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로 주고 말로 받은‘이해찬’
‘내일 당장 송파구 특별감사해’
이 총리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구청직원에게 ‘손찌검’
지난 10월 18일 유럽순방을 마치고 이해찬 총리가 현지 국내언론사 특파원 및 수행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조선, 동아 등 국내 언론에 대해 감정 섞인 표현을 쏟아냈다.
일정 마지막날 술자리를 겸한 인터뷰 자리에서 술이 취한 상태에서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심한듯’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이다.
당시 우선 이 총리의 조선·동아 비판은 기자들의 질문에 수동적으로 응답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의도된 발언이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이 총리의 발언은 숙소인 베를린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베를린 특파원 4명과 가진 간담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언론문제를 먼저 제기하면서 원색적인 용어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행태를 비판했다.
이 자리에는 일부 동행기자도 있었으며, 이 총리는 “써도 된다” “내가 쓰지 말라고 해도 여러분들이 쓰지 않겠느냐”며 적극적으로 발언을 이어갔다.
이 총리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역사의 반역자”라는 말을 수차례 했다.
비록 이 총리의 발언은 약간 취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한두잔을 마신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취중발언’으로 볼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총리실 관계자도 “이 총리는 술을 많이 하지 않는 분이며 술 때문에 무슨 말을 할 분도 아니다”고 말했다.
“조선·동아 역사의 반역자”
취중 발언 논란…”해외에서도 집안일 떠벌릴 일 있나” 비난도
실제로 이 총리는 간담회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시나리오 등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선 거듭된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기사가 될 얘기는 안하는 사람”이라면서 철저하게 함구했다.
이같은 정황으로 볼 때 이 총리는 오히려 작심을 하고 조선과 동아일보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거나 `취중에 진담을 얘기했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아 보인다.
이에 대해 조선닷컴은 이튿날인 19일 오전 머릿기사로 <이해찬 총리 “조선 동아는 역사에 반역말라> 제하의 기사를 싣고 이 총리가 “‘조선·동아일보는 역사에 반역하지마라’, ‘조선 동아는 내 손안에 있다’는 식의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내 수행기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고 보도했다.
이 총리는 또 “조선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조선과 동아는 내 손바닥안에 있다. 나라를 자신들이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권력인 척 하지말고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며
“그동안 동아일보가 나를 얼마나 공격했느냐. 아침마다 조선일보를 읽고 있지만 한번도 조선이 역사의 흐름에 맞게 쓴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조선닷컴은 보도했다.
조선닷컴은 또 이 총리는 “조선일보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면서 “조선일보가 별소리를 다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며 옆에 배석한 보좌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이어갔다고 보도했었다.
쌍방의 이러한 팽팽한 신경은 한달이 지난 11월18일 월간조선 12월호에서‘이해찬의 폭언 폭행 사례 연구’라는 기사를 싣고 당시 서울 송파구청 재무국장이었던 정태복(70)씨 등 사건 당사자 두 명의 증언을 인용해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이었던 이 총리가 자신의 형 부동산 등기서류를 잘못 작성했다는 이유로 직원의 뺨을 때리고 서울시 감사관에게 송파구청 특별감사를 지시했다”는 폭로성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대기업을 다니다 퇴직한 이 총리의 형이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7억8000만원 상당의 부동산을 구입한 후 소유권 이전 등기를 했지만 송파구청 직원이 토지·건물 가액의 총액을 잘못 기재해 법원에서 등기가 반려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부시장이었던 이 총리는 송파구청 공무원 4명을 부시장실로 불러 형의 일을 추궁하던 중 이 같은 사건(직원에게 손찌검)이 벌어지게 됐다는 것.
정태복씨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날(1995년 12월 18일) 오후 1시 30분쯤 이 부시장(이해찬 총리)에게 관련 서류를 보여주며 해명하려는 순간 이 부시장이‘네가 뭔데, 얼마 받아 먹으려고 그렇게 지시했어’라며 반말과 고함을 쳐‘이 사람 왜 이러나’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 부시장은 ‘잘못했다’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실무 직원에게 책인지 서류인지를 집어던졌고 다가가서 손찌검을 했다”며 “서울시 감사관이 말리자 ‘이 자들 재산등록서류를 가져와, 내일 당장 송파구 특별감사해’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행정 착오가 있었지만 단순한 실수에 불과했다”면서 “이 총리가 자기 형의 개인적인 일로 구청 공무원들을 불러 폭언을 하고 뺨을 때린 일은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월간조선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공무원도 “이 총리가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차례 손찌검을 했다”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월간조선은 서울 관악구청에서 10여년간 근무한 한 전직 공무원이 “1990년대 초 이해찬 의원과 구청장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고 이 총리가 구청장에게 물컵을 집어 던졌다”고 증언한 것에 대해 당사자인 전 관악구청장 P씨는 “그 당시 일은 기억도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지난번 총리 인사 청문회 때 ‘인간적으로 기본이 안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던데 그 말이 딱 맞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총리는 지난 6월 있었던 국무총리 인사 청문회에서 “민통련 간부로 재직하던 재야 시절 잘못된 기사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모 중앙지 취재기자의 뺨을 때린 적이 있느냐”는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의 서면질의에 대해 “1987년 재야운동을 할 당시 잘못된 보도에 항의하고 언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한편, 총리실은 이같은 월간조선 보도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일절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총리가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밝힌 조선·동아 발언요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역사의 반역자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을 흔들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조선과 동아는 정권을 농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나나 끝까지 철저하게 싸울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조선과 동아가 잘못된 역사인식에 매달려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다. 조선과 동아는 냉전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하겠지만 영향력은 30%도 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조선과 동아 때문에 우리가 집권했다. 조선과 동아가 우리를 집권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세웠는데 그것을 내가 알고 막아냈다. 조선과 동아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영원한 야당’을 할 것이다.
조선, 동아는 내 손아귀 안에서 논다. 나는 조선과 동아의 비판을 왼손으로 쳐 내면서, 보수언론의 논리를 왼손으로 격파하면서 앞으로 간다. 조선의 사설이나 기사는 참고적으로 읽을 뿐이지 절대 존중하지 않는다. 역사에 뒤떨어진 신문이기 때문에 관심도 없다. 조·동의 영향력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절대로 조선일보 보지 않는다. 나는 절대로 조선,동아와는 인터뷰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권력인척 하는데 권력이 아니다. 조선일보의 논조에 우리정부는 놀아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우리나라를 흔들수 있다는 발상을 버릴 때 우리나라는 발전하게 된다.
조선일보가 더 이상 국민을 호도하려고 한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나에 대해 얼마나 인신공격을 했는가. 그러나 나는 타협하지 않는다. 더 이상 조선일보의 왜곡보도를 용납하지 않겠다. 나는 국가보안법 폐지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대체입법 내지는 형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왜곡을 했다.
또 이 정권을 사회주의 정부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우리는 사회주의 정권이 아니다. 우리를 사회주의로 몰고 가려하지만 우리 정권은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중도우파다. 우리 정부는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 LG 칼텍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그 때 누가 좌파정권이라고 했나. 원칙적으로 해결했다. 서울지하철 파업때도 원칙적으로 했는데 좌파정권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정권을 흔들려고 하지만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중도적인 입장으로 갈 것이다. 걸핏하면 용공으로 몰아가려 하는데 나는 30년 동안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단 한번도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몰아가선 안된다. 우리 정책 가운데 사회주의적인 정책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면 되지 그렇지 않고 무조건 사회주의 정권으로 몰아가선 안된다.
우리 정권은 약간 우파적으로 가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총리 공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도 ‘정책에 있어서 50%만 우로 가라’고 했다. 그래야 여당의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총리가 보수화 됐다고 하지만 국가를 이끌어 가려면 약간 우파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가를 약간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우파가 집권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 한나라당식 대로하면 북한에 지원을 하지 말하야 한다. 한나라당의 논리대로라면 북한정권이 붕괴돼야 하지만 우리는 북한정권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불로소득을 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정책을 펴선 안된다. 한나라당이 법인세와 보유세를 감면하자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국가발전이 안된다.
조선과 동아가 나와 노무현 대통령을 흔들려고 하지만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고집으로 산다. 조선과 동아에 흔들릴 것 같지만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자존심을 걸고 국가를 위해 일한다. 조선과 동아가 흔들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정부인사권까지 영향력을 미치던 시대가 있었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
중앙일보는 객관적으로 돌아섰다. 정책사안에 따라 비판을 한다. 역사의 흐름에서 가닥을 잡고 중심을 잡은 것같다.
조선과 동아는 우리정부가 망하는 관점에서 기사를 쓴다. 그렇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다. 밤의 대통령 시대는 끝났다. 친한 친구가 그 집안의 아들이다. 조선일보는 역사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국민을 호도하고 국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선일보를 유심히 본다. 물론 대통령은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한번도 역사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사를 쓴 적이 없다. 조선일보가 역사에 무슨 기여를 했나. 박정희 시대에 안기부(중앙정보부를 잘못 말함) 정보를 받아 특종을 했지만 무슨 기여를 했나. 전두환.노태우는 용납할 수 있지만 조선일보의 행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나는 타협해서 보수세력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다. 1년을 총리를 할지 3년을 할지 모르지만 원칙적으로 하고 절대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총리로 있는한 (참여정부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일은 없다.
저희는 비선도 측근도 없다. 투명하게 하고 있다. 절대로 보수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굴복하지 않는다. 조선.동아는 더이상 까불지 말라. 자기들이 권력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을 간단히 보지 말라. 내가 총리로 있는한 국가를 반듯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다. 민주화세력이 책임지고 나라를 반듯하게 이끌어 갈 것이다.
다음은 정태복씨가 월간조선과 인터뷰 한 내용이다
“국장인 나를 포함해 담당과장·계장·직원이 이 부시장실로 불려갔습니다. 이 부시장의 형이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금으로 송파구 가락동 근처에 7억8천만원 짜리 건물을 구입했지요. 그런데 부동산 등기과정에서 구청상의 행정적 착오가 있었어요. 그게 문제가 됐습니다.”
-무슨 문제였습니까.
『건물가액과 토지가액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관한 것이었지요. 금액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랐습니다. 우리 직원과 이 부시장의 형 측과 견해가 달랐어요.』
-형이 부동산을 구입했는데 왜 李부시장이 나섭니까.
『정무부시장실에서 근무하던 한 비서관이 우리 구청 담당 계장에게 전화를 했어요. 「건물을 구입한 사람이 李부시장의 형이니까 잘 처리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지요. 형이 아마도 동생에게 얘기를 했겠죠. 전화를 받은 계장은 신경을 썼지만 담당직원의 실수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예요』
-무슨 실수였습니까.
『법원 등기소에서 등기를 하는 과정에서 서류가 반려됐어요. 알고 보니 토지가액ㆍ건물가액과 둘을 합한 액수가 서로 달랐던 거지요. 계산上의 착오였습니다. 담당과장 전결 사항이었는데 더하기를 잘못 했던 겁니다. 바로 수정조치를 해서 등기가 완료되기는 했습니다』
-큰 실수였나요.
『담당직원이 잘못한 건 맞지요. 그러나 단순한 실수였습니다』
-그런데 李부시장실에 왜 갔습니까.
『저는 그날 오전에 區의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과장이 「빨리 부시장실로 가자」며 저를 찾아왔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상황을 설명하더군요. 「서류를 가져오라」고 한 후 직접 확인을 해봤어요. 담당 직원의 실수가 한 눈에 들어왔고, 납득이 가는 단순한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나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고 했더니 「(李부시장이)국장까지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李부시장에게 서류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면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곧장 달려갔습니다』
-李부시장실에 간 게 몇 시였습니까.
『오후 한 시쯤이었어요. 李부시장이 부재 중이라 부속실에서 한 30분쯤 기다렸더니 그가 들어오더군요. 담당직원을 제외하고 저와 과장, 계장이 부시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차분히 설명하니까 李부시장이 이해를 하던가요.
『가져간 서류를 펴 놓고 설명을 하려던 순간 李부시장이 갑자기 반말로 「네가 뭔데, 얼마 받아먹으려고 그렇게 지시했어」라며 고함을 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순간적으로 돌변하기에 「이 사람 왜 이러나」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더니 「감사관 오라고 그래」라고 한 후 「담당직원 어디갔어」라고 했습니다』
-부속실에서 대기 중이던 담당직원은 그 때 들어왔습니까.
『네. 그 직원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고는 「잘못했습니다」라고 했어요. 李부시장은 제 부하 직원에게 몇 마디 폭언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감사관이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끝났습니까.
『의자에 앉아 있던 李부시장이 무릎을 꿇은 직원을 향해 책인지 서류인지 정확지 기억이 안 나지만 뭔가를 집어던졌어요. 그러고는 그에게 다가가 한 차례의 손찌검을 하는 겁니다. 그 순간 감사관이 달려들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말렸어요. 그런 후 李부시장은 「이 자들 재산등록 서류 가져와」라고 하더군요. 그런 후 감사관에게 「내일 당장 송파구 특별감사 해」라고 했습니다. 감사관은 「그러겠다」고 한 후 「국장만 해당되고 나머지 직원은 직급이 낮아 재산등록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저는 그 순간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송파구청에 있던 제 재산등록 서류를 서울市의 다른 직원이 가서 가져왔습니다』(손찌검과 관련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또다른 당사자는 정태복 국장보다 더 심각한 얘기를 했음을 밝혀둔다)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담당 공무원의 비리사건으로 검찰이 이듬해에 서울지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한 것으로 압니다. 혹시 뇌물을 받기 위해 일부러 서류를 조작한 것은 아닙니까.
『저는 그 이듬해에 30년이 넘는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는 퇴직을 앞두고 있었어요.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뇌물입니까. 감독 책임이 있는 제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李부시장은 저를 도둑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속이 아주 상했어요. 당시 그의 나이 40代 중반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리 부시장이라고 하지만 젊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제 인생이 처량해지더군요』
-당시 재산은 얼마나 됐습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현재 살고 있는 집 하나 뿐이었습니다. 李부시장은 제 재산등록 서류를 檢事처럼 꼼꼼히 보더니 「숨긴 것 없어. 이 게 다야?」라고 하더군요』
-李부시장실에는 언제 나왔습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섯 시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송파구청으로 바로 돌아왔습니까.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후 감사관실에서 경위서를 작성하고 추가로 조사를 받았어요. 그렇게 끝난 시각이 밤 열 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9년 전의 일을 어떻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제 일기에 그날 일을 고스란히 기록돼 있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으니 기억을 못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요』
-특별감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감사거리가 안 됐는데 무슨 감사가 있었겠습니까. 자리에 있었던 감사관도 「단순한 실수를 가지고 부시장이 난리다」고 했어요. 누가 봐도 단순한 실수를 고의로 몰아 넣은 데 대해 너무 화가 났어요』
-단순한 실수였지만 실수는 실수 아닙니까. 당시 구청장이 감독책임을 물었습니까. 부하 직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고의가 아니고 또 단순한 실수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묻습니까. 부하 직원이 제게 미안해하며 「사표를 쓰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작은 실수를 가지고 사표내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만류했지요』
-그 일이 있은 후 李부시장이 「미안하다」는 뜻을 전달해오던가요.
『사과는 무슨 사과...』
-이후 李부시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왜 그 사람 얼굴을 봅니까. 그 일이 있은 후 선거기획단장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당으로 가버렸어요』
-그 후 李부시장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어요. 1998년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교육부, 참 잘도 되겠네」라고 혼자 중얼거렸지요. 총리가 된다고 했을 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총리하나. 나라가 좀 시끄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형 문제로 난리 친 사람이 어떻게 국정을 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