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고발] 패혈증 사망 삼성에버랜드 사육사의 진실

통증 심해 조퇴 신청하자 버럭…

2013-03-16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지난 1월 삼성에버랜드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근무하던 25세의 젊은이가 근무 중 입은 상처를 제때에 치료하지 못하다가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이 젊은이는 극심한 두통과 고열 등 패혈증 증상으로 조퇴를 신청했다가 폭언을 듣는 등 치료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의식불명에 빠지고 의사로부터 전부 괴사되었기 때문에 사지를 모두 절단해야한다는 진단까지 받았으며 끝내 병세를 이기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삼성 계열사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 사건에서도 에버랜드 사측은 산업재해를 인정하기는커녕 사망원인을 조작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행여나 사망자 유족이 노조와 연락을 취할까 노심초사하면서 주변인 감시에 열을 올렸다. 지난 15일 오전 11시,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는 ‘삼성 에버랜드 노동자 고 김주경 산재 신청 및 반윤리 기업 삼성 규탄 기자회견’이 열려 삼성의 무노조경영이 불러온 비극에 대한 규탄과 함께 그 원흉인 이건희일가의 경영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유족과 삼성노조 관계자들은 우편으로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재신청서를 접수했다.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는 삼성 에버랜드(용인)는 물론 백혈병 산재 논란으로 잘 알려진 삼성 반도체(기흥)공장도 관할로 두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에게 비정규직 목숨 값은 동물보다 저렴한가?

동물이 너무 좋아 사육사 꿈꾸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삼성

삼성, 노조와 접촉·산재신청 막으려 사망자 유족 감시·회유

주경씨 사망 후에도 패혈증 발병 원인 조작 등 거짓말 불사

지난해 12월15일 패혈증 진단을 받고 투병중이던 삼성에버랜드 비정규직 사육사 김주경씨가 1월6일 25년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사망원인은 ‘패혈증’이었다.바이러스나 세균 등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돌면서 만들어낸 독성물질이 신체 각 부위와 주요 장기를 중독 마비시키는 패혈증은 장기투병 암환자 등의 사망원인으로 자주 등장하지만 20대 건강한 젊은이들에게는 희귀질병이기도 하다.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매우 드물긴 하지만 과로로 인해서 심신의 저항력이 약해졌을 때 가능성은 많이 낮으나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견해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고 실제로 판례를 통해서 패혈증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산재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

동물과 동물원을 사랑했던 사람

생전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침팬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동물학자 제인구달을 꼽았던 주경씨의 미니홈피나 블로그는 온통 동물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있다.

예전부터 동물이 너무 좋아서 평소 심심할 때나 시간이 빌 때마다 늘 동물원을 찾던 주경씨는 지난해 2월부터 삼성에버랜드 동물원에서 비정규직 사육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사육사 일을 시작하고 몇 달 사이에 체중이 상당히 많이 빠질 정도로 일이 고됐고, 안타까웠던 부모의 ‘힘든 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만류에도 동물에 대한 주경씨의 열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동물이 너무 좋았기에, 부모님의 돌아오라는 설득도, 힘든 작업 환경도 모두 이겨낼 수 있었던 그녀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 계약직이 되고 결국에는 정규직 동물 사육사가 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꾸며 일했다. 주경씨가 에버랜드의 비정규직 사육사로 일한 기간은 총 10개월. 한 달에 네 번 쉬고, 야간개장이나 성수기에는 연일 연장근무가 이어지는 비정규직 사육사 일은 건강하던 그녀를 10개월 만에 10kg이나 살이 내랴앉게 할 정도로 극한의 노동환경이었다.

갑작스런 체중 감량으로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그녀는 지난해 12월9일 동물사 철장에 부딪히면서 생긴 상처를 제때에 치료하지 못했고, 일주일 뒤인 12월15일 패혈증 진단을 받았으며, 다시 20여일 뒤인 1월6일 결국 25년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정규직이 뭐길래…

증상이 급격히 악화돼 결국 병원으로 실려가기 전, 통증이 심해서 조퇴를 시켜달라고 하는 주경씨에게 동물원 관리책임자는 큰 소리로 버럭 화를 내면서 “빨리 가려면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주경씨가 사망 전, 3일 가량 정신이 좀 돌아왔을 때 부모에게 전했다는 뒷이야기이다. 동물원 우리에 얼굴을 찢겨도, 동물 먹이를 자르다가 손을 베어도 정규직이 되겠다는 희망 때문에 모든 걸 참아 넘겨야 했다. 정규직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파도 의무실 가는 게 눈치보여 아픈 것 참고, 힘들어 쉬고 싶어도 꾹 참으며 일을 했다는 것이다. 중환자실에 누워, 온 몸에 멍이 올라오고 손과 발이 괴사되어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도, 정신이 돌아오면 “무단결근은 안돼! 동물원에 가야해”라고 소리쳤던 그녀의 간절한 꿈은 에버랜드의 잔혹한 노동자 관리 정책으로 인해 한 줌 재가 되었다.

주경씨 아버지는 “조그마한 가게를 하고 있는 사람도 직원이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는 법인데, 그때 우리 애기를 누구 한사람만이라도 동행해서 데리고 갔다면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며 눈물을 흘렸다.

죽음보다 더 큰 고통

항상 멀리 있는 딸을 걱정하고 또 걱정하던 부모에게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이었지만 더 큰 고통과 분노를 안겨 준 것은 삼성의 태도였다.

어찌된 일인지 사경을 헤매던 딸의 동물원 동료들은 결국 한명도 문병을 오지 않았고 장례식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삼성측 직원들이 가득 들어차 유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중환자실에서도, 그리고 장례식 장에서 삼성은 그녀의 가족을 회유 기만했다. 에버랜드의 직원들을 책임지고 있다는 한 직원은 산재 신청을 도와달라는 부모에게 “주경씨 얼굴에 난 상처는 친구와 개인적으로 술을 먹다가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며 주경씨의 평소 생활태도가 매우 문란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나갈 때쯤, 주경씨의 스마트폰을 켜본 유족들은 딸의 친구와의 대화내용기록을 통해 그동안 사측이 한 말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개인적인 자리였다던 술자리는 부서의 공식송년회였고, 그나마 주경씨가 실제로 다친 자리도 술자리가 아니었다. 주경씨의 얼굴 상처는 근무 중 동물사 철장문에 부딪혀서 생긴 것이었다. 성실하게 일했던 딸이 술이나 먹고 다치는 사람으로 얘기했던 삼성 직원에게 대화내용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요구했지만 그 직원은 당황하면서도 “술을 먹다가 넘어져 다친 것”이라는 주장을 고집하면서 그녀의 죽음을 은폐, 왜곡하려고 했다. 패혈증이라는 폭탄이 터지도록 그녀의 몸을 면역력이 약한 화약고로 만든 것은 에버랜드의 강도 높은 노동이었고, 거기에 불씨를 당긴 상처마저 노동과정 속에서 당한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그녀의 죽음을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갔다. 산재신청을 이야기하는 유족에게 사측 관계자는 “‘산재신청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거기서 지면 두 번 상처 받으니 직원들이 성금 모금 한 거나 받으라”고 회유했고, 노조의 도움을 받으려 하자 노조 험담에 열을 올리면서 유족과 노조를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감시 그리고 거짓말

주경씨가 죽고 유족과 사측 사이에 실랑이가 이어지기를 10여일이 흐른 1월17일, 삼성노조는 삼성에버랜드 인사팀 김모 차장이 작성한 ‘故 김주경씨 관련 상황 보고’라는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사건발생 후 1월16일까지 일자별, 시간별로 면담기록, 유가족의 이동경로, 유가족과 삼성노조의 움직임, 유가족 설득 시도 등이 세세하게 기록 되어 있었다. 또한 사측이 삼성에버랜드 임직원을 상대로 3회에 걸쳐 故김주경씨 사망관련건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해 “삼성노조가 진실을 왜곡하여 유족이 속고 있다”고 보고했고, 이를 진실로 받아들인 임직원들은 큰소리로 “삼성노조는 사람도 아니다. 또라이들이다”라고 비판했다는 내용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유족 감시와 관련해 삼성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주경씨 아버지는 “매일 병원에 두세시간씩 있으면서 의사 이름이랑 간호사 이름도 적어가곤 했던 삼성 직원이 있는데, 중환자실에서 다른 환자 부모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으면 들어와서 어떤 사람이냐고 꼬치꼬치 묻기도 했다”고 밝혔다. 주경씨 아버지는 “그 사람은 영안실에 에버랜드 노조의 조화가 도착하니깐 저한테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길래 ‘우리 애기가 아파서 제가 연락을 했다’니깐 ‘제가 지금까지 온 것이 다 바보군요 이제 여태까지 온것이 다 헛수고였군요’라고 말했다”며, “그것이 감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렇게 한 사람들이 반박성명에는 감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