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호 “전경련 위상 높이는 이유는?”
재계 입장 강력 대변…정부에 ‘쓴소리’
전경련 “대북정책도 美공조 통해 추진되야”
강신호(姜信浩) 동아제약 회장이 선장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들어 잇따라 각종 현안에 대해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듣기에 따라선 정부에 쓴소리로 들릴만한 얘기도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정부 여당이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과 관련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상위 5대 그룹에만 적용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차선책’을 마련해 정부 및 정치권 설득에 나서기로 한 것. 강신호 회장을 비롯한 전경련 회장단은 최근 전경련회관에서 월례 회장단회의를 갖고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최종 입법과정에서 경제계와 국회, 정부간의 충분한 대화로 합리적인 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자총액제한 등을 규정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전경련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차선책을 마련해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할 방침이다.전경련이 마련한 차선책은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규모 5조원 이상 17대 그룹 중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KT 등 상위 5대 그룹에 대해서만 출자총액제한을 적용하고 나머지 그룹에 대해서는 폐지하자는 것.5대 그룹의 자산규모는 17대 그룹 전체 자산의 65%에 이르고 계열사 수도 17대 그룹 전체의 49%에 달하는 만큼 5대 그룹에만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적용해도 정부가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과 관련해서도 전경련은 1년 유예 후 2006년부터 3년간 매년 5%씩 15%로 축소한다는 정부 개정안을 2년 유예 후 3년간 2%, 3%, 5%씩 줄여 20%로 축소하자고 역으로 제안했다.
이와 함께 한국 경제에 대해 경기가 잠시 좋아졌다가 다시 하락하는 ‘더블딥’에 진입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 근거로 전경련 민간소비 부진 장기화, 9월 이후 설비투자 감소세 반전, 수출증가세 5개월 연속 둔화 등을 들었다. 이런 하락기조가 계속되면 향후 경제구조가 부실해지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내놓았다.
대미 관계와 관련해서도 정부와 정치권에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사학법 개정안 반대…기업도시특별법 찬성
기업인 美비자 발급 간소화 제안…전경련, 한달서 3~5일로
전경련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미 자주외교’를 주장하는 여권내 강경파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전경련은 정부의 FTA 로드맵과 관련, 한국 산업구조의 고부가가치화라는 정책 목표와는 상반되는 저부가가치 산업구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경련은 최근 ‘우리나라 FTA 로드맵과 보완과제’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동시다발적 FTA 추진 전략을 설정하고 있지만 동아시아지역에서의 FTA 추진 추이를 보면 일본, 아세안, 중국 등과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FTA 추진 시차가 커질 경우 국제 분업체제의 재편과정에서 저부가가치 중심의 산업구조로 고착될 수 있는 상당한 위험요인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기술력 격차를 감안해 FTA 효과를 분석하면 한일 FTA를 먼저 실시한 후 시차를 두고 아세안, 중국 등과 순차적으로 FTA를 체결할 경우 전체 제조업의 생산효과는 20.16%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아세안, 중국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하면서 한일 FTA와 발효시점을 일치시킬 경우 산업생산이 11.4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사립학교 관련법(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전경련은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경련은 최근 회원사에 배포한 ‘전경련 이슈 페이퍼’를 통해 위헌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페이퍼는 “여당의 사학법 개정안은 이사회의 권한을 대폭 제한하고 학교 운영과 관련한 재단의 자율성을 제약해 사학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사학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과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전경련이 공식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경련은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시민단체의 기업도시특별법 반대운동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일전불사를 외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경련은 최근 ‘기업도시특별법 관련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과 전경련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놓았다.
전경련은 이 자료를 통해 “기업도시 특별법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은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이어 “시민단체는 근거 없는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접고 책임 있는 경제주체로서 사실에 근거한 비판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정의 등 13개 시민 사회단체가 공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특별법 제정 반대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시민단체의 주장은 상당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전경련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기로 한 것은 반기업적 사회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재계의 뜻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중고교 교사,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이 활용할 수 있는 경제교육용 ‘모범 교안’을 만들어 시장경제 교육 강화에 일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전경련은 이와 관련, “최근 들어 기업의 CEO들이 반기업정서 해소를 위해 대학 등에서 강연에 나서고 있고, 교사들 또한 시장경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자료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 교안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우선 강연용 교안을 12월 말까지 제작, 배포할 예정이다. 이 교안에는 기업가정신과 기업의 성장, 기업경영과 지배구조,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 노동시장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세계화시대의 국가경쟁력, 한국 경제 진단과 처방 등을 주제로 한 내용이 수록된다.
이를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이미 집필에 착수했으며 현명관 전경련 상근부회장도 직접 집필에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전경련은 주한 미국대사관과 협의해 한국 기업인의 미국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미국 비자 발급 절차는 올 8월부터 까다로워졌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인들이 미국 비즈니스 비자를 발급받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경련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 이달 안에 주한 미국대사관측과 ‘비자 추천 프로그램’을 이용해 발급 절차를 단축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전경련은 이와 함께 대기업 총수 등 최고경영자(CEO)가 미국대사관을 직접 찾지 않고 비자 인터뷰를 받을 수 있는 방안도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비자추천 프로그램은 미국대사관이 승인한 특정 기관이 추천한 사람에 대해서는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는 제도다. 이를 이용할 경우 기업인들은 3~5일 만에 비즈니스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가 2천300여명의 회원과 1천여개 회원기업을 대상으로 비자 추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렇듯 전경련이 재계의 입장을 전에 없이 강력하게 대변하고 나선 것은 현재의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지표나 통계는 위험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때에 재계의 대표주자로서 역할을 전경련이 담당해야 한다는 의지가 이러한 내용들로 표출되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