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들어간다 교수실 문 열어라
교수행세하며 여교수실만 골라 턴 이상한‘도둑’사연
2008-05-23 류세나 기자
절도 9범, 지난해 10월 출소 뒤 입에 풀칠 위해 ‘또’ 절도
‘여교수실 전문 털이범’으로 경찰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인’
진짜 교수처럼(?) 점수 매긴 시험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녀
[매일일보닷컴] 근엄한 표정에 검은 뿔테안경, 단정한 트렌치코트, 한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50대 초반의 중년신사가 바쁜 걸음으로 대학 교수실에서 나온다. 수업시간을 수면시간으로 만들어 버릴 듯한 고리타분한 느낌을 주는 영락없는 ‘교수님’ 인상이다. 옷이 날개라고 했던가. 알고 보니 이 중년남성의 실체는 교수가 아닌 바로 ‘좀도둑’이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 19일 교수 행세를 하며 여교수 연구실만 골라 털어온 혐의로 손모(51)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히 손씨는 만일을 위한 신분확인 도구로 교수실에서 훔친 시험지를 소지하고 다니는 등 완벽한(?) 범죄를 꿈꿔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관된 범행 스타일 탓에 덜미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손씨는 특가법 절도 등으로 경찰서와 교도소를 수시로 들락거린 전과9범의 상습 절도범이다.지난 2004년에도 똑같은 수법으로 대학교 교수실에서 상습적으로 절도행각을 벌이다 검거,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10월에 출소했다. 그러나 3년간의 복역기간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 손씨는 출소 4개월 만에 또 다시 작업(?)에 나섰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와 관련 손씨는 “먹고 살아야 하는데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또 다시 도둑질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이제 와서 이 나이에 새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없고, 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이것(도둑질)밖에 없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그의 진술대로 10여년 간 그가 입에 풀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절도’ 행각이었다. 1997년 IMF가 닥쳐올 무렵 골프강사로 활동하고 있던 손씨는 경기가 어려워지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이후 ‘편하게’ 돈을 버는 방법을 택했다. 손씨는 베테랑 ‘교수실 전문털이범’답게 범행현장에는 지문은 물론 범인을 특정할만한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경찰에 덜미를 잡히게 됐을까. 문제(?)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항상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벌여오던 손씨의 범죄성향에 있었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교수들의 절도신고 접수를 받은 경찰은 ‘여교수실 전문 털이범’에 관한 범행일람과 범행수법 등을 전국의 경찰들이 공유하는 서버에 올려놓았다. 당시 경찰은 범인에 대한 어떠한 신상정보도, 용의자로 특정할 만한 인물 등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그러나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과거 교수실 전문털이범 손씨의 담당 경찰 제보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것. 범행수법은 물론 교도소 출소 시기 또한 피의자 손씨의 경우와 맞아 떨어졌다. 이에 경찰은 인천 애인의 집에 은신 중이던 손씨의 행적을 파악한 후 잠복․검거,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범행대상에게 직접 전화하는 대담함도 보여
훔친 ‘부정한’ 돈, 자식 교육비로 사용
경찰조사결과 드러난 또 한 가지 사실은 손씨는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아빠’였다는 것. 교수실을 털어 얻어진 수입의 대부분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의 교육비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손씨는 잠시 만났던(?) 여인이 원치 않는 임심을 하게 돼 결혼까지 하게 됐지만 계획된 결혼이 아니었기에 둘은 곧 이혼을 했다. 하지만 손씨와 자식의 인연은 거기서 끊기지 않았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얻게 된 자식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뻤던 손씨는 교도소를 전전하면서도 사회에 있는 동안 절도를 통해 얻어진 수입을 자식의 교육비로 송금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