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쓰고 6년간 수도권 성폭행 투어 ‘충격’

2009-05-15     류세나 기자

테이프로 결박하는 수법으로 6년간 11명 연쇄 성폭행
얼굴 숨기기 위해 ‘헬멧’, 신속도주 위해서는 ‘오토바이’
샤워하는 여유까지 보여…2천6백여만원 상당 금품갈취

[매일일보닷컴]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오는 일련의 성폭행 범죄들을 보면 밤이든 낮이든, 또 연령을 불문하고 ‘여성’이라면 모두 범행대상이 되고 있어 여성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와 서초경찰서는 지난 5일 마포서에서 합동 브리핑을 열고 최근 수년간 수도권 일대에서 10~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폭행한 혐의(특수강도강간) 등으로 김모(34 ・ 택배기사)씨와 이모(23 ・ 무직)씨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특히나 이들은 각각 18회, 11회 등 연쇄적으로 성폭행을 저질러 왔지만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해 4~6년 만에 검거된 것으로 드러나 그 충격은 더 컸다. 이와 관련 <매일일보>에서는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범행을 저지르며 그 동안 얼굴 없는 ‘헬멧맨’으로 불려온 이모씨의 사건을 집중추적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2일 최근 6년간 서울 및 경기 고양 일대를 돌며 부녀자가 혼자 있는 집에 침입하거나 늦은 시간 귀가하는 여성을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하고 2,6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이모씨를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피의자 이모씨는 지난 2월 28일 새벽 1시께 서울 서초구 한 빌라 복도에서 귀가하던 여성 김모(22 ・ 대학생)씨의 손과 입을 준비해 온 청테이프로 묶어 성폭행한 후 현금과 신용카드를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최근까지 이씨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10대 여중생에서 40대 주부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해도 모두 11명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7세 때 처음 성폭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이씨는 어린시절부터 가정사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부모는 이씨가 초등학생이었을 당시 이혼을 했다. 그러나 이씨의 아버지는 이씨가 어머니를 잃었다는 충격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재혼을 했고, 이때의 충격으로 이씨는 사춘기 시절을 방황하며 지냈다. 이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래 친구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문제학생’으로 찍혀 이내 자퇴를 해야 했다. 학교를 그만 두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이씨는 부모와의 마찰이 잦아졌고, 이 일로 이씨는 10대의 나이에 ‘독립’을 하게 됐다.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의를 갖고 있던 이씨는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학력을 따냈다. 그러나 부모 도움 없이 어린 나이에 혼자 살게 된 이씨가 생활비와 용돈을 얻을 길이 막막했을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이씨가 택했던 방법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닌 ‘강도’ 행각이었다. 그렇게 얻어진 전과로 이씨의 범죄경력은 이미 화려할 데로 화려해진 상태다.

“빈 그릇 찾으러 왔는데요” 수법도 교묘

이씨는 지난 6년간 11명의 여성에게 성폭행을 가해왔다. 그러나 경찰이 동일수법의 연쇄 강간 ・ 강도 사건이 6년째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이유는 이씨가 얼굴을 숨기기 위해 마스크와 헬멧을 사용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찰들 사이에서 이씨는 얼굴 없는 ‘헬멧맨’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씨의 범행이 처음부터 치밀했던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범행에서 이씨는 아무런 흉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맨 손으로 여성의 목을 조르고 땅에 쓰러뜨린 후 주먹으로 폭행, 강간했다. 이때 약간의 무리가 있었는지 이후 이씨의 범행에는 공업용 카터칼과 청 테이프가 범행도구로 추가됐다.또 이씨는 음식배달원으로 가장해 “빈 그릇을 찾으러 왔다”며 문을 열게 한 후 접근하는 ‘약삭빠른’ 수법을 이용하기도 했으며, 차량에서 물품을 꺼내는 여성을 차량 안으로 밀어 넣고 강간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주로 피해자가 주거지 출입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입을 막고 목을 조른 후 청 테이프로 결박하는 방법으로 여성들을 범하고 금품을 갈취해 왔다.

헬멧맨으로 알려진 이씨는 성폭행시에도 자신의 특징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마스크와 헬멧, 장갑 등을 꼭 착용하고 있었으며 “쳐다보면 죽이겠다”고 피해자들을 협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 이씨는 독신여성이 혼자 사는 자택에 침입해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당시 이씨는 피해자를 묶어놓은 채 샤워를 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면서 “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빌라 계단 등지에서도 서슴지 않고 여성들을 강간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이어 “이씨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피해자를 엎드리게 해 성관계를 맺는 소위 ‘뒷치기’ 수법을 이용했다”면서 “또 범행 후 신속하게 도주하기 위해 훔친 오타바이를 이용하는 등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CCTV에 찍힌 해병대 문양이 결정적 단서

헬멧맨 이씨의 6년간 ‘성폭행 수도권 투어’는 경찰의 끈질긴 추적수사를 통해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일부 피해자 진술에서 범인이 빡빡머리에 체격이 건장했다는 신체적 특징을 확인하고, 강취한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얼굴 일부가 찍힌 CCTV를 확보하고 수사에 들어갔다.화면 속 범인의 모습은 해병대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고 해병대의 특징인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해병대 사령부로부터 피의자 연령대의 군전역병 2,850명의 명단을 입수해 피의자를 특정해냈다. 이후 경찰은 이모씨의 DNA와 지난 6년간 동일수법으로 성폭행 당한 11명의 피해자의 신체 또는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일치하는 점을 밝혀내 이씨에게서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경찰조사결과 이모씨는 해병대에서 군 복무 중이던 지난 2005년과 2007년 사이에도 휴가 중 부녀자 2명과 13세 여학생도 성폭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범행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점과 성폭력이 수반되는 범죄는 실제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 더 많은 여죄가 있을 것으로 추정, 수사중에 있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이모씨는 지난해 10월 2일 오후 8시께 경기 고양시 인테리어 사무실에 침입해 32인치 벽걸이 TV 1대, 컴퓨터 2대 등 시가 500만원 상당의 물건을 절취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이에 따라 공범여부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