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인 14년 전 그날 나도 함께 죽었다”
14년 전 부친 살해한 아들, 공소시효 1년 앞두고 검거…직계 가족들 알고도 ‘쉬쉬’
피해자 김씨, 외도∙폭행 등 가정에 소홀…“더 이상 당할 수 없었다”
6토막으로 절단해 인근 건설현장에 유기…건물 세워져 사체 못 찾아
천륜 저버린 벌 받았다(?), 이혼∙우울증∙부도 등 형제들도 잇단 후유증
[매일일보닷컴]세상엔 ‘완전 범죄’ ‘비밀’이란 없는 것일까. 말다툼 끝에 친아버지를 흉기로 살해∙유기한 아들이 14년 만에 검거됐다. 공소시효를 1년 남겨둔 상태였다.
피해자의 나머지 직계가족들은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으나 경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피해자의 부인을 포함한 나머지 자녀들은 직∙간접적으로 ‘아들에 의한 살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가족에 따르면 피해자는 젊은 시절부터 외도를 하며 가정에 소홀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가장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한다. 때문에 피해자 김모씨의 행방과 그에 대한 어떠한 것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이들 가족에게는 이미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1994년 4월, 지금 이맘때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ㄱ아파트의 한 집에서 고성이 오갔다. 그러나 이집에서 ‘고성’이 들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집의 가장 김모씨(당시 64세)의 버릇(?)때문. 김씨는 틈만 나면 아내 김모씨(70세)와 아이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물론 폭행까지 가했다. ‘바람직한’ 가장의 모습을 잃은 지 이미 오래인 김씨는 남편으로서의 역할 또한 ‘0점’이었다. 아내에게 내연녀와 결혼을 하겠다며 이혼을 요구했고, 아내는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더욱 폭행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래도 사회적인 이목엔 신경이 쓰였는지 김씨는 사당동 아파트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툭하면 때리고, 생활비를 빼돌려 내연녀에게 건네주는 ‘남편’ ‘아버지’란 사람이 탐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문제의 그날, 김씨와 단둘이 집에 남게 된 차남 A씨(41세∙당시 27세)는 술잔을 나누며 그동안에 쌓였던 불만을 털어놓았고,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에 김씨는 결국 폭발했다. 부억에 있던 식칼을 집어 들고 아들인 A씨를 위협했던 것.이와 관련 A씨는 경찰에서 “대화를 나누던 도중 언성이 높아졌는데 아버지가 식칼을 빼들고 나를 위협했다”면서 “순간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칼을 빼앗았다”고 진술했다.
비극적 운명의 서곡 울리다
아버지 김씨에게서 칼을 빼앗아 든 순간 A씨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기는커녕 맞으면서 지내온 불쌍한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또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욕설을 퍼붓던 그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외도를 하는 등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족들 위에 군림(?)하려한 ‘나쁜’ 아버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순간, A씨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칼로 아버지의 목을 깊숙이 찌르고 만 것. 단 1회였다. 그렇게 김씨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A씨는 경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평생 동안 쌓이고 쌓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폭발했던 것 같다”면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버지를 볼 때면 너무나 괴롭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김씨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경찰조사결과 밝혀진 바에 의하면 A씨에게는 10살 터울의 형이 있다. 그러나 형은 A씨가 중학생일 무렵 “아버지 행실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며 일찍이 결혼해 이민을 갔다. 때문에 A씨는 집안에서 장남 아닌 장남노릇을 해야만 했던 것. 이와 관련 A씨는 경찰에서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와 2살, 4살 터울의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긴장을 늦추고 살 수 없었다”면서 “이때부터 심리적 압박을 많이 받았다”고 진술했다.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범행 이후 A씨는 흉기로 사용된 칼과 함께 숨진 아버지 김씨의 시신을 커텐천으로 감싼 뒤 자신의 방 침대 밑에 숨겨온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그때도 지금처럼 한창 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기에 방안의 온도는 시체가 부패하기에 ‘딱’ 좋았다.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갔고, 흐르는 시간만큼 시신도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가장인 김씨의 행적이 묘연해진 것에 의문을 나타냈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A씨 역시 가족들의 말에 동조하며 자신도 아무것도 모르는 체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시체를 침대 밑에 방치해 둔 지도 어느덧 일주일 가량이 지났다. 온 집안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A씨는 가족들이 집을 비운 틈을 타 김씨의 시신을 화장실로 이동, 흉기로 사용됐던 칼과 줄쇠톱을 이용해 목, 양팔, 양다리 등 6등분으로 훼손했다. A씨는 훼손된 시신을 등산용 배낭 2개에 나눠 넣은 후 새벽시간을 이용, 2~3일에 걸쳐 집 밖으로 내다 버렸다. A씨가 유기장소로 선택한 곳은 자택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재개발 공사구역의 폐자재더미를 모아 놓은 곳이었던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밝혀졌다. 살해에서 사체보관, 유기까지 A씨는 그 어떤 과정도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족들은 어떻게 ‘A씨가 김씨를 살해했다’고 추측하고 있었던 것일까.A씨 가족 ‘불문율’의 정체는…
경찰에서 증언한 A씨의 동생 B씨(남∙37세)의 진술은 이렇다. 어느 날부터인가 집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겨나기 시작했고, B씨는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B씨가 찾아낸 곳은 바로 A씨의 방 붙박이장 속.B씨가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피가 묻어 있는 커다란 여행용 배낭과 배낭 주위에 엉겨붙어있는 구더기였다. 순간 B씨는 배낭 속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인가가 아버지의 시신임을 직감했다. 분가해서 따로 살고 있던 여동생 C씨(39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필이면(?) 이때 나머지 짐을 챙겨가겠다며 불쑥 집을 찾았던 것. C씨도 이날 붙박이장 속에서 구더기 더미에 뒤덮인 가방을 보게 됐고, 실종의 진실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A씨 어머니 김모씨의 경우는 A씨가 직접적으로 범행사실을 털어놓은 케이스다. 아내 김씨는 전날 둘째아들과 함께 있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을 의심, A씨를 추궁해 모든 사실을 듣게 됐다경찰에 따르면 A씨는 당시 김씨에게 “이 모든 게(아버지를 살해∙유기한 것) 엄마 탓”이라면서 “아버지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헤어졌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이혼하지 않아 이렇게 됐다’는 아들의 말을 외면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A씨의 범행을 쉬쉬했다.이와 관련 아내 김씨는 경찰에서 “아들이 나 때문에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니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면서 “남편이 죽었지만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선 신고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이어 김씨는 “남편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었다”며 후회의 눈물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남아있던 A씨의 모든 가족들은 ‘아버지 김씨 실종’의 진실을 알고 있었으나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가족들이 모두 아버지로 인해 당한 참담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상황의 힘겨움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한 A씨를 원망하지 않았다. 물론 그 누구도 A씨에게 그날의 사건에 대해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후 김씨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난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신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던 A씨는 1996년 지인의 소개를 통해 한 여인을 소개 받았고 2개월 만에 결혼했다. 그러나 혼인신고도 못한 채 6개월 만에 이혼을 당해야했다. 잠잘 때는 가위에 눌려서 편하게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안경점에도 취직했으나 이 역시도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3년 만에 그만두게 됐다. 이후 40대가 된 지금까지 A씨는 직업도 없이 술로 세월을 보냈다. A씨는 경찰에서 “아버지를 죽인 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나도 그날 죽었다”면서 “평소에 아버지가 늘 따라다니는 듯 환영이 자주 보였다. 그럼 난 잠들기 위해 술을 마셨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아 잠을 잘 수도 없었다”고 괴로웠던 지난날을 털어놓았다.순탄치 못한 길을 걸은 것은 나머지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기억으로 우울증을 앓아온 여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다 2005년에 이혼했고, 남동생은 사업에 실패해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김씨와 단둘이 살아온 어머니는 중풍과 당뇨병에 시달리고 있다.14년간 자신들의 겉과 속을 파괴하면서까지 지켜온 A씨 가족만의 비밀, 이 비밀이 어떻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됐을까. 봉인돼 있던 이 사건이 풀리게 된 실마리는 바로 ‘소문’. 역시나 발 없는 말이 무서웠다.
친족, 범죄은닉죄 성립 안 돼
한편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14일 아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한 A씨를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으며, A씨가 시신을 유기한 장소에는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 시신은 찾지 못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