되는 ‘도로확보’ 요구 등 ‘도로’라는 매개체를 놓고 상호의견이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두 집단이 함께 집회를 시작하게 된 이유.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20여년간 살아왔다는 50대 주부 이주희씨는 “이전까지는 텍사스촌 사람들과 같은 동네에 살기만 했지 서로 대화는커녕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내왔다”며 “그런데 공사부지 주변에 가림막이 설치되면서 애로사항이 발생했고, 양측모두 도로를 원하고 있어 함께 집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이씨는 “도로가 막히면서 소방차도 들어올 수 없어 우리는 불이 나도 이 안에서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 동네에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제 응급상황에서도 구급차도 못 들어온다. 지금이 70년대도 아니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심정”이라면서 “가림막이 현관문 열면 바로 앞에 있다. 이게 생긴 뒤로는 골목이 으슥해져서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고 몰래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사람도 생겼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같은 동네 주민의 민원을 듣고 기자가 직접 가림막이 쳐져 있는 골목길을 둘러봤다. 가림막 바로 아랫집인 20여 가구의 주택 현관에서 불과 1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4층 건물 높이는 족히 돼 보이는 회색의 가림막이 시야를 가리고 서있다. 주택의 모퉁이는 더욱 심했다. 현관문 앞의 2면이 모두 가려져 있는 곳도 있어 어디선가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림막 길을 쭉 따라가니 주민들의 말대로 텍사스촌 입구가 나타났다. 우회로로 간다면 15분 정도 걸어 가야할 거리였지만 5분도 채 되지 않아 주택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등 ∙ 하교때 이 길을 이용하는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이와 관련 이 씨는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가 이 길로 집을 왔다 갔다 하는데 조금만 더 크면 성매매여성들이 지나가는 손자를 잡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또 다른 주민은 “가림막이 설치된 후 동네에 집을 털거나 골목에서 금품을 빼앗는 강도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골목이 너무 어둡고 으슥해져서 아이들이 혼자 집으로 들어오기 무서워해 큰길에서 전화를 하면 마중을 나간다”고 말했다.텍사스촌에서 일하는 가영(37 ∙ 예명)씨 역시 마찬가지다. “저녁 7~8시쯤 출근할 때면 날이 어둑어둑하다. 큰길보다 가림막이 쳐진 이 골목이 으슥하지만 거리가 제일 짧아 이 길을 이용한다”며 “최근에 이 길을 이용해 업소를 찾아오던 손님이 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동네가 너무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관할구청 ∙ 건설사 모두 ‘나몰라라’
그러나 텍사스촌 사람들과 인근주민들의 염원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담당 구청은 물론, 해당 건설사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와 관련 성북구청 뉴타운 개발국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11월 이후 하월곡동 뉴타운 개발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민원이 들어온 것이 없다”면서 “최근 들어 텍사스촌 주민들을 중심으로 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그들의 요구는 지금 당장 도로를 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장부지 전체가 일정한 계획을 갖고 순서대로 시공되기 때문에 도로만 따로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통로를 막기 1달 전부터 홍보를 했고, 우회로도 만들어 놓은 상태”라고 덧붙였다.D아파트 건설사 역시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 게다가 텍사스촌 포주들이 건설사에 대해서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해당지역 건설현장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정당한 절차를 밟아 구청으로부터 허가받아 지난 1월 11일에 착공에 들어갔다”면서 “텍사스촌 포주들이 ‘가림막 때문에 손님이 줄었다’며 140여개 업소의 3개월치 월세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데 보상해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이어 이 관계자는 “다만 도의적이고 지역을 위하는 차원에서 가림막 밑으로 가로등을 설치해주겠다. 또 쓰레기 무단투기가 증가했다고 하니 쓰레기를 수거해주는 정도의 책임은 지겠다”면서 “집창촌에 손님이 없어졌다고 인식하는 것은 성매매특별법 때문이지 절대 가림막 때문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부터 계속해서 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성매매 집결지 자율정화위원회측은 “앞으로 한 달간 합법적인 투쟁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금전적인 보상도, 도로도 확보해주지 않는다면 이 투쟁을 끝낼 수 없다”고 밝혀 이들의 집회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낼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이와 관련 종암경찰서 한 관계자는 “생계가 곤란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집창촌은 분명히 불법”이라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