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간호실습생은 무보수 노예?

보건의료계열 대학생들, 21일 국회에서 실습생권리 찾기 토론회

2013-02-22     권희진 기자

[매일일보=권희진 기자] 고3 현장실습 도중에 뇌출혈로 쓰러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현장 실습생 사건을 계기로 산업현장 실습생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착취 문제가 사회적 병폐로 노출된 가운데 최근 보건의료계열 대학 실습생들의 열악한 실습 환경이 도마 위에 올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 노조)은 21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병원 실습생 권리 찾기 설문조사 결과 발표 및 실습 환경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해 이들의 요구 사안을 주장하는 자리를 가졌다.

대부분의 대형병원들에서 고질적·구조적 인력 부족 문제

배우러 온 실습생들, 허드렛일 투입될 수 밖에 없는 구조

“실습을 통해 크게 배운다는 생각보다는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업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무환경은 열악한 것 같다, 병원에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는 업무를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아 실습생의 역할을 잘 모르겠다, 거의 막노동이 많고 실질적으로 실습할 기회는 과목마다 다르긴 하지만 못할 때가 많다, 체계적인 실습생 교육 프로그램이 없어서 운이 좋아야지 관찰하거나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실습 나온 대학에 따라 차별이 있다, 학생이라서 무시를 많이 한다, 조금이라도 쉬지 못하고 밥 먹는 시간도 짧다, 간호사의 일을 대체하는 수준인 것 같다, 식사비, 차비 지급해줬으면 좋겠다, 실습을 하면서 내가 간호 학생인지 간호조무사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차별을 느끼는 점도 있고 눈치 보면서 해야 하는 점이 힘들다…” 청년유니온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전국간호대학생대표자연합이 지난해 9월 전국 보건의료계열 대학생 795명을 대상으로 ‘병원실습 실태조사’를 한 결과, 병원실습생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체온과 맥박 혈압 등 ‘활력징후’ 측정이 전체 가운데 43%로 가장 많았고, 이어 침상정리 16% 등 단순 업무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병원 실습생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을 자조적으로 ‘병풍’(방해 안 되게 가만히 서 있음) 혹은 ‘바이탈 기계’(체온, 혈압 체크만 반복)로 부른다고 한다.

병원실습생 실습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나타난 병원 실습생들의 의견들이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건의료계열 대학생들은 ‘현장교육’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대체인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습생 다수, 열악한 노동 환경 공감

전국보건의료노조(위원장 유지현)과 청년유니온(위원장 김영경) 그리고 전국간호대학생연합(의장 송수연)이 공동으로 참여한 <병원실습생 권리 찾기 사업단>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조사하고 분석한 ‘병원실습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보건의료계열 대학생들이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는 경우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91%가 실습생들이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이 없다고 답변했으며 49%가 하루에 단 1시간도 앉아서 쉴 수 없다고 답변했고, 14%만이 점심식사비가 제공되고 있었으며 교통비나 셔틀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94%에 달했다. 또 병원실습의 경우 학교와 직접 연계된 병원이 없는 경우 타지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40% 만이 학교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었고 39%는 고시원에서 그리고 6%는 모텔 등의 숙박시설에서 기거하며 실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습’ 대신 ‘노동’ 뿐인 병원실습

21일 국회 토론회에서는 학교 교육 목표에 부합되지 않는 실습과정과 실습교육환경의 열악함, 투명하지 않은 실습비 등 금전적 문제, 대체 인력으로 사용되는 병원 실습생 실태 등을 병원 실습 정책의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청년유니온 조성주 정책기획팀장은 “면허가 없는 실습생들은 의료사고 및 여타의 이유로 관찰 혹은 잡무를 하거나 이론 학습을 재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자의 지도하에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성주 팀장은 “현재 대부분의 병원에서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실습생들이 상시적으로 있다 보니 부족한 인력을 채우는 허드렛일이 주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습생들이 대체인력으로 사용되지 않게 병원인력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교육 전담 인력도 충분히 증원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와 병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는 “실습 교육의 본래 목표에 충실하게 실습이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환경 마련이 중요하다”면서 “병원들은 실습생의 노동력을 사용하면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측 “돈 낼 거면 실습 거부“

실습생들의 열악한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의견과 달리 병원 측 대표로 참석한 토론자들은 환경 개선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대한병원협회 노사협력팀 박형철 팀장은 “먼저 병원 실습생 교육현황에 대한 실태조사가 선행 돼야 한다”며 “공신력 있는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실습생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가지 않는다”고 조사자료 자체의 신빙성을 걸고 넘어졌다. 박형철 팀장은 “만약 병원 실습생들이 병원에 식비와 교육비 등 금전적으로 지원을 요구한다면 대부분의 병원들은 학교의 교육 요구를 거부할 것”이라며 “실습생들의 소속기관은 학교이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는 학교에 요청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은 “등록금에 실습비가 책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가 책정되어 있는지 여부와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교통비, 식비조차 제공되지 않는 상황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정적 인력 충원이 문제”

전국간호대학생대표자연합 송수연 의장은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이 모텔 등에서 자며 실습을 하고 있다는 현실은 충격”이라며 “실습생들이 교육환경이 열악해서 제대로 된 실습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실습생들의 경우 식사시간 조차 제대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습생들이 쉴 수 있는 휴게공간도 거의 마련되어 있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대부분의 병원들에서 환자를 위해 안정적인 인력을 확보하기 보다는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오히려 실습생들을 대체인력으로 사용하고 있어 환자에 대한 서비스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현 위원장은 “병원들은 물론 의료계가 나서서 실습생들의 교육환경 및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제대로 된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