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삼아 시작한 절도, 이제는 병(病) 됐다”
전과7범 60대 노인, 매일 물건 훔친 사연…사업실패・가족 잃은 허전함 달래려 절도 시작
3개월간 70여회 걸쳐 5천여만원 상당 절도…압수 장물 트럭 2대 분량
창고 재고수량 체크 안 해 3개월 동안 편하게(?)…주로 생필품 훔쳐
디스크 불구, 장비 없이 등에 메고 날라…“내 등에 올려지면 다 내꺼”
[매일일보닷컴] 60대 노인이 대형마트에서 3개월간 거의 매일 같이 물품 한 상자씩을 훔쳐 집으로 날랐다. 범행장소도 한 군데로 정해져 있었고, 현장에는 CCTV도 설치돼 있어 범죄를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팔아서 돈이 될 만한 고가의 물품을 훔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지난 3개월간 훔친 장물들은 집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 절도행각을 벌여왔던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 증거가 된 셈이다. 이에 대해 사건의 피의자 남궁씨(63・무직)는 경찰에서 “가족도 없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시작한 절도가 이제는 습관처럼 돼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은평구 대조동의 한 대형 A마트 물품창고에 보관돼 있던 시가 5천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3개월간 70여차례에 걸쳐 훔친 혐의로 남궁씨를 지난 21일 구속했다. 남궁씨는 지난 18일 새벽 5시 20분께 A마트 물품창고에서 200만원 상당의 등산복 1박스를 들고 나오다가 현장에서 경찰에게 적발됐다. 남궁씨는 이와 같은 수법으로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1,100여점의 물품을 훔쳐온 것으로 드러났다. 남궁씨는 이미 절도 등의 혐의로 전과 7범의 전과자였지만 ‘도둑놈도 날 때부터 도둑질을 한 건 아니’라고 남궁씨 역시 처음부터 남의 물건에 손을 대던 사람은 아니었다.경찰에 따르면 젊은 시절 타이어 대리점을 운영했었던 남궁씨는 사업이 한창 번창할 무렵 IMF가 터져 부도로 30여년간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해야만 했다. 그 일로 남궁씨는 억대가 넘는 채무관계에 휘말리게 됐다.
남궁씨는 “이자 때문에 빚은 점점 늘어나고, 먹고 살 길은 막막해 아내와 싸움이 잦아졌다”면서 “결국 아내와 이혼하게 됐고, 그 이후로 아내는 물론 자식들도 만나지 못했고 연락조차 끊긴 상태”라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거의 매일같이 물품 한 상자씩 훔쳐
경찰에 따르면 A마트는 본 건물 외부에 천막창고를 지어놓고 그곳에 이월상품 등을 적재해놓았다. 창고에 들어온 상품들은 시즌이 지난 것들이기 때문에 분기마다 1회의 재고파악을 하는 것 외에는 따로 수량을 체크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난 몇 달간 물건이 없어졌어도 매장주들은 도난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 또 A마트는 피의자의 집에서 불과 6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은데다가 창고가 천막으로 돼있어 남궁씨가 물건을 훔치기도 쉽고, 운반하기에도 용이했기에 범행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남궁씨는 경찰에서 “새벽에 운동하러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건을 훔쳤다”면서 “경비가 소홀해진 틈을 타 천막 밑을 찢고 들어가서 하루에 물건 1상자씩을 들고 나왔다”고 진술했다.그러나 남궁씨의 절도행각은 1/4분기가 끝나면서 꼬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재고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매장주들이 물품수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 관할경찰에 도난신고를 하게 된 것. 경찰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는 CCTV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간의 절도행각이 언제, 어느 시간대에 이뤄진지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24시간 녹화되고 있는 CCTV 테이프 몇 달치를 한꺼번에 확인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이에 경찰은 A마트 보안팀과 함께 잠복에 나섰고, 그 결과 범행현장에서 남궁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서울 은평경찰서에서 만난 남궁씨는 보통의 60대보다 많이 늙어 보였고, 키도 작고 말라 3개월을 하루같이 물건을 훔친 용의자라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남궁씨의 구속 여부를 결정한 판사역시 법정에서 “당신이 정말 도구도 없이 무거운 짐들을 혼자 들어 날랐냐”고 물었을 정도. 담당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남궁씨는 당시 법정에서 ‘나는 내 등에 올려지는 물건은 무엇이든 다 들고 갈 수 있다’고 말해 판사를 당혹케 만들었다”면서 “허리디스크도 있다고 진술했는데 어떻게 물건을 들어 날랐는지 우리도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압수된 장물, 1톤 트럭 2대 분량
현장에서 덜미를 잡힌 남궁씨는 당시 “더 훔친 물건이 있냐”는 경찰의 질문에 “집에 가면 3상자 정도가 더 있다”고 답했다고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피의자의 집에 도착한 경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3평 남짓한 반지하 방 안 가득히 포장도 뜯지 않은 상자더미들이 즐비하게 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경찰 관계자는 “3상자가 더 있다는 소리에 장물을 압수하기 위해 봉고차를 끌고 피의자의 집으로 출동했다”면서 “그러나 봉고차 1대로는 턱도 없었고, 장물들을 모두 담기 위해 1톤 트럭 2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장물 중에 등산복, 양주, 밥솥 같은 품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휴지, 세제, 밥솥 등과 같은 생필품이었다”면서 “직업이 없던 피의자는 이런 물건들로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한편 지난 2006년 3월, 절도혐의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남궁씨는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물품을 훔쳐온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